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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은둔자 Mar 16. 2022

마크롱과 그보다 25살 많은 브리짓의 결혼을 도운 사랑

그들의 결혼이 가능하게 만들어준 슬픈 사랑 이야기


왕의 유모에서 왕의 정부가 된 아름다운 여인 이야기


앙리 2세와 디안 드 푸아티에 이야기 

Henri II (1519-1559) et Diane de Poitiers (1499-1566)


프랑스의 왕 앙리 2세와 디안 드 푸아티에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디안 드 푸와티에(1499-1566)는 15살에 왕실의 고관이던 45살이 더 많은 남편(루이 드 브레제)에게 시집을 간다. 그리고, 16년의 결혼생활 후에 남편과 사별하여, 31살의 나이에 과부가 된다. 그녀는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늙지 않는 외모를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뒤, 왕실에서 왕자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그렇게 어린 앙리 2세(1519-1559)는 디안의 품에서 키워졌다.

이후 앙리 2세가 18살, 디안 드 푸와티에가 38살일 때, 그녀는 왕의 정부가 된다.

디안은 젊음을 무기로, 결혼을 통해 남편의 높은 귀족 반열에 오르고, 아름다움을 무기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고, 부와 권력을 쟁취한다.





2019년 프랑스의 비아리츠 Biarritz에서 열린 G7 정상회담 중 (Flickr)


트로피 와이프 (Trophy Wife)?


역사적으로 여성의 젊음은 지위, 권력과 교환되는 하나의 가치처럼 여겨졌다. 현대에도 여전히 여성의 젊음은 권력과 부로 교환되는 가치로 유효한 듯하다.

우리는 부와 권력이 있는 나이 든 남성들이 젊은 여성을 아내로 맞는 것을 자주 본다. 트럼프가 24살이 어린 세 번째 아내(멜라니아)와 살고 있고 (물론 불화설로 위태한 듯 보이긴 하지만), 러시아의 푸틴도 전처와 이혼한 이후, 31살 차이가 나는 애인(알리나 카바예바, 러시아 국가대표 체조선수)과 4명의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영어로 ‘트로피 와이프 (Trophy Wife)’라는 단어가 있는데, 높은 경제력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중년 이상 남성들이 새로 맞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뜻한다. 위의 두 사례가 그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원리로 부와 권력, 혹은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들이 젊은 남성과 함께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마도나인데, 그녀는 자신보다 36살 더 어린 남성과 2019년부터 함께 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 처인 류드밀라도 이혼 후 21살 더 어린 남성과 재혼을 했다.

이들이 특히 큰 권력을 가진 자리에 있거나, 유명인들이라 그들의 관계가 많이 알려졌을 뿐, 우리 주변에도 연상 연하 커플은 많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남자가 나이가 더 많은 경우에는 커플을 부르는 특별한 호칭이 없는 반면, 여성이 남성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에는 ‘연상연하 커플’로 불린다. 이것이 소위 ‘일반적’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경우에서 조금 특이하거나 특별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지었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일까?

사랑하는 남녀 간의 나이 차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에마뉴엘 마크롱과 브리짓 (트로뉴: 태어날 때 성 - 오지에르: 첫 번째 남편 성 - 마크롱: 현재의 성)

Emmanuel Macron (1977,12,21) et Brigitte Trogneux (1953,4,13)


프랑스의 대통령도 연상연하 커플이다. 마크롱은 77년 12월생이고, 그녀의 아내 브리짓은 53년생이다. 즉 그들의 나이 차이는 25살이다. 프랑스인들이 이런 커플에 관대하고 너그러워서 그들이 결혼하는데 아무 장애가 없었던 것일까?

1969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하나의 사건을 얘기하면 이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브리엘 뤼시에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가브리엘 뤼시에와 크리스티앙 로시

Gabrielle Russier (1937/4/29) et Christian Rossi (1954/12/31)


31살의 가브리엘 뤼시에는 마르세이유에서 불어 선생으로 일하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고 2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녀의 학생 크리스티앙 로시는 당시 16살이었다. 크리스티앙의 부모님은 대학교수로, 아들의 불어 선생과 잘 아는 사이였는데, 그들은 가브리엘의 대학 은사였고, 가브리엘은 그들의 수제자였다.

