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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E스포츠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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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마태 Sep 27. 2023

팀 비즈니스Ⅰ

Chapter3-1 비즈니스의 근거

가치의 본질


인간은 달리기 시합을 본다. 빨리 달리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지구상에는 인간보다 빨리 달리는 동물은 많다. 그러나 동물과 인간의 달리기 시합이나 동물과 동물의 달리기 시합은 보지 않는다. 이유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는 이유는 감동이 안 돼 서다. 인간은 말이나 치타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불륜을 저지르면 욕을 한다. 그러나 동물의 왕국의 치타가 불륜을 저지른다고 해서 욕을 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치타는 그 행위가 불륜인지 알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사 치타가 불륜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관심이 없다. 모른다고 해도 관심이 없다. 인간은 오직 인간의 삶에만 관심이 있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강아지는 특별하다. 그렇지 않아도 대게 인간은 누군가에게 학대받는 강아지를 볼 때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사자에게 사냥당하는 사슴을 볼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바퀴벌레는 주저 없이 죽인다. 동물을 연구하는 학자에게 동물은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동물 학자는 학자가 더 많은 지식을 얻고자 하기 위한 목적의 관심이다. 동물 학자가 마치 스스로가 동물이 되어 동물이 이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와 같은 것을 알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있지도 않다. 따라서 핵심은 강아지와 사슴이 본질적으로 같은 가치를 지닌 존재인가와 같은 것이 아니다. 


동물에 대해서 인간이 관심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도 핵심이 아니다. 오직 인간에게 어떤 가치를 지닌 존재인가다. 인간이 강아지와 어떤 교감을 하는가의 문제라는 뜻이다. 외계인이 발견되어도 그 외계인이 인간의 삶에 영향이 줄 것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외계인이라도 인간의 관심을 못 받을 것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모든 객체에 거의 관심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그래서 누구도 동물 간의 경쟁이나 동물과 인간의 경쟁에서 감동을 받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아무도 따지지도 않는다.

 

인간은 동물의 관점을 대변하지 못한다. 대변한다고 해도 동물의 권리를 인간의 권리와 비교해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동물의 권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동물이 자신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는 형태가 영원히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동물에 대한 주제는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에서만 발현된다. 그 이상은 없다. 동남아에 가면 닭싸움이 있다. 사실 닭은 자기가 이기던 자기가 지던 이해관계가 없다. 그저 싸움이 일어날 뿐이다. 그런데 오직 인간만 어떤 닭이 이기는지에 관심이 있다. 결국 그것은 닭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과 경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종류의 존재는 인간의 관심에 기인해 해석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도 인간이 사용하는 단어다. 인간이 아닌 객체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여기서 게임이란 공을 던지면 강아지가 물어오는 것이나 아기 사자가 처음 보는 동물이나 벌레를 툭툭 건드려보는 것과 같은 단순한 놀이를 말함이 아니다. 규칙을 정해 놓고 승부를 겨루는 것, 즉 경쟁을 말한다. 그런데 동물도 게임을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의미는 같다. 그 행위가 여전히 인간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과 관련이 없는 게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인간이 관심을 두지 않으면 인간에게 가치가 없다. 

 

통상 무가치라는 말을 할 때 주어는 항상 인간이다. 게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도 인간이 반드시 그 속에 주어로 포함된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은 아시아에서 사는 사람들이 항저우에 모여 스포츠 대회(게임)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이쯤에서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다. 먼저 게임이란 결국 사람이 경쟁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경쟁은 인간에게 감동을 준다. 결국 아시안 게임의 가치는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경쟁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것에 있다. 인간의 경쟁에는 감동이 있다. 닭과 같은 동물을 사용해 경쟁을 한다고 해도 본질은 같다. 달리기 선수가 신는 러닝화 같은 역할이다.



NPR's Skunk Bear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경쟁은 그 뜻이 인류가 이 세계에서 그 활동을 제일 잘한다는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사인볼트도 100미터 달리기에서 평범한 고양이에게 진다. 인간은 몇천 년이 지나도 신체적 노력만으로 치타보다 빠를 수 없다. 그렇지만 오늘도 달리기 시합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재미있는 한 가지는 인간은 이미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생명체보다 빠르게 이동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보다 더 빨리 지속적으로 더 멀리 달릴 수 있는 동물은 없다. 비행기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안정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날아다닐 수 있는 새도 없다. 그런데 이 초과학의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달리기를 하고 있다. 심지어 누가 그 몇 분의 몇 초를 당겨서 세계 신기록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해 매우 궁금해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인간이 서로 경쟁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감동의 원리를 알려 준다. 인간이 도전하고 경쟁하고 승리하는 과정이 역사 속에서 인류가 꾸준히 확인해 온 불변의 가치를 전달한다. 인간은 인간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고자 한다. 


