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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May 25. 2024

취미가 자위 행위라고 말한 것은 니체다


이어진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는다.


책의 면면을 접고 베끼는 건 나의 천성입니다. 더 이상 접을 종이가 남아 있지 않을 때 낱말을 하나씩 떼내 씹는 건 나의 오랜 습관이고요.


첫 문장에서는 자음을

두 번째 문장에서는 모음을

세 번째 문장에서는 문장 부호를


빈 여백은 혀로 핥아

입에 굴리다 손바닥에 꺼내고는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 책에 붙인다.


반듯하게 새로 붙여진 말들과 모서리가

새의 날개처럼 펼쳐지고

베낀 말들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순간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꺼내지 못한 입 속의 글자들이 굳어 쌓이는 것은 나의 고질적인 병이고요.


새로 붙여진 말들은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기록은 기억보다 신실하다는 믿음

시기하는 숭앙이 책의 모서리를 접고

삼키지도 못하는 글자를 입안에 맴돌게 해.

그래서 나는 자주 목이 막히나 봐.


모서리를 접고 손끝의 살갗이 벌게질 때까지 베끼고 핥는 의식과

축축히 나의 입안을 맴도는

붙여진 말들은 그리하여


모서리마다 접힌 기도문


나의

마르지 않는 혓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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