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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ug 20. 2023

고독한 자화상 solitude self-portrait

feat. solitude와 self portrait , 사카모토 류이치


    

1.

 solitude라는 곡을 좋아한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낮은음 사이로 던져지는 높은 음의 동그라미들이 퍼지고 겹쳐지다 다시 차분히 내려앉는, 또 그것이 반복되는. 느리게 뻗는 기지개와 긴 산책이 어울리는 곡.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나가는 것들을 멍하니 바라볼 때면 이 곡이 건네는 부드러운 무게와 홀가분한 호흡을 감각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떠올린다. 아이들이 떠나간 텅 빈 운동장, 눈 쌓인 지붕, 고인 웅덩이, 7월의 나무를 흔드는 바람, 책을 펼치고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 밀물에 쓸려오는 작은 돌멩이, 빗물이 만드는 동심원, 누군가 벗어둔 신발, 턱까지 끌어올린 까만 터틀넥, 블라인드 아래의 몬스테라, 잘린 머리카락.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는 그런 것들.

 그러니까 고독 solitude 한 고요 같은 것들.


 자칫 외로움으로 오해받고 ‘고독사(라기보다 고립사)’라는 극단의 절망적인 상황까지 떠맡아 버린 단어지만 그 근원은 평온하게 가라앉은 내면이다. 축제가 모두 끝나고 떠나는 이들보다 여전히 그곳에 남아 여운을 정리하는 사람의 것으로 묵묵히 의자를 정리하고 떨어진 풍선들을 그러모으는 마음이다.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자신을 지키는 이들.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지난 시간과 잘 모르는 지금을 껴안아주고 푸른 저녁 강에 발을 담그는 이들. 정물처럼 가만히 앉거나 서서 주홍으로 물드는 하늘을 알아채고 다가올 적막이 두렵지 않은 이들. 아마도 고독은 그들에게 가까운 언어다. 상상해 보라. 고독은 결코 슬프지 않다. 고독이 익숙한 인간도 슬프지 않을 것이다.



2.

 자화상 self portrait은 툭, 툭, 장난스러운 음들을 시작으로 농담 같은 멜로디, 청춘의 비트를 실은 드럼이 이어진다. 괜찮아, 뭐 어때, 음은 내 등을 여전히 가볍게 두드리고 나는 말야, 제 얘기를 계속한다. 여름이 지나가고 난 뒤 잔열이 조금 남은 자리에 살짝의 아쉬움과 약간의 기대가 섞여 빙그르르 원을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거울을 본다. 가볍게 달음질치는 음계의 선을 따라가며 생각한다.


 나는 나의 얼굴을 어떤 선과 면으로 그릴 것인가.

 어떤 음들로 나를 담아낼 것인가.


 작업은 고독을 먹고사는 것 같다. 글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홀로’를 먹어야만 적어도 뭔가가 나온다. 상황이나 타인과의 대화에서 어떤 재료가 떠올라도 문장과 음정을 오리고 붙이고 나열하는 것은 완전히 개인적인 일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나기 같은 시간을 보내다 홀로 앉아 떨어진 빗방울들을 가늠하기, 나의 작업은 그렇게 시작된다. 집으로 돌아와 살갗에 닿은 물기나 어깨와 발등으로 떨어진 물의 결정을 가만히 살펴보고 손바닥을 모아 떨어진 빗방울을 주워 담는 것이다. 어떤 빗방울은 이미 흔적도 없이 뭉개지고 또 어떤 빗방울은 형태가 변해 있다. 그래도 아랑곳 않고 단상을 모으고 낱말을 모은다. 모두 혼자만의 작업이다. 지켜보고 그러모으다 간단히 적기도 한다. 내 책상 두 번째 서랍에는 그런 단어와 형태소가 가득 들어 있고 그들은 나를 닮아 있다.


 스무 살 거울을 보며 내 얼굴을 따라 그린 적이 있다. 코 끝의 점, 속눈썹, 둥근 콧볼, 흐린 입술 선. 어떻게 구도를 잡는지 몰라 거울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 종이에 남겨진 비대칭의 얼굴은 어딘가 익숙했지만 낯설었다. 형태는 닮았으나 느낌이 달랐다. 나를 나로 말하는 것은 코 끝의 점보다 눈빛, 체온, 체취, 쓰는 언어가 아닐까. 수집한 수만의 단어들, 속삭인 말들이 나를 이루고 바라본 배경음이 여백을 메워야 하는 게 아닐까. 스물의 나는 그런 생각들을 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자화상은 격렬하지 않지만 벅차오르는, 한참 아끼던 장난감을 닮았다. 고독이 익숙한 인간은 역시 슬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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