그러면 이제 인간이 한계를 뛰어넘은 모습은 왜 다른 인간에게 감동을 주게 되는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인류가 살아온 방식에 해답이 있다. 겨우 대략 80년 밖에 살지 못하고 육체 능력적으로 동물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인류는 역사에 출현하고 지내온 오랜 기간 동안 노력의 반복과 경험의 기록을 통해서 생존을 유지했다. 도전과 경쟁과 승리의 과정이 인류가 인류로서 존재하는 이유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한한 존재 중에서는 오직 인간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인문학적인 내용으로 챕터를 시작하고 있지만 그러함을 차치하더라도 인간은 인간이 노력을 하는 것을 보면 이성적 이해와 상관없이 거의 즉각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단순히 그 조금 더를 잘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지 말하지 않아도 체감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분야에 전혀 감이 없어도 우승한 후 눈물을 흘리는 것만 보아도 뭉클해진다. 인간으로서 일통 하는 부분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힘든 시기가 있다. 극복해 본 기억도 있고 극복하는 과정에 있기도 하고 그럴 텐데 그 때문에 우리는 삶의 고통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게임이라는 것은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는 오늘 하루를 잘 정제된 형태로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의 노력을 응원하고 노력에 대한 대가를 결국 얻어내는 이들을 높여 위대하다 말한다. 노력이 가치가 있고 수행하기가 힘든 것을 알기에 가능하다. 결국 스포츠에서의 선수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설명을 압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인 것이다. 


정리하면 게임이란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온 가장 직관적인 산물이다. 한 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다. 비디오 게임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 특별히 이스포츠는 그 유산을 그대로 전승한다. 그래야 결승전에서 패배 후 흘린 페이커의 눈물을 보고 같이 우는 팬들이 설명이 된다. 


팀 비즈니스의 개요


박태환 : 지금은 내 기록을 0.1초 당기는 게 내 몫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현우 : 나보다 더 땀을 흘린 선수가 있다면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

이승엽 : 혼신의 노력은 결코 배반당하지 않는다. 평범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 


팀은 선수가 곧 상품이기 때문에 선수를 알지 못하면 비즈니스를 이해할 수 없다. 비단 선수만 인간인 상품인 것은 아니다. 아이돌도 연기자도 캐릭터도 상품이다. 이런 표현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가진 이미지가 상품이다. 쇼미더머니의 비오가 부른 리무진이라는 노래에서 마이노는 다음과 같은 가사의 랩을 한다.


“좋은 상품이랍시고 많이들 포장도 하지만 아이돌 다 리스펙 하지”  


그것이 누구든 상품이라면 판매의 대상이 된다. 스스로가 그것을 자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위에 명언들은 이분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한말이 아니다. 노력해 왔던 인생을 돌아보며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한 것뿐이다. 이를 테면 선수는 그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이것을 더 잘하고 싶었다고 생각하고 또 실제로 입을 열어 그렇게 말을 해도 무방하다. 그 행동과 말이 그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 오직 가치의 본질의 존재 여부만 중요하다. 가치가 훼손되는 경우는 말과 행동이 다를 때뿐이다. 


사람들은 진하고 오래 남는 감동을 원한다. 스포츠도, 영화도, 드라마도, 만화도, 음악도 모두 감동이 가치의 근거이다. 사람들이 감동을 한다는 것은 그 활동 자체가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때로 가치가 없는 것을 가치가 있다고 포장하는 경우가 있다. 오래가지 않는다. 이 감동은 공감에 기인한다. 공감은 단순히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와 같은 의미는 아니다. 완벽하게 맞는 단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눈물 같은 단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은 '재미'다. 쉽게 풀어보면 "그거 재미있었니?"라고 물어볼 때 "재미있었어"라고 대답하면 일종의 감동이 존재했다는 뜻이 된다.


감동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다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재미’라는 말로 꽤 해소가 된다. 웃긴 영화를 봐도, 매우 슬픈 영화를 보아도,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영화도, 오싹한 공포감을 주는 영화도, 전부 재미있었던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감동의 결과는 재미이지만 감동의 근거는 이처럼 공감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추구해 얻어낸 퍼포먼스에 감동을 받는다. 인간이 인간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은 인간에 대한 지식이 많고 빠른 감정 이입을 도울 비슷한 직간접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이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인간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 입각할 경우 동물에게도 공감을 할 수 있다. 동물에게도 감동을 받는다. 구조가 동일하고 결과도 같다. 동물의 왕국에서 어미 코끼리가 자식을 지키기 위해 사나운 맹수와 맞서 싸우는 장면을 보고 인간도 다른 동물도 어미의 심정에 공감하고 눈물을 흘린다. 동물도 동물을 아낀다. 먹을 것을 안 먹고 다른 아픈 동료 강아지에게 가져다주는 강아지도 있다. 공감이나 감동은 인간만이 소유를 한다거나 인간에서만 느낄 수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유니버설 한 것이다. 


