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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pont Aug 25. 2022

치즈와 김치

이제는 김치보단 김치요리로.

아직 많은 곳을 다녀보지는 못했으나, 스트라스부르에 살면서 – 스트라스부르는 그랑테스트의 주도로서, 알자스-로렌 지역의 핵심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 – 알자스 지방 여러 곳을 여행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꽃보다 할배> 프로그램을 통해 잘 알려진 콜마르(Colmar)도 알자스에 있고, 산꼭대기에 3개의 성이 자리잡은 히보빌레(Ribeauvillé),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작은 마을 에귀샤임(Eguisheim) 등 여러 작고 아름다운 마을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위 사진은 Ribeauvillé, 아래 좌, 우는 각각 Eguisheim, Colmar.

작고 아름다운 마을들이, 특히나 깔끔하게 잘 관리되어 관광객들이 찾을 만한 마을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점이 프랑스의 특징인데, 여행객들도 시간을 조금 더 투자할 수 있다면 작은 마을 투어를 해볼 것을 추천한다. 생각 이상으로 잘 보존된 오래된 마을들이 주는 소박하고 깜찍한 즐거움이 생각 이상의 만족을 준다. 길어야 1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마을들이지만 마치 보물찾기처럼 숨겨진 매력을 찾아나가는 재미가 아주 그만이다.  


아내와 나는 이런 마을에 놀러가면 꼭 사는 것이 있는데, 마그넷 혹은 엽서처럼 그 마을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품(Souvenirs)이다. 사서 냉장고나 벽에 붙여두면 종종 추억할 거리가 생겨 좋다. 그리고 이따금 포도주나 다른 특산품들도 눈여겨 보고 살 때가 있다. 마을에 있는 특산품 가게를 들어가 보면 포도주, 치즈, 잼 같은 것들이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다. 알자스는 백포도주가 아주 유명하다. 그리고 맛도 좋다. 


백포도주를 만들 수 있는 포도밭. 아마도 품종은 Riesling.


그런데 알자스의 여러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특산품 가게를 들러 본 경험에 따르면, 이렇게 말하기는 좀 미안하지만, 다 비슷비슷하다. 거기서 거기라는 표현까지는 쓰고 싶지 않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한국 사람들이 한국 지방에 놀러가면 항상 하는 말이, 기념품이라 할 만한 것이 지역적인 특색이 없고 다 고만고만하다는 것인데, 프랑스에 대입해 보아도 통할 말이다. 한국도 지방 가면 맨날 보이는 게 김치고 막걸리요, 들리는 게 트로트인데, 프랑스도 지방 가면 맨날 보이는 게 치즈고 포도주요, 들리는 게 샹송 아니면 중세 풍 멜로디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지만 그건 한국이고 프랑스고 똑같을 것이다. 


프랑스는 포도주와 치즈의 나라다. 맞다. 지방 어디를 가든 지방 특산의 포도주와 치즈가 있다. 품종이나 재료별로 천차만별이다. 맛과 향기가 다 조금씩은 다르다. 그러나 넓게 보아 포도주와 치즈라는 틀 속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감별하기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내가 직접 겪어본 것에만 따르면, 치즈는 도시에서 시골로 갈수록 그 냄새의 농도가 짙어진다. 아마 한국 사람들 중 상당수는 프랑스 시골 치즈를 맛있게 먹기는 힘들 것이다. 원래 치즈가 가지고 있는 꼬릿함(?)에 암내(?)에 가까운 향기가 첨가되는 시골 치즈는 선뜻 손이 갈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알자스에는 망스테르(Munster) 치즈가 유명한데, 치즈 이름이 지역 마을 이름이다. 이 치즈의 냄새가 상당히 강하다. – 물론 더 강한 냄새를 가진 치즈는 널리고 널렸지만 – 이 치즈는 감히 생으로 먹을 생각은 못하고, 요리 위에 뿌려진 것을 먹었다. 독일식으로 삶고 튀긴 족발 위에 녹은 망스테르 치즈를 뿌린 것인데, 열을 가해서 그런지 냄새는 많이 빠지고 특유의 고소한 맛이 강조되어 오히려 맛있었다. 


