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 탐험가 Oct 24. 2021

소년, 길을 나서다

탐험은 오래전에 벌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릴 때 책이나 잡지에서 접한 탐험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땅에 첫발을 내딛는 것이었다. 20세기 후반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인류가 달까지 갔는데 지구에는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은 곳이 없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니 탐험이란 먼 옛날의 일, 혹은 책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1974년 즈음 수유리를 떠나 서교동으로 이사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살던 수유리 집도 골목에 있었고 새로 이사한 서교동 집도 골목에 있었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아직 입주가 덜 된 신흥 주택가라 그런지 내 또래 친구가 없었다. 학교에는 같은 반 친구가 있었으나 등하굣길을 같이 다니고 골목에서 함께 놀 친구가 없었다. 

     

또래 형제도 없는데 또래 친구까지 없으니 학교에서 돌아오면 심심했다. 그래서일까 예전 살던 동네의 골목과 골목을 함께 쏘다니던 친구들이 그리웠다.      


몇 달 후 2학년 여름방학이 되자 나는 혼자 길을 나서 수유리로 향했다. 이사하기 전 어머니와 수유리와 서교동을 몇 번 오갔던 기억을 되살렸다. 시내 어디에선가에서 버스를 갈아탈 때 정류장의 어른이나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이 버스가 수유리에 가는지 물어볼 용기는 내지도 못하고 ‘수유리’라고 쓰인 행선지와 어머니와 함께 탔었던 번호가 맞는지만 확인하고 탔다.   

    

서울 도심을 벗어나자 눈에 익은 풍경이 나타났다. 삼선교를 지나 미아리쯤 가니 멀리 산봉우리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버스 유리창 너머로 북한산이 보이자 안도했던 게 기억난다. 저 큰 바위 아래에 내가 살던 옛 동네가 있었으니까.      

수유리에서 바라본 인수봉


지금도 멀리 북한산 인수봉이 보이면 그 아래에 내가 어릴 때 뛰어놀던 수유리의 골목이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수유리에 무사히 도착했다. 구멍가게 주인아저씨 내외가 반가이 맞아주던 모습과 내가 살던 골목 친구들이 놀라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내가 살던 집 앞에 가보았다. 열린 대문 너머로 빨랫줄에 내 또래 아이 옷이 걸린 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당시 수유리 골목은 대문을 활짝 열려 놓고 살았었던 것 같다.     

 

아마도 골목 친구 누군가의 집에서 점심을 얻어먹었을 것이다. 친구들은 더 놀자고 보챘지만 집을 멀리 떠나 왔다는 불안감에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그렇게 불안감으로 시작한 내 첫 여행은 안도감으로 마쳤다. 대중교통의 미덕은 정해진 목적지에 웬만하면 데려다주는 것에 있다. 채 열 살이 되지 않은 내가 대중교통이라는 어른들의 시스템을 신뢰하게 된 하루였다.     


그날 이후 몇 번 더 수유리에 갔었다. 그러나 서교동 골목에 내 또래들이 이사를 오자 난 그들과 친구가 됐다. 동네에 친구가 늘어나는 만큼 수유리는 조금씩 멀어졌다.     


3학년 여름방학은 좀 더 멀리 가보았다. 1975년은 서울에 지하철이 생기고 전철은 수원과 인천으로 연결된 해였다. 나는 지하철과 전철을 타고 서울과 서울 근교를 돌아다녔다.      


어느 날은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고 인천역까지, 다른 날은 수원역까지 다녀왔다. 인천과 수원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무사히 다녀온 것만 기억난다. 전철에서 어른들이 어린아이 혼자 어딜 가느냐 물어오는 게 두려웠던 기억도 있다. 어린이를 유괴해 껌팔이를 시킨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던 시대였다.     

그 이후에도 방학이면 혼자 버스나 전철을 타고 쏘다녔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와 3학년 때 떠난 그 여행만 뚜렷이 기억난다. 


나도 탐험가가 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나 혼자 다닌 짧은 여행이 어쩌면 탐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이나 잡지에 나오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현실 세계였지만 열 살 남짓 어린아이에게는 처음으로 개척하는 나만의 세계였으니까.    

 

집에서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멈출 때가 많다. 동식물과 자연 그리고 세상의 다양한 문물 등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내게는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재미있다.     


그날도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한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다큐멘터리 출연자를 ‘내셔널지오그래픽 익스플로러(National geographic explorer)’라고 부른 것이다. 

     

탐험가라고? 탐험은 이미 과거에 영웅적인 탐험가들에 의해 모두 끝난 게 아니었나? 


이런 의구심에 탐험이라는 용어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미지의 세계를 찾는 마음, 즉 탐구심과 미지의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 및 성과에의 기대가 결부되어 야기된 인간의 행위.   


네이버와 구글에서 찾은 여러 정의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정의였다. 내 마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읽은 탐험은 사람의 발길 닿지 않은 곳에 첫발을 내딛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서양 관점에서는 아프리카 내륙이나 아메리카 대륙이 혹은 태평양의 섬들이 미지의 세계였다. 그렇다고 그곳들이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곳은 아니었다. 이미 사람이 살고 있거나 나름의 문명과 문화를 누리며 사는 곳에 방문한 것이었다.  

   

물론 내 편협한 탐험에 관한 지식도 한몫했다. 그저 책 몇 권 읽고 "탐험은 이런 것이군" 하고 믿어버렸으니.


하지만 다양한 다큐멘터리 감상을 통해 알게 된 현대적 의미의 탐험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 가는 것뿐 아니라 이미 알려진 곳에 가더라도 새로운 관점으로 그곳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이라면 내가 도시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도 탐험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내게는 탐구할 소재가 많은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탐험가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