다만 설명한 바와 같이 인간이 아닌 것에 대한 것은 비즈니스 가치가 없다. 동물도 그 누구도 인간이 아닌데 돈을 내는 대상은 없다. 더욱이 이를 상품화할 생각을 할 수 있는 주체도 없다.  

 

인간은 한번 공감이 되면 궁금해진다. 궁금하면 알아본다. 알아보다가 더 마음에 들게 되면 소비자가 된다. 다음 과정은 스타의 소비자가 되는 예시가 될 수 있다. ①스타를 알게 된다 ②스타가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③스타에게 더 주목하게 된다 ④스타에 대해서 지식이 쌓이면서 이해도가 높아진다(이해는 이후 있을 더 큰 감동의 기초가 된다) ⑤반복되는 감동으로 스타를 더더욱 좋아하게 되고 지속적으로 소비한다. 


과정에는 약간씩 변화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감동이라는 코드는 동일하다. 그리고 그 코드에 재미가 관통한다. 스타를 소비하는 것이 재미가 없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감동을 주는데 그 감동이 소비자에게 재미를 주고 소비자는 그 재미를 위해서 감동을 소비하는 구조다. 


감동을 가치화할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가와 같은 보편성에 영향을 받는다. 일종의 양적 논리다. 어벤저스는 우주에서 쳐들어오는 악당을 무찌른다. 이 주제는 종교가 무엇이든 인종이 무엇이든 잘생겼던 못생겼던 상관없이 인류라면 공감한다. 개인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 가도 중요하다. 연애에 관심이 없다면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그 사람에게는 크게 가치가 없다. 또한 가치가 있다고 해서도 반드시 소비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무섭거나 잔인한 것을 보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 중에는 오징어 게임과 같이 아무리 소문난 명작이라도 볼 수가 없을 수 있다.   


얼마나 큰 감동인가는 질적 논리다. 오늘 받아쓰기 100점 받았다. 그래서 엄마가 치킨을 시켜줬을 수 있다. 감동이다. 그런데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독립한다. 매년 그날을 기념하며 상기한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것보다 더 큰 감동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감동은 더 크고 진한 것이 있다. 반대로 덜 감동적인 것도 있다. 개인마다 더 감동적인 것과 덜 감동적인 것을 나누는 기준이 있다. 기준은 대게 개인의 경험에 의한다. 그런데 개인이 속한 사회 문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또한 소재의 출현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기준은 다 다르지만 사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보편적인 것이고 출현하는 소재에 의한 트렌드라는 것이 있게 되기 때문에 어떤 일괄적인 방향성을 보이게 된다.

      

공감이 크면 감동도 크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외국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준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더 큰 감동이 된다. 인간은 감동이 크면 클수록 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재미를 주는 것이 가장 가치가 있는 일이다. 예외는 없다. 그래서 인간은 더 가치가 있는 것에 늘 주목하고 가능하면 그것을 가지려고(선택하려고) 한다. 만약 금요일 저녁부터 다음날 저녁까지 하고 싶은 것을 할 기회가 있다고 가정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시 할 것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게 그 사람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위에 있는 선수들은 모두 구체적인 성취 목표를 위해 꾸준한 노력을 했다. 그 노력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선수들의 말에 담긴 심정에 더 공감이 가능하다. 공감이 감동의 근거이며 감동이 재미이고 재미가 곧 수익이다. 주변에서 제일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것들이 보통 제일 돈을 많이 번 것들이다. 위 선수 중에 돈을 벌지 않은 사람은 없다. 


정리하면, 인간은 인간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가치가 있는 것과 가치가 없는 것을 구분한다. 명품 가방, 슈퍼카, 좋은 집, 아이폰 등이 가치 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보고 싶은’, ‘응원하고 싶은’, ‘만나고 싶은’, ‘더 알고 싶은’과 같은 무형의 이미지도 포함된다. 인간이 어떤 것을 더 좋은 것이라고 인식하는 이유는 그것의 가치에 대한 설득에 더 공감하기 때문이다. 공감이 된다면 형태는 상관이 없다. 설득에는 이성이 기반되지도 않는다. 포켓몬 빵을 사서 띠부씰만 남기고 빵은 버린다. 인간이기에 그렇다.  


