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평행이론
퇴근해서 돌아온 엄마는, 회사 복장 그대로 설거지며 집 정리 등 집안일을 해치우곤 했다. 홈웨어로 갈아입으면 일 하기가 싫어진다면서. 엄마에게선 스타킹 냄새가 났다. 고된 하루의 흔적과 인공적인 스타킹 냄새가 섞인 쿰쿰한 냄새, 나는 엄마의 스타킹 냄새를 싫어했다.
나는 스타킹의 옥죄는 감촉을 싫어했지만, 교복을 입기 시작하면서, 어쩔 수 없이 스타킹을 신기 시작했다. 스타킹에 발을 밀어 넣던 어느 날 아침, 갈라진 손가락 탓에 스타킹이 쭉 나가버렸다. 다시 조심조심 다른 스타킹을 신어봤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문득, 또 엄마 스타킹 생각이 났다.
엄마는 은행원이었다.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지만, 엄마 손가락은 늘 성하지 않았다. 아마 지문이 닳도록 돈을 만지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엄마가 스타킹을 신다가 올이 나가는 일은 종종 있었고, 집에는 이를 대비하여(엄마 손이 원래 크기도 하지만) 여분의 스타킹이 한 박스쯤 구비되어 있었다. 그 날은 유난히도 스타킹 올이 자꾸 나가는 날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다 서너 번쯤 스타킹을 갈아 신던 엄마는, 결국 울고 말았다. 이제야 그 기분을 좀 알 것 같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회사와 집을 동동거리며 사는 처지가 얼마나 서러웠을까.
같은 워킹맘 처지가 된 딸은 30년이 지나서야 엄마 마음을 헤아린다. 자주 신지는 않지만, 스타킹을 신을 때마다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꾸역꾸역 회사에 출근했을까. 엄마는 버티다 버티다 퇴직을 하셨고, 이제는 할머니가 되셨다. 왠지 모르겠지만, 나도 엄마가 갔던 길을 따라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끝까지는 못 버틸 것 같고, 어느 정도 버티다 퇴직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엄마는 워킹맘인 나를 안쓰럽게 본다. 못 도와주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신다. 가당찮게도 나는, 엄마의 도움 없이 잘할 수 있는데 왜 무리해서 도와주려고 하느냐며 엄마 도움을 고깝게 보곤 한다.
왜 엄마 도움이 달갑지가 않은지,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엄마와 다른 길을 걸어가고 싶었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우리를 키웠지만, 나는 엄마의 도움을 받아 내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또, 엄마가 나를 안쓰러워하며 도와주려고 다가올 때, 이렇게 도움을 받다가 엄마의 도움이 언젠가 끊어져버리면 나는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생각한다.
'끝까지 도와줄 수 없으면 도와주지 말아요. 엄마가 영원히 도와줄 수 없잖아. 그러면 내가 홀로 설 수 있게, 내가 혼자 할 수 있게 제발 그냥 놔둬줘요. 나는 내가 혼자 해낼 거야. 내 애는 내가 키울 거야'
속마음과 다르게, 겉으로는 퉁명스러운 말이 튀어나온다.
"그냥 둬 엄마, 내가 할게 그냥 둬."
딸이 안쓰러운 엄마는 그냥 두지 않는다. 딸내미 타박을 감내하면서 꾸역꾸역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해주려고 동동거린다. 체력이 달려 힘들어하면서 도와주겠다고 애쓰는 엄마를 보면 나는 더 화가 난다.
"하지 말라니까 엄마. 힘들다면서 왜 그래. 제발 좀 그만해"
엄마는 엄마대로 속이 상한다. 나는 엄마가 내 말을 유난히도 안 들어주는 것 같아 또 마음이 상한다.
엄마와 나는 왜 애증의 관계일까. 내가 못된 딸이라 이런 걸까. 오늘 스타킹을 신으며 또 생각한다. 나와 엄마의 이런 관계가, 애들과 나의 관계로 똑같이 이어지는 건 아닐까. 결국 나는 엄마가 걸어온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