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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Me Mar 22. 2021

카톡 프로필 사진의 저주

나의 일그러진 상품화

내 동생은 30대가 코앞인 모태솔로다.

출처 : 글그램


나는 자타공인 동생을 너무나 사랑하는 언니다.


동생이 딸같이 느껴지고 내 보물같이 느껴져서 너무나 소중하다.  나도 유난스럽다고 생각하지만 동생을 아끼는 내 마음은 애틋하기만 하다. 곧 결혼해서 집을 떠나는 내가 아직 연애한 번 못 해본 동생이 너무 마음에 걸려 직접 소개팅 주선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쉽지 않았다. 내 눈에 금이고 옥같은 동생을 누구와 연결해 줄지 마음을 정하게는 쉽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모르는 한 다리 건넌 누군가를 해주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고 주변에 주선을 요청했다.


주선자에게 건네줄 사진을 고르기 위해 동생과 500장이 넘는 앨범에서 사진에서 하나씩 추려보기 시작했다. 2021년도부터 시작된 사진은 2017년도까지 내려갔다. 적당히 예쁘면서도 실물과 너무 동떨어지지 않으며 분위기 있어 보이는 사진을 고르는 건 쉽지 않았다.


점점 더 동생의 사진을 객관적으로 보며


'이건 이마가 너무 넓게 나왔어' '이건 턱이 너무 커 보여' '이건 피부가 안 좋아 보여' 하며 동생의 얼굴을 평가하고 있었다.


동생은 점점 본인이 상품이 되어가고 있는 기분이라고 했고 나도 우울해져 갔다.  사진 속 시원하게 웃고 있는 동생의 장난스러운 모습이 내 눈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웠으나  "남의 눈에 여자로서 매력적 이어 보일까"란 의문이 들면서 점점 내 동생의 모습이 아닌 사진을 찾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동생을 상품화시켜 억지로 세상에 내보낸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 또한 상품화되어 소개팅 자리를 전전하던 과거가 떠올라 슬펐다.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카톡사진을 다른 걸로 바꾸자 약속 취소도 없이 잠수 타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예쁜 동기는 맨날 소개팅 시켜주면서 나에게는 그 누구도 소개해주지 않는 선배를 보며 내 자존감은 낮아져 갔다.


비참했다.


외모 콤플렉스가 극에 달하고 카톡 프로필 사진을 바꿀 때면 친구들에게 몇 번씩이나 어떤 사진이 나은지 컨펌을 받고 올렸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나" 중에 "제일 예쁜 나"로 거는 게 내 숙명같이 느껴졌다. 나중엔 점점 스트레스가 돼서 결국 내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


그러다 지금의 예비 남편을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거의 자포자기의 마음이었다. 될 대로 돼라. 서로 사진 한 장 교환 없이, 나는 "29살 남자"라는 설명만, 예비남편은 "여자"라는 설명만 듣고 소개팅 자리에서 만났다. 나중에 들어보니 신랑은 내 나이도 모르고 나왔단다.


연애 4년 차, 결혼을 앞둔 지금, 내 떡진 머리, 투 턱까지 사랑스럽다고 말해주는 이 사람 덕에 카톡 프로필 사진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남의 눈에 예뻐 보이는 나" 보단 "내 눈에 예뻐 보이는 나"를 올릴 용기가 생겼다. "나 이 사진 카톡 프로필로 올려도 될까?"라고 전처럼 남의 허락을 구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 동생을 사랑한다. 동생이 어떤 모습이건 사랑한다. 만약 내 동생이 나처럼 카톡 프로필 사진의 저주에 걸린다면 내가 풀어 줘야겠다!

다른 좋은 남자가 나타나서 풀어주면 더 좋고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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