Munster 치즈를 뿌린 돼지족발요리.


또 예전에 리옹(LYON)에 갔을 때, 리옹 치즈를 먹어본 경험이 있는데, 유명한 치즈 종류인 까망베르(Camembert)든 좀 색다른 치즈든 프랑스 마트에서 파는 평범한 치즈에 비해 향과 맛이 좀 더 강했던 기억이 있다.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 아내도 함께 먹은 후 똑 같이 증언을 했으니 아예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파리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는 치즈보다, 지방의 치즈가 더 맛과 향이 강하다. 프랑스 사람들도 파리는 프랑스가 아니라고들 한다. 파리에서 느낄 수 없는 프랑스의 모습은 지방에 가면 찾을 수 있듯이, 치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같은 발효식품이라는 점에서, 나는 자연스레 한국의 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따금 해외에서 김치 만들기 행사를 하고, 외국인들에게 김치를 권하는 뉴스를 볼 때, 나는 외국인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곤욕스러운 경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한국 사람에게 프랑스 치즈를 갑자기 권한다면 어떤 반응들이 나올까? 특히나 맛과 향이 더 강한 프랑스 지방의 치즈를 권한다면? 아마 태반이 냄새만 맡고도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발효식품이라는 것이 원래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 문화에서 익숙한 맛이라고 해도, 다른 문화에서는 굉장히 생경한 경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 김치는 단독으로 홍보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다. 김치는 음식이 아니라 반찬이다. 치즈 같은 경우 단독으로 나오거나, 포도주를 곁들여 낼 수 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김치는 단독으로 내기 어렵고, 술과의 궁합도 애매하다. 물론 막걸리에 김치 한 조각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막걸리집에서 김치만 먹는 경우도 없지 않은가. 김치를 이용하는 무궁무진한 한국 음식들이 있는데, 이제는 김치 단독으로 홍보하기보단, 김치로 만들 수 있는 한국 음식들을 홍보하는 데 더 중점을 두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프랑스인 지인들 중에 김치를 직접 담가서 먹거나, 종종 사서 먹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한국 김치의 맛을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정말 끼니마다 김치를 먹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치가 한국 것이라는 것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 김치 홍보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내 생각에 발끈하는 애국심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기무치’니 중국의 ‘파오차이’니 하는 것들에 한국 고유의 문화적 요소를 빼앗긴다는 우려에, 안 그래도 자존심 강하기로 둘째라면 서러운 한국 사람들의 성격을 건드렸으니, 발끈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집에서도 자주 해먹는 파김치. 만들기도 쉽고 맛도 좋다. 


하지만 이제는, 김치가 한국 사람들의 것이라는 것 자체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한국이야말로 진정 김치의 종주국이면서, 한국 사람들이 김치를 얼마나 다양하게, 즐겁게 일상에서 즐기고 있는지를 음식을 통해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랑스인 지인들은 한국에서 맛본 김치찌개, 보쌈, 김치 삼겹살, 김치 볶음밥, 두부 김치, 김치 두루치기 등 수많은 김치 요리들의 맛을 기억하고 추억하다 못해 집에서 직접 해먹는 경우도 많이 봤다. 김치는 한 나라의 것에서 세계인들이 즐기는 맛 중의 하나로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는 것이다. 김치 자체의 홍보에 열 올릴 필요 없이,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김치에 미쳐 있고 김치에 진심인지 알릴 때가 온 것 같다. 


한국에는 셀 수 없는 종류의 김치가 존재한다. 또 그만큼 많은 김치 요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한국 문화에 관심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의 김치를 더 많이 알기를 원한다. 그들의 관심에 정성 어린 김치 요리 한 접시로 보답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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