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핑크쟁이김작가 Jan 14. 2022

추위를 즐기는 이유(ft.빙어낚시)

3년 만에 찾아간 아지트에서 잡았더니!

남편이 열심히 판 얼음 위 구멍, 얼음 두께가 상당하다


정신없이 아이를 키우며 2022년을 맞이했다. 남편과 나의 취미생활은 잠시 멀어졌고 아이가 잠들고 육퇴 하고 나면 그나마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 재방송을 본다. 우리의 취미인 낚시 생각을 하면 가슴 한편이 아렸다. 이맘때 우리는 늘 날씨를 확인하고 한파 특보가 내리면 기대하곤 했다. 왜냐...하면? 얼음이 두텁게 얼어붙으면 으레 빙어를 낚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사실 얼음을 뚫지 않아도 빙어낚시는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고로움과 생고생을 굳이 하려는 건 얼음 위에서 즐기는 빙어낚시는 좀 더 짜릿함이 있기 때문이다.


두텁게 얼어붙은 얼음을 끌이나 아이스 오거 등의 장비로 뚫으면 퐁 하고 얼음에 예쁘게 구멍이 난다. 그 구멍 안으로 얼음 알갱이들을 걷어내고 미끼를 끼운 낚싯줄을 내리면 파르르 파르르 톡톡하고 떨리는 빙어 입질이 시작된다. 그 기특한 입질은 아기자기한 손맛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파르르 톡톡 파르르 톡톡. 낚싯줄을 넣자마자 떨리는 일명 느나(넣으면 나오는) 모드를 한 번 경험해본다면 그다음은 한 번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한 번도 못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는 빙어낚시!


입덧이 시작된 이래로 출산과 육아가 밀려들고 나서, 우리의 삶은 많이 바뀌었다. 우리만의 공간이었던 곳에 아들의 장난감과 짐으로 가득해졌다. 아들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충만해진 우리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취미=낚시'라는 공식은 현재형이다. 두 사람이 오래도록 잘 맞고 잘 지낼 수 있는 건,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건 아니다. 노력 또한 필요하다. 공대생인 남편과 문학소녀인 나의 성향은 극과 극이었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해줄 수 있는 데는 취미가 한몫했다. 달라도 다른 우리가 이토록 잘 맞게 된 데는 낚시가 8할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런 낚시를 약... 2년 가까이하지 못하자 안달이 났다. 매년 겨울 한파주의보가 뜨면 당장 떠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자주 가던 낚시 카페와 블로그를 뒤적인다. 가고 싶다. 가고 싶다. 한 마리라도 잡고 싶다. 파르르 톡톡 떨리는 기특한 빙어의 입질을 느끼고 싶다. 이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낚시 유튜브까지 뒤적이면서 대리 만족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낚시를 하는 동안은 나는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다. 잡는 동안 서로를 독려하고 빙어가 어느 곳에서 좀 더 입질이 잘 오고 잘 잡히는지가 관건이다. 낚시를 할 땐 모두가 평등하다.


낚시를 하는 이유는 참 많지만, 이 평등해질 수 있는 취미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때마침 추위가 다시 찾아왔다. 뉴스에는 물이 얼 수 있으니 꼭 틀어두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난 물을 살짝 틀어놓고 누우면서 낚시 카페를 기웃거렸다. 우리가 자주 가던 낚시터에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다녀온 조행기를 올려둬서 한참 들여다봤다. 남들이 올린 글에 나를 대입해보고 내가 다녀온 것처럼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한 번 다녀와볼까? 사람들이 한적한 우리만 아는 아지트에서 한 번 해보자고 제안해준 남편이 왜 그렇게 고맙던지. 남편의 제안에 눈물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그렇게 오랜만에 남편과 낚시 짐을 쌌다. 귀요미 아들은 따뜻한 시댁에 맡겨두고 든든하게 옷을 차려입고 남편과 겨울 한정 빙어낚시를 하러 나섰다. 딱 이맘때부터 대략 길어도 1달 남짓 남은 이 기간에 할 수 있는 얼음낚시를 할 수 있다니! 시어머니 앞에서 티가 날 정도로 몹시도 즐겁고 달떴다. 사람에겐 숨길 수 없는 3가지가 기침과 가난, 사랑이라는데 남편과 나, 우리에겐 낚시였다. 아들, 미안해! 엄마도 아빠랑 하고 싶은 거 하고 와서 에너지 충전해서 더더 재미있게 놀아줄게. 빠이빠이 하고 손 흔드는 아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섰다.




