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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승 강경빈 Jul 20. 2021

슈뢰딩거의 강아지

코코가 앞발을 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이 아파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심심해서 발을 빤 거였다. 사람으로 치면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무료함을 달래는 것과 비슷한 거다. 그런데 발을 계속 빨면 축축해지면서 심하면 습진까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발 빠는 걸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동물병원 원장님과 상담을 했다. 발 빠는 행동을 볼 때마다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려주고, 혹시나 발을 심하게 빨아서 빨갛게 부어오르거나 상처가 나면 마데카솔을 발라주면 좋다고 하셨다. 마데카솔을 발라주고 나면 코코가 그걸 다 핥아먹는 문제가 생겼다. 아무래도 발바닥에 이상한 게 묻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며칠을 고민하다 다이소에서 해답을 찾았다. 해답은 바로 강아지용 양말. 마데카솔을 바른 후 양말을 신겨놓으면 발 상처가 아물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코코 스스로 양말을 벗는 스킬을 개발하며 양말은 절반의 정답이 되었다. 마데카솔이 발바닥에 스며들 시간은 벌었지만 양말 벗기 스킬과 뾰족한 발톱으로 인해 구멍 난 양말만 늘어갔다. 다행히도 발 빠는 습관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발 빠는 습관이 다시 시작됐다. 전에는 앞 발만 빨았는데, 이젠 앞발 뒷발 가리지 않고 연신 빨아댔다. 아니 발바닥을 빨다 못해 잘근잘근 씹는 것 같았다. 사실 발을 빠는 건 코코 잘못은 아니다. 얘는 그냥 심심한 거다. 산책이라던가 공놀이라 던가 다른 재밌는 게 있으면 발을 빨 이유가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비가 많이 오면서 산책 횟수가 줄어든 시점부터 발 빠는 행동이 다시 시작된 것 같았다. 


주의를 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발을 못 빨게 하면 숨어서 빤다. 한참 안 보여서 찾으러 다니면 어딘가에 숨어서 발을 빨고 있는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됐다. 무료함은 달랬을지 모르지만 발이 벌겋게 부었다. 좀 더 심해지면 습진처럼 될 것 같았다. 


사실 코코 입장에서 보면 발을 빠는 행동은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첫 째는 무료함을 달래는 것, 둘째는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코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발을 빨고 있으면 나나 아내가 관심을 가져준다. 물론 큰 그림을 생각할 땐 발을 심하게 빨면 결국 코코 손해다. 발에 상처가 나서 산책을 못 가니 말이다. 게다가 상처 난 발에 바르는 마데카솔을 따갑다.


상처 부위에 마데카솔을 발라주면 따가운지 발을 어떻게 할지 몰라한다. 그 모습이 안쓰럽지만 상처가 더 심해지는 걸 방치할 수는 없다. 짠한 마음에 마데카솔을 바르고 나면 코코에게 치즈 간식을 준다. 나쁘지 않은 거래다. 마데카솔을 핥지 못하게 하려고 오랜만에 코코 양말을 꺼냈다. 오랜만에 마주한 양말은 너무 해져있었다. 이건 양말을 신은 것도 아니고 안 신은 것도 아니다. 마치 슈뢰딩거의 상자처럼 말이다. 



개를 키우다 보면 무조건 잘해주는 게 사랑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심심하다고 발을 빠는 행동을 방치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다른 데서 재미를 찾도록 만들어 주는 게 사랑이다. 발에 상처가 났는데, 마데카솔을 바르면 아프니까 상처를 방치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잠깐 따갑더라도 상처가 아물게 도와주는 게 사랑이다. 사랑과 함께 책임감도 늘어난다. 코코 혼자서는 밥과 물을 챙겨 먹을 수 없다. 코코 혼자서는 산책을 갈 수가 없다. 코코 혼자서는 동물병원 검진을 갈 수 없다. 


어릴 때 생각한 30대의 나, 실제 30대가 된 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었다. 어릴 때 생각했던 것만큼 성숙한 어른이 아니었다. 그런데 코코를 키우면서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나도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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