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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c 10. 2021

제주생활백서

제주것 : 결혼 문화로 보는 섬나라

제주 토박이 커플의 결혼식은 함덕의 작은 호텔에서 치러졌는데 피로연이 무려 3일 동안 이어졌다. 옛날에는 일주일 내 내도 했었지만 요즘은 간소화돼서 동네에선 3일, 시내에선 하루 정도 잔치를 연다고 했다. 나는 토박이 커플의 부신랑이 과거 인연이어서 결혼식 당일 축하하는 자리만 참석했다. 보통의 피로연과 달랐던 점은 축의금을 넣는 함과 식권이 없었고(동네잔치를 찾아다니면 끼니 해결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함) 서로 인사하며 봉투가 오고 갔는데 일을 돕는 부신랑, 부신부에게 축의금 봉투를 내밀면 농협상품권이 담긴 봉투를 답례로 줬다. 결혼식 전날엔 육지에서 온 친구들과 숙소를 잡고 배달음식으로 잔치를 했고, 친한 친구들은 3일 동안의 피로연 내내 자리를 지키며 도왔다고 들었다. 부신랑, 부신부라는 역을 맡은 친구들은 연락에서부터 결혼식의 처음과 끝 모든 궂은일들을 돕는다. 섬사람들의 결속력과 상부상조는 잔치에서 더욱 빛이 나는 것 같다. 당시 내가 잔치가 이렇게 긴 연유에 대해 물었을 때 결혼 당사자의 시간보다는 축하해 주러 오는 손님의 시간을 배려한다고 했던 답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배려를 통해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서로 오고 가는 시간이며 음식을 차려놓고 여러 사람에게 대접하는 잔치의 진정한 의미를 잊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는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결혼식을 뿌린 대로 거두는, 일종의 거래와 대가로 생각하는 육지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내려온 신부와 제주 토박이 신랑의 결혼식은, 제주 시내의 메종 글래드 호텔에서 열린 보통의 결혼식이었다. 육지 신부는 제주에서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었고 신랑은 가끔 바다에서 보며 인사하는 정도였던 나는 축의금을 신부에게만 냈는데, 당시 제주 토박이 인연분은 신랑, 신부를 모두 안다며 각각에게 축의금을 냈다. 이것을 겹부조라고 하던데, 섬나라의 미덕이 여기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결혼식 후에 예쁜 아기가 태어났고 집에 초대를 받아 자연스럽게 제주의 결혼에 관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결혼비용에서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 예단 등을 준비하는 것을 관례로 알고 자랐던 나는 혼수, 예단 등의 비용을 신랑 쪽으로부터 받았고 집도 신랑이 마련했다는 얘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신랑이 신부 측에 돈을 지불하고 결혼식의 모든 비용을 내는 것과 안거리와 밖거리로 나누듯 결혼을 독립적 가정으로 인정하고 분가시키는 것은 제주의 오랜 관습이라는 것이었다. 제주도를 삼다도( 三多島)라 일컫는 말에는 돌과 바람 그리고 女多(여자)가 있다. 옛날에는 제주의 남자들이 바다에서 일하며 조난이나 사망의 경우가 많아 여자가 수적으로 많았고, 제주의 생활환경이 각박해서 남자와 함께 일터로 나오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해남보다 해녀가 많고 지금도 일자리가 마땅치 않은 제주에는 일하는 여성이 많다. 과거 제주에서 여성이 경제적으로는 줄곧 가장의 역할을 해왔기에 신랑이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 내려오는 관습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주 남자들은 한량이 많다'라는 이야기를 낳은 것도 오랜 관습과 무관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제주의 독특한 환경 속에서 여성의 경제적 지위 상승이 시댁과의 관계에서 독립적 평등을 이루었고 또한 겹부조 문화가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진짜 시골의 시끌벅적한 잔치로 즐겁고 유쾌했던 직장 상사의 결혼식은 하루 동안 동네 체육관에서 열렸다. 나와 또래 친구들이 함께 가서 일일 아르바이트로 하루 종일 서빙을 도왔다. 집에서 만드신 몇 가지 밑반찬을 제외하고는 출장 뷔페의 음식으로 채워졌다. 제주의 결혼식뿐만 아니라 잔치에선 수육이라는 메뉴가 공통적으로 존재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서 회보다 흑돼지가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잔치상에 고정 메뉴로 오르는 것은 제주에서 돼지의 가치를 생각해 보게 한다. 흑돼지가 천연기념물이 된 것 처럼 제주에서 돼지는 생활, 민속, 의식주, 신앙 등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고 문화적․향토적 가치가 뛰어난 존재임이 분명하다. 신랑 신부가 손님을 맞으면 우리는 열심히 상을 차렸다. 늦깎이 직장 상사의 결혼에는 동네 어르신부터 친인척까지 꽤 많이 찾아 주셔서 농협상품권이 떨어져 생필품을 답례로 건네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윷놀이판도 열렸다. 난생처음 보는 제주의 윷놀이 형태는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윷놀이판 자체가 육지에서 알던 것과 다르고 윷이 매우 작으며 제주 윷놀이에는 결정적으로 빽도가 없다. 실제 윷놀이 소주방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많은 돈이 오고 가는 도박이 될 수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신랑님의 취기 가득한 흥겨움으로 달아오르고 무르익은 잔치는 밤이 돼서야 끝이 났다.


경조사는 이미 사회 인식 등의 많은 변화로 간소화되는 추세였지만, 코로나 여파로 그 시계가 더 빨라진 느낌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메타버스의 공간이나 앱을 통해서 축하와 위로를 건네는 것이 일반화될지도 모르겠다. 미풍양속으로 내려오던 우리의 경조사 문화는 언제부터인가 취지를 벗어나 준만큼 돌려받아야 한다는 인식과 인간관계의 의무처럼 느껴지는 불편함이 된 것 같다. 허례허식 없이 마음을 전하고 합리적인 경조사 문화가 되길 바랬던 나는 간소화된 변화가 조금은 반갑다. 동시에 동네 이웃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잔치 문화의 개념인 제주의 결혼식처럼 진심 어린 축하와 함께 기뻐하는 따뜻한 마음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닌지 조금 아쉽기도 하다. 나 조차도 제주에 살다 보니 안 주고 안 받기를 실천하며 자연스럽게 경조사를 챙기는 일이 많지 않았고, 결혼식 없는 결혼을 꿈꾸게 됐다. 제주의 결혼 문화에 대해 내가 보고 들었던 내용들을 기록하고 돌아보면서 여건이 된다면 제주에서 하객들과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고 축하를 주고받으며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는 작지만 마음은 큰 잔치가 내 결혼식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다양하고 생소한 섬나라의 문화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느낌이다. 천천히 마주하다보면 언젠가는 육지 것이 아닌 제주 것이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제주의 윷놀이    출처 : sbs '자기야 - 백년손님'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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