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없이 사랑받음으로 느끼는 긍지와 자신감

Naz

by Andrew Hong

졸업 후 우리 가족은 다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조금 더 미술에 대해 배우고 싶었기 때문에,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부모님을 강력하게 설득했다. 그곳이 바로 '파리' 였다. 나의 첫사랑이자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벨라와 떨어져 있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았지만, 난 파리가 나를 부르고 있음을 직감했다. 사실 벨라의 부모님은 상류층이었기에, 비교적 가난한 나로서는 청혼 승낙을 받기 위해서라도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굳은 결의로 마을을 나섰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지바센 마을에서 느꼈던 자연의 생동감과, 가르도바 선생님께 배웠던 '틀을 깨는 초현실적 완곡함'이었다. 계속해서 나는 도전했고 계속해서 부딪혔다. 하지만 돈이 없고 그렇다고 상류층도 아니었던 집안의 한 아이에게, 파리에서 예술가로서의 성공의 벽은 너무 높았다. 그렇게 나는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했다. 너무 힘들 때는 한 살롱가에서 흡연과 음주로 마음을 달래곤 했다. 특히 벨라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야 했다.


그러던 여느 날처럼 살롱가에서 나느 혼술을 하고 있었다. 그 때 파리 출신은 아닌 것 같은 낯선 도시에서 온 한 사내 무리들을 발견했고, 그들은 내 옆 테이블에서 떠들고 있었다. 특히 내 바로 옆 앉은 사람은 눈썹이 짙고 배가 나왔으며 강렬한 인상에 호탕한 성격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듣다 보니 타지방 딜러인 것 같았다. 잠시 그의 맞은편 사람들이 화장실로 자리를 비웠을 때 나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어색해서 형식적인 간단한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어느새 난 술의 힘을 빌려 나의 작품에 대해 그에게 신나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나의 예술을 왜 사람들이 몰라주는지 반쯤 하소연이었다.


나의 작품이 파리에서 단번에 성공하지 못한 억울함에 대한 푸념이 끝나자, 의외로 이 딜러는 매우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귀 기울여 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했다. 그렇게 우연히, 로또가 당첨될 확률처럼 난 베를린에서 개인전시회를 열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처음으로 신이 내 기도에 응답해주신 순간이었다. 마침 이 시기에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나의 뮤즈 벨라를 내 작품의 주제로 선정했다. 전시의 인기는 예상치 못하게 폭발적이었고, 눈 깜짝할 새에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전시는 나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고, 그렇게 난 평론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으며 여러 전시를 열 수 있었다.


전시회들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 벨라의 부모님께 당당하게 결혼 승낙을 받을 자신감이 생겼다. 곧바로 난 나의 운명인 벨라에게 청혼을 했고, 마침내 결혼에 골인했다. 사실 시기상 국제 정세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가 뒤숭숭한 것과 상관없이 벨라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삶은 장미빛이었고, 벨라와 함께 파리로 돌아와 더 행복하게 작품에 몰두했다.


입체파, 야수파의 기법들에 나만의 색깔을 덧입혀 난 나의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벨라를 대상으로 한 사랑과 나의 고향, 나의 종교를 그린 화폭 등 뿐만 아니라, 교회를 직접 돌아다니며 스테인드 글라스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 물론 이 모든 영광은 주님께 돌리고자 했다,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이니까. 나의 예술적 성장은 벨라의 사랑을 기반으로 교회와 사회 전반에 걸쳐 점점 더 확대되어 뻗어 나아갔다. 나는 각종 영예를 안으며 예술가로서 승승장구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건이 내게 일어났다.


국제 정세가 점점 악화되어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유색인종이었던 나를 탄압하는 세력이 기득권을 잡게 되었고, 산업 전반적으로 예술 활동에 큰 제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벨라와 멀리 이사를 가야했다. 하필 벨라가 출산 후 아직 몸 건강이 안좋은 상태였음에도, 우리는 그 먼 길을 부랴부랴 떠나야 했다. 너무 미안했따. 나 때문에 혹시나 벨라가 몸이 더 안좋아지고 병이라도 얻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짐을 싸고 파리를 떠났다.


예상대로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계절도 겨울이었거니와 한 달 가까이 계속 이동했다. 심지어 배를 타야 했는데, 폭풍우까지 만나면서 벨라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어 가는 것을 나는 옆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내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가져온 성경책으로 묵상하며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내가 작품으로 벌어들인 돈 전부는 새로운 집을 구하는 데 써야했다. 아는 인맥이 없었기에 여기저기 부동산을 방문하며 떠돌았다. 유색인종 차별을 받으며 성의 없는 말투로 높은 값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중개인의 볼멘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벨라를 위해서 안전한 곳에 좋은 집을 빨리 구하기 위해 난 온갖 수모를 참았다. 그리고 도심에서 괜찮은 거리의 적당한 거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재빠르게 중개인에게 이 집을 당장 계약하고 싶다고 언급했으나, 중개인은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2달 후에나 입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거주자의 이동과 내부 수리 등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난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꾹 참고, 얼른 벨라에게 돌아가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싶어 임시로 머물된 숙소를 향해 달렸다.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벨라가 방긋 웃으며 희끄므레 하면서도 비찬는 얼굴로 저녁식사를 차려 놓았다며 나를 반겨주었다. 너무 행복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위독했던 벨라가 멀쩡히 나았다는 사실에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벨라를 바라보며 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벨라는 아직까지는 속이 안좋다며 따뜻한 차를 마시며 미소 지은 얼굴로 내가 먹는 것을 그저 바라보았다.


다음날 아침, 잔잔히 한 쪽 눈부터 떠진 나는 커튼을 치고 눈부신 햇빛에 눈 비비며 어젯밤 행복하게 나눈 사랑을 살짝 떠올려본다. 이내 미소를 짓고 옆에 누워있던 벨라에게 다가간다. 벨라는 미소 지은 채 잠들은 모양이다.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벨라를 조심스레 깨워본다. 깊이 잠들었는지, 잠귀에 밝던 벨라가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리고 어디가 아픈것일까 유난히 벨라의 몸이 차갑다. 그순간 화사하던 세상이 잿빛 세상으로 바뀜과 동시에 난 자동반사적으로 바로 나의 귀를 벨라의 코에 대었다. 숨을 쉬지 않았다. 바로 난 나의 귀를 벨라의 가슴에 대었다. 심장이 뛰지 않았다. 그리고 난 그렇게 멍하니 얼어 버리고 말았다.


어떠한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미어 터질 것 같아서 소리치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폭발할 것 같았지만, 그저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말없이 그저 벨라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사랑을 잃고, 나의 예술을 잃었다. 내게 조건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 느끼게 해준 존재, 내게 긍지와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준 나의 뮤즈이자 유일한 사랑이었다. 내 삶의 전부인 대상을 잃었다. 내 예술의 영혼을 잃은 셈이다. 오늘 밤도 난 벨라를 그리워하며, 주님께 기도 드리며 하루를 마무리 하려 한다. 내 생이 다할 때까지 벨라가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게 해달라고... 곧 이내 나도 따라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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