1968년 봄, 프랑스는 전국적으로 학생과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기존의 권위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샤를 드골이 물러나고, 1969년 조르쥬 퐁피두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가브리엘과 크리스티앙은 68년의 봄 데모에 함께 참가하며 어울려 다녔다. 가브리엘이 데모에 가기 위해 크리스티앙을 차로 태우러 올 때, 크리스티앙의 부모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가브리엘과 크리스티앙이 서로 사랑에 빠진 것을 크리스티앙의 부모가 알게 된다. 그들은 아들이 미성년자인데 가브리엘이 미성년자를 납치하고 성추행을 한 것으로 경찰에 신고한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그 일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1년 후 출옥을 하고 나서도 그들은 주변의 반대에도 만남을 이어간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다시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그녀를 기소한 검사가 그녀를 모욕하며 모멸감을 주고, 그녀에게 부정적인 언론도 집요한 취재를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하기에 이른다. 1969년, 32살의 그녀가 자신보다 어린 남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죽음을 택하게 만든 사건은 프랑스 전역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1971년 영화감독 앙드레 카야트는 ‘죽을 만큼 사랑한 mourir d’aimer’ 이란 제목의 영화를 제작하고, 샤를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도, 세르쥬 레지아니(Serge Reggiani)도 그녀의 이야기를 샹송으로 만들어 부른다.


특히, 가브리엘이 자살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있던 기자회견에서, 기자가 조르쥬 퐁피두 대통령에게 가브리엘 뤼시에의 사건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그녀가 미성년자와 사랑에 빠진 죄로 감옥에 갇히고, 풀려나기를 반복하다 자살을 하게 된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어떤 것을 느꼈고, 이 사건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퐁피두 대통령은 그 질문에,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한다. 영상을 보면, 그는 뭔가 감정의 동요를 느끼는 듯했다. 오랜 침묵 후에, 시 몇 구절을 낭송하며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선다.   


« 내가 느낀 것은,

다른 많은 이들처럼... (침묵)


[원하는 이는 이해하리

나, 나의 회환은

(길거리에 남겨진)

(불행한 여인)

까닭 있는 희생자

(찢어진 치마를 입은)

잃어버린 아이의 눈에

(왜곡되어 모욕당한)

망자들을 닮은 여자

사랑받기 위해 죽은 이들]... (침묵)


[폴 엘뤼아르 Paul Eluard](의 시 일부)입니다. »


엘뤼아르의 이 시는, 독일 점령군이 프랑스에서 후퇴한 뒤에, 독일군과 사랑을 나눈, 남겨진 여인들의 처형을 바라보며 써내려 간 것이다. 역사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독일군은 적군이었고, 적군에게 모욕을 당했거나, 적군을 사랑했던 여인들은 반역자의 낙인이 찍혔다. 그중 인간적으로 사랑을 나눈 연인들도 있었겠지만, 그들의 애틋하고 서글픈 사연은 시대의 큰 파도에 앞에서 사소한 비극일 뿐.  






마크롱의 사랑이 가능하게 한 뤼시에의 슬픈 사랑 이야기


가브리엘 뤼시에의 사건은 마크롱의 사랑이야기가 가능하게 하는데, 큰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크롱의 부모들도 결혼을 한, 아이가 셋이 있는, 아들의 연극 선생 브리짓이 맘에 들지 않았겠지만, 미성년자 납치로 브리짓을 신고할 수는 없었다.

마크롱은 16살에 브리짓을 만났고, 그녀와 결혼하게 되는 2007년 30살이 될 때까지 마크롱은 그 사랑에 변함이 없었다. 브리짓은 2006년 이혼을 하고 다음 해 마크롱과 재혼을 한다. 재미있는 것은 브리짓의 첫째 딸이 마크롱과 같은 나이이고, 마크롱은 결혼과 함께 자신과 같은 나이의 의붓딸을 갖게 된 것.