이처럼 공감은 세계관에 기인하며 이해를 동반한다. 공감은 가치다. 가치는 곧 수익이다. 사람들은 가치를 얻을 때 감동한다. 감동하면 열혈 소비자가 된다. 이 일련에 과정 속에 재미가 관통한다. 재미의 소재가 판매의 대상이 된다. 결국 감동은 수익의 근거이자 가장 확실한 증거다. 공감이 인간의 세계관에 기인한다면 인간은 인간이 만든 상품을 사람들이 구입하고 싶어 하게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이돌을 좋아하게끔 만드는 것에는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가장 효과적인 공감 확보 전략은 인간의 본성에 접근하는 것이다. 연장 선상에서 효과적인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은 가치가 있는 것을 얼마나 전략적으로 이미지화해서 전달하는가이다. 이후에 자세히 알아보겠지만 이미지화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쉽게 (또는 직관적으로) 알게 하기 위해서다. 아이돌의 무엇을 좋아하나, 연예인의 무엇을 좋아하나 등과 같이 선수의 무엇을 좋아하나도 같은 맥락이다. 선수 이미지의 기본은 경쟁을 통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 소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파는 일을 한다. 잘 만들어진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전달한다. 이 비즈니스다.


개연성


그렇다면 공감은 무엇으로 키울까?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통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은 개연성(Probability)이다. 개연성이란 ‘그런 이야기이기에 그렇게 되었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일종에 설명을 하는 작업이다. 한마디로는 공감의 이미지화 도구다. 이순신 장군의 예에서는 우리가 한국인인 게 바로 개연성이 된다. 한국인이라면, 지금 내가 사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 한 척의 배로 적진으로 파고드는 영상을 볼 때, 또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는 장군의 대사를 들을 때,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특별히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이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매우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략적으로 개연성을 끌어올린다. 가수 임영웅은 미스터 트롯 결승전에서 전형적인 연인을 위한 경연곡을 준비한다. 그런데 방송국은 임영웅이 노래를 부르기 전에 이 인터뷰를 내보냈다. "저의 이 노래는 연인을 위함이 아닌 저를 홀로 키워주신 어머니를 위한 곡입니다." 이 코멘트가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다.

 

동시간대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은 코멘트에 담긴 아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에 다 울었다. 다 큰 아들은 늘 연인을 위해서만 노래할 줄 알았지 어머니를 위해서 누가 노래할 줄 알았을까!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궂은비가 오면 세상 가장 큰 그대 우산이 될 게, 그댄 편히 걸어가요, 걷다가 지치면 내가 그대를 안고 어디든 갈게, 이제 나만 믿어요.” 대부분 부모세대가 보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 가사가 나올 때면 어머니들은 더욱더 감정이 이입되게 된다. ‘임영웅은 진짜 효자다. 이런 효자가 우승을 해야 된다.’ 노래를 듣는 와중에 그런 생각이 계속 든다. 


결국 임영웅에게 투표한다. 그렇게 우승을 하게 된다. 당시 임영웅 씨의 어머니는 포천에서 미용실을 했다. 방송 이후 임영웅을 키워줘서 고맙다는 선물을 많이 받았다. 본래 가수 임영웅에는 효자라는 이미지가 없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만 있다. 아무 인터뷰 없이 그저 노래만을 불렀다면 효자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이미지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임영웅에게 효자라는 이미지를 위와 같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것이 개연성이다. 그 여파는 다음 시즌까지 이어진다. 미스트롯2 참가자들은 전부 죄다 엄마 아니면 아빠, 혹은 할머니를 타깃으로 하는 노래를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부른다. 다만 모두 좋은 성적을 얻지는 못했다. 개연성이라는 것은 훌륭한 전략이지만 특별한 고민과 딱 맞는 시기 등이 없어도 통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포츠도 (*모든 무형의 상품이) 이와 성격이 같다. 잘 짜인 전략이 필요하다. 페이커는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우리 중 누구는 페이커를 그때 처음 볼 수도 있다. 그 사람은 브라운관을 보면서 “이 사람이 말로만 듣던 페이커 선수이구나, 이 게임이 말로만 듣던 롤이라는 게임이구나”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처음 본다고 해도 금메달을 목에 걸면 감동을 받는다. 이 선수의 가슴에 태극기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팬은 페이커를 데뷔 때부터 보았다. 페이커가 과거 한 결승전에서 지고 우는 것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폼이 떨어졌다고 했을 때도 이 팬은 응원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꾸준히 선수로서 기량을 끌어올려 지금 이 자리에 온 것도 알고 있다.


아시안게임에서 페이커는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이 찐 팬과 그날 처음 페이커를 본 사람 중 누구에게 더 큰 감동이 될까! 페이커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인터뷰에서 응원해 주신 많은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면 그 메시지가 과연 누구에게 더 다가갈까! 팀 비즈니스에서 생각을 해야 할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만약 페이커 선수를 가수 임영웅 씨의 예시처럼 전략적으로 개연성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를 고민해야 한다. 쉽게 생각해도 당연히 페이커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는 결과를 더 값어치 있게 만든다. 값어치란 곧 돈이다. 비즈니스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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