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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Feb 09. 2019

산책하는 히어로 <글래스>


<다크나이트>, <아이언맨> 이후 얼마나 많은 히어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나. 마블과 DC에서만 매년 5~6편의 텐트 폴 프랜차이즈가 개봉되고 간간이 <킥 애스>, <핸콕> 같은 영화들이 히어로 전성시대의 파도에 합류해보려는 시도를 한다. 


10여 년간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히어로 영화들이 개봉하면서 히어로물은 하나의 장르로서 한 단계 진화를 거쳤다. 초인적인 힘을 지닌 선한 영웅이 절대악을 물리치는 단순한 권선징악 구조에서 고뇌하고 지친 히어로, 애매한 선과 악의 구성 등 '히어로 영화는 1차원적인 블록버스터 액션물'이라는 틀을 깨는 트렌드가 자리 잡은 것이다. 이제 히어로물은 단순히 애들이나 보는 '후레쉬맨' 수준의 액션물이 아니다. 이제 히어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우울함을 토로하고 (다크나이트), 히어로란 존재가 정말 세상에 필요한지 갈등하며 (다크나이트 라이즈), 현실적으로 히어로는 세상과 어떻게 조응해야 할지 고뇌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배트맨 v 슈퍼맨) 한다. 심지어 히어로가 악이라고 상정한 적에게 완패하고 히어로의 전유물이던 결말에서의 미소를 적에게 뺏기기도 한다 (어벤져스3). 이런 부지런한 장르적 변주 덕분에 히어로 영화는 포화상태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사랑받고있다.


<글래스>는 새로운 변주의 릴레이 속에서 다시 한 번 변주를 시도한 히어로 영화다. <다크나이트>, <아이언맨> 보다 한 발 앞서 '현실적인 히어로'라는 변주를 감행한 <언브레이커블>의 후속편인 이 영화는 히어로의 정체성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 '내가 정말 필요한 존재일까'라는 공식으로 다뤄지던 히어로의 정체성 문제는 '내가 정말 히어로는 맞는 걸까'라는 의심으로 변주된다. <글래스>의 전작들을 떠올려 보면 이러한 설정이 이 영화에 얼마나 최적화된 변주인지 알 수 있다. 데이빗 던이 그냥 운이 좋고 남들 보다 튼튼하며 관찰력이 뛰어난 남자라면? 비스트가 다른 자아들이 학습한 기술로 벽을 탄 것이고 단순히 힘이 센 미치광이라면? 우리가 히어로라고, 혹은 빌런이라고 믿었던 이들이 사실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 초인은 아니었다는 의심은 히어로 영화 홍수 속에서도 특이한 설정이다. 

특이한 설정 외에도 <글래스>가 특별한 히어로 영화인 이유가 더 있다. 이 영화는 서사 보다 감정을 기반으로 스토리를 진행 시킨다. 그 감정들이 간혹 튀어 보이는 장면들이 몇 있지만 서사 보다 감정이 위에 있는 히어로 영화는 그 자체로도 특이한 위치를 점한다. 정신병원에서 글래스가 받던 신체적 학대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대사로 은유하며 학대할 것을 위협하는 씬, 간호사의 목을 긋고도 피를 보여주지 않는 씬 등이 이 영화의 스토리 진행 동력은 감정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감정을 스토리 진행 동력으로 쓰는 <글래스>의 형식적 특성은 영화의 캐릭터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데이빗 던, 비스트, 글래스 이 3명의 주인공들은 초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의심받자 감정적으로 동요한다. 그러면서 3명의 조연들이 스토리에 상대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주연들의 가족 3인이다 (케이시는 비스트와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감정적으로 가장 연결되어 있는 인물로 사실상 가족, 연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감정을 스토리 동력으로 쓰고 있는 형식의 영화가 주연들이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시점에 이들의 감정적 안식처인 가족들을 등장시켜 중요한 열쇠 역할을 배분하고 있는 것이다. 명작 영화들은 형식이 내용이 되기도 하고 내용이 형식이 되기도 하면서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룬다. 이런 점에서 <글래스>는 명작의 품위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잠깐 말한 것처럼 감정이 약간 튀는 부분들이 있다. 과연 케빈과 케이시가 연인으로 보일 정도로 깊은 교감을 한 적이 있었는가. 엘리 박사는 초인을 멸하는 집단에 속해있으면서 왜 별 이유 없이 던에게 연민을 느끼는가. 이런 부분들은 감정을 전시하기 위해 쥐어짜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너무 빈번한 플래시백의 사용 역시 아쉽다.
 


던은 자신의 자경 활동을 산책이라 말한다. 던의 활동이 지역사회에 알려지고 사람들에게 영웅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던은 자경 활동을 하러 갈 때 "잠깐 산책하러 갈게"라며 가볍게 말한다. 자경 활동을 산책이라 표현하는게 이 영화에서 만큼은 너무나 절묘한 표현이다. 던이 자경 활동을 하기 위해선 '진짜 산책'이 필요하기도 하고 브루스 윌리스 특유의 차분하고 나른한 말투, 샤밀란 감독의 영화적 특징인 느린 템포가 산책의 속성과 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벼운 명칭과 달리 산책에 대한 던의 태도는 단호하다. 아들 조셉이 손님을 앞에 두고 지금은 영업 중이니 나중에 산책을 가는 게 어떠냐고 말려도 던은 절대로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지금 당장 산책을 가야 하는 히어로. 원래 산책이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휴식 혹은 여가를 위해 천천히 걷는 것을 의미한다. 던의 산책은 여유가 없다. 물리적으로 시간을 쪼개야 하고 생업을 미뤄야 하며 타인의 고통을 염탐해야 하므로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진다. 사전적 의미와 정반대의 의미가 되어버린 던의 산책은 비스트와 글래스라는 코스에 도달한다. 산책의 도달점에선 던과 비스트의 믿음이 흔들린다. 내가 초인이라는게 망상이라면? 내가 사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영화 속에서 수차례 등장하는 상하 반전의 카메라 연출이 이들의 흔들리는 믿음을 시각화하며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글래스>는 이 뒤집힌 믿음을 글래스가 다시 한 번 뒤집으면서 끝난다. 산책의 주인공 역시 던에서 던, 비스트, 글래스의 가족에게로 반전되었으며 히어로의 존재에 대한 믿음 역시 소수에서 다수로 반전된다. 산책하는 히어로와 형상을 반전 시키는 유리 같은 악당의 만남. <글래스>의 변주가 히어로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히어로 영화의 홍수 속에서 의미 있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눈물 흘리는 괴물 같은 영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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