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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Jun 26. 2024

물가에 독이 퍼지는 여름이 오면



당신은 나의 가장 연한 부분을 알고 있지요

주눅 든 개의 눈은 숨길 수가

숨겨도 들켜버린 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사랑이라 믿었던

사랑일 수도 있었던

 

흰 뼈처럼 풀이 돋는 빛의 살결에


숨의 간격이 바빠지고


물가에 독이 퍼지는 여름이 오면


당신, 아름다운 당신


얇은 밑창의 신발을 벗어

차오르는 물에 발을 담글게요

 

짧게 자른 시간은 얇은 종이에 싸고


이미

닳아버린 조각과

이미

없어진 이름들은

잼 유리병에 담아*


당신, 사랑스러운 당신

아름다운 시절에 죽고 싶다고

어린 내가 말했던가요


병에 담긴 유해

켜켜이 잘려나간 손톱과 머리카락

나의 천천하고 고요한 죽음은 그리하여

당신을 위한 선물


사랑이라 믿었던

사랑일 수도 있었던

순간의 그림자에서


나의 가장 연한 부분을 알고 있는 당신

이미

죽어버린 나를 껴안는 당신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당신이었습니다





* Adrian Piper의 What will become of me라는 작품은 1985년부터 꿀 유리병에 자신의 머리카락과 손톱, 마른 피부를 담아 전시한 것으로 마지막은 자신의 유해를 병에 담을 예정이라고 한다. MOMA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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