프랑스에서도 여전히 그들의 관계는 특이하게 보는 지라, 마크롱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대선 중에 아주 큰 이슈가 되어 회자되기도 했었다. 마크롱은 이 소문을 유연하고 지혜롭게 잘 넘겼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브리짓의 막내딸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 나는 엄마와 마뉴엘(마크롱의 이름)을 통해 사랑에 대한 본질을 분명하게 목격한다. 둘이 함께 할 때는, 마치 이 세상에 둘 만 존재하는 듯 보인다. »

어쩌면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둘만의 의미를 찾고, 만들고, 가꾸는 것이 아닐까.


크리스티앙 로시도 언론에 유일한 인터뷰를 남긴다.

«  가브리엘은 내게 2년 동안 추억을 남겼습니다.

오직 나에게만 남긴 추억.

나는 그것에 대해 얘기할 게 없어요.

나는 그것을 지금도 느끼고 있고,

그것을 살았던 것은 오직 나예요.

나머지는, 사람들이 알 듯:

가브리엘 뤼시에라는 여자가 있었고,

우리는 서로 사랑했고,

사람들이 그녀를 감옥에 가뒀고,

그녀는 자살을 했죠. »


오직 두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는 사랑을 그 누가 틀에 가두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가 있을까.

프랑스 입학시험 바칼로레아에서 철학을 반나절 동안 치르게 하는 이유는 뭘까?

철학이 기본 소양이라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 아닐까.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질문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잘 생각하고, 본질에 다가가는 방법으로 철학을 선택한 것 아닐까.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함께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의 생각을 말하며 구체화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을 다양화하고.

지난 일들 속에서 조금씩 현명함을 축적해 가고...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도 시인, 문인들이 정치를 했다. 시인은 말로 창작을 하는 사람이다. 시인은 정말로 잘 보고 잘 관찰하고 본질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세심하게 살펴 마음을 읽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을 글로 빗어내야 한다.

시인은 마음이 아름다워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을 잘 살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라야 자신을 돌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돌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법을 잘 아는 사람들 뿐 아니라, 시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나오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퐁피두의 흔들리는 감정과 그것을 담아낼 아름답고 상징적인 시의 낭송 기자회견과 닮은 상황이 내 나라에서도 벌어지길 기다려 본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_elRwUBb_U&t=7s 

karambolage (프랑스와 독일이 함께 만든 방송국 아르테에서 두 나라 문화의 다양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는 프로그램. 우리나라도 중국이나 일본과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다. )

이 영상에서는 마크롱의 이야기와, 가브리엘 뤼시에의 이야기와,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와 영화, 그리고 조르쥬 퐁피두 대통령의 기자회견, 그가 낭송한 시 구절이 모두 짤막하게 담겨있다.

사실,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선생이 미성년인 제자를 성희롱하는 것이다란 의견도 많다. 그만큼 프랑스에도 이런 사랑, 특히 선생이 제자와 엮이는 것을 스캔들로 여기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은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dw-1cdNpaJg

브리짓 마크롱의 비밀 이야기 - 다큐 / 마담의 영광 - 책

브리짓 마크롱에 관한 다큐를 만든 감독과 책을 쓴 작가의 인터뷰

젊은(? 어린) 시절의 마크롱, 연극 선생이던 브리짓, 브리짓 딸의 인터뷰, 마크롱과 브리짓의 결혼식 동영상 등을 볼 수 있다.



덧붙여,

우연히 접하게 된 조선일보의 가브리엘 뤼시에와 크리스티앙 로시, 그리고 조르쥬 퐁피두에 대한 옛 기사 중 오류를 바로 잡아본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2/09/15/2002091570176.html

김도원, 2002년 9월 15일

[일사일언] 시가 된 퐁피두 총리의 ‘말’... 박철화

이 기사의 여러 가지 오류

가정을 가진 -> 가정을 가졌었던, 이혼한

당사자들은 달리는 열차의 철로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 여교사 가브리엘이 자신의 집에서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한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크리스티앙은 일러스터로 잘 살고 있다. 심지어 얼마 전에 웨스트(West)란 작품을 내고 한 인터뷰를 유튜브에서 볼 수도 있다.

불륜이라 목청을 높였다기보다는, 미성년자와 사랑에 빠진 나이 든 여자에 대한 질책으로, 여교사는 미성년자를 납치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다.

짓궂은 기자? 글쎄... 이것이 당시 프랑스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고,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총리 -> 조르쥬 퐁피두는 당시 총리가 아니라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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