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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당한 박선생 Nov 18. 2021

어제와 비슷한, 내일과 비슷할 오늘이 좋다

단순하고 익숙한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

출근

알람2개다. 7시 57분 지하철을 탈 땐 7시, 8시 11분 지하철을 탈 때는 7시 10분으로 맞춘다.

아침에 일어나면 유산균을 챙겨 먹고, 물을 한 컵 마신다. 짧은 화장을 하고 출근 준비를 마치면 간단하게 요기를 한다. 그때그때 다르지만 요즘은 담백한 빵에 삶은 계란 하나.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


짐이 별로 없거나 비가 안 오면 원래 내려야 할 역에서 두 정거장 정도 일찍 내려서 걸어간다. 하루 운동량을 좀 늘려야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좀 걷다 보면 이마에 땀이 조금 베이는 게 몸이 풀리는 느낌이 들어 좋다. 걸음이 빠른 편이라 30분이면  회사에 도착.


출근하면 가장 먼저 컴퓨터를 켜고 치료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그리고 치료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후, 각종 치료 기기들을 세팅한다. 업무 시작시간보다 일찍 출근하는 편이라 준비를 마쳐도 여유가 조금 있어서 친구가 선물해준 텀블러에 두유 라테를 탄다. 두유 한 개에  G7커피 한 개 반이면 적당하다.


히터를 켜기 전엔 치료실에 아직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데, 아무도 없는 이 고요함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난 퇴근시간 보다도 업무 시작하기 전에 조용한 그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업무

지금 일하는 회사는 복지관이다. 이전에 근무했던 병원이 갑작스레 폐업하는 바람에 출산휴가 대체 계약직으로 이곳에 입사했다. 그동안 병원에서만 근무하다가 복지기관에서 근무하는 건 처음이라 어찌나 긴장되던지. 방향성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였고, 내게는 큰 도전이었는데 어느덧 입사한 지 두 달이 넘어간다.


이곳에 입사하면서 처음으로 명함이 생겼다. 목에 거는 명찰도. 남들 다 가지는 명함이 뭐 대수일까 싶지만, 지금껏 사회생활하며 처음 생긴 명함이라 그런지 자꾸 눈길이 간다. 홈페이지 조직도에 내 이름도 올라와 있다. 병원에 근무할 때는 치료팀 인원이 많기도 하지만 치료사 한 명 한 명을 사이트에 올려주는 병원도 거의 없었기에 조금 신기했다. 왠지 내가 일하는 회사라는 소속감도 더 짙어지는 느낌이랄까.


이전에는 환자가 내 고객이었지만 지금은 복지관 회원 어르신들이 고객이다. 출근 첫날부터 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생기면서 며칠간은 영혼이 안드로메다를 제집 드나들듯 오갔다. 우선 치료실을 내방하는 어르신들 성함을 외우기 시작했다. 성함을 모르면 일 처리 속도가 느려지는데, 그렇다고 응대할 때마다 여쭐 수도 없는 일. 직접 만든 명찰을 채워드리고 성함과 얼굴을 매치하며 외웠는데 어르신들이 재밌어하시면서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했다.


시간에 맞추어 치료를 하면서 어르신들의 이런저런 문의사항에 응대한다. 어르신들이 복지관에 오셔서야 또래를 만나시는 터라 저마다 반갑게 대화를 나누시는데, 귀가 어두우시니 자꾸만 데시벨이 올라간다. 덩달아 나도 목청이 좋아졌다.

이곳 치료실은 바닥이 온돌이어서 어르신들이 신발은 현관에 벗어두고 들어오시는데 혹여나 넘어지실까 봐 중간중간 신발정리도 한다. 이번에 구입한 신발정리 집게가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그날그날 들어오는 협조 요청이나 필요한 행정처리를 해나가면서 하루에 하나씩 케임 퀘스트 클리어하는 기분으로 일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업무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따뜻하고 친절하신 이곳 직원분들의 버프 덕분에 큰 사고 없이 여기까지 왔다.


요즘은 사회초년생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잘 모르니 쭈뼛거리게 되고, 행동이나 목소리 톤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우물쭈물하는 내가 답답하기도 하고, 새로운 시작에 설레기도 하면서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열심히 고군분투했더니 지금은 조금 익숙해져서 방식과 순서가 생겼다. 종종 삐걱거릴 때는 있지만 텐션을 올리기도 하고, 한 발 물러서기도 하면서 그렇게 조금씩 아귀를 맞춰나가고 있다.


퇴근

복지관 1층 마당에 자그마한 정원이 있다. 작아도 오솔길이며 그늘막이며 심지어 큰 감나무까지 오밀조밀하게 조성이 잘 되어 있는데 퇴근 무렵이면 감나무 이파리가 불그스름해진다.  


오후 4시가 넘어가면서는 낮에 치료실을 내방하는 어르신들 응대로 미처 손대지 못했던 서류업무를 한다. 아직은 서류 하나하나가 낯설고 조심스러워 처리속도가 느리지만 겨울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한다.

부장님께 그날의 업무일지를 보고하고 나면 직원들이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는 클린타임이 된다. 치료실을 마저 정리하고, 창문 닫고 옷을 갈아입으면 퇴근 준비 끝. 낮 동안 시끌시끌했던 치료실이 또다시 고요해졌다. 열심히 일한 하루는 그 적막속에 놓아두고 퇴근한다.


오늘은 어제와 비슷했고, 내일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나는 단순한 일상, 익숙한 오늘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할 일이 많아서 하루 일정이 꽉 차거나 변화가 잦은 건 벅차다.

 

지금의 나는 안주하는 걸 선호하는 편인가 보다. 내 개인의 삶에서 현재 가진 것에 큰 불만이 없고,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새로움에 도전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나이가 좀 더 들면 지금보다 모든 것이 더 빠르게 달라질 세상이 조금 버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삶은 분명 어느 방향으로든 조금씩 변화한다. 지금껏 내 인생이 그런 것처럼. 그러니 필요하다면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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