수심 체크를 위해 바늘을 달지 않고 추만 달았다


오랜만에 찾은 우리의 빙어낚시 아지트. 사람도 별로 없어서 요즘 같은 시국엔 좀 다행이었다. 사람도 없으니 편하게 빙어낚시를 즐길 수 있겠지? 생각하며 남편은 얼음의 두께를 재볼 겸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남편 옆에서 낚시 짐들을 정리하고 있는 중에 '퐁'하고 얼음이 뚫렸다. 꽤 두텁게 얼어붙은 얼음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두텁게 얼어붙은 얼음 위에서 우리는 간소하게 짐을 풀고 빙어 낚시채비를 준비했다. 텐트까지 칠 정도의 날씨는 아니어서 가볍게 서서 빙어를 낚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오고 나서 한 팀 정도가 따라붙었는데, 그들은 우리와 가까운 쪽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이 만든 구멍을 들여다보더니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니 조금 거슬렸지만. 이번엔 남편과 조용히 낚시를 연습 삼아해 본다 생각하고 온 거니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급하게 낚시 짐을 챙겨 온 상태라 장비들이 빠진 것들이 꽤 있어서 우린 적잖게 당황했다. 덕이(빙어 미끼로 구더기를 쓴다)를 잘라줄 작은 쪽가위도 없었고, 빙어 전용 낚싯줄 걸이도 없었다. 모든 건 다 서서 손으로 잡고 끼워야 했다. (짐이 마구 뒤섞여 정신없이 왔던 상태였다...^^;)



드디어!!! 바늘에 구더기를 끼우고 넣어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좋았다. 모든 걸 다 갖추고 한다면 편하겠지만, 지금은 그 편함이 중요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중요한 건 지금 남편과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빙어낚시를 2022년 새해에 시작한다는 것이 내겐 더 의미 있었다. 물론 불편한 건 사실이었지만, 낚싯줄을 내리고 바닥에 탁 닿는 느낌이 들자 깨달았다. 아, 난 이 순간을 너무나 그리워했구나. 옷을 껴입고 와서 몸은 살짝 둔했지만 낚싯줄을 내리는 손은 빨랐다. 촤르르르 릴에 감겨있던 낚싯줄이 경쾌하게 풀리는 소리는 마치 배경음악 같았다.


마스크를 스쳐가는 겨울의 찬바람으로 인해 살짝 속눈썹이 얼어붙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 이거야! 바로 입질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바닥을 찍고 다시 낚싯줄을 당겼다. 남편은 신나게 낚시를 하고 있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웃으면서 물었다. 그렇게 좋아? 응!!!!!! 이건 우리 아들이 처음 걸음마했을 때 느낌처럼 너무 벅차고 재미있어! 남편은 조금 과한 것 같다고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들을 낳고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땐 얼음 위가 아니라 부교(물 위에 떠있는 다리)에서 잡았기 때문에 얼음 위에서 잡게 된 건 더 오래되었다. 그런 나였으니, 그렇게 좋아하던 걸 거의 3년 만에 한 거였으니 얼마나 흥분되었는지 모른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전에 잡았을 때처럼 느나모드로 입질이 오지 않는다는 것. 빙어 피딩 타임(잘 잡히는 시간대)을 놓쳐서라기엔 너무 잠잠하고 조용했다. 안되는데... 추울 때 이렇게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 더 추운데 걱정이 앞섰다. 이대로 잡을 수 없게 된다면 추위만 느끼고 끝나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 마리라도 잡아보고 가보자.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면서 챔질을 했다. 살짝살짝 낚싯줄을 올렸다가 내려주고 물속에 있는 빙어들이 모이길 바라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역시! 옅지만 톡톡 파르르 빙어 입질이 느껴졌다.



겨우 잡은 빙어 한마리가 이날의 상황을 말해준다


탁! 채서 올려본 낚싯줄에는 곱디 고운 어여쁜 빙어가 파르르 떨면서 걸려있었다. 빙어 아지트에서 만나는 첫 빙어였다. 뽀뽀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빙어는 빛에 반사되어 더 빛났다. 몇 년 만에 아지트에서 잡아보는 빙어인 거지? 남편은 내게 엄지 척을 해줬다. 오랜만에 아지트에서 잡은 빙어 덕분에 전혀 춥지 않았다. 추웠더라도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느낀 이 기특한 입질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리움에 꿈에서도 빙어를 잡았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 이 느낌이야. 파르르 톡톡 파르르 톡톡. 작지만 기특한 빙어의 입질!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첫 시도는 한 마리가 전부였다.


이 한 마리는 유일하게 아지트에서 잡은 최고의 수확이기도 했다. 다른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우리에게 한 번씩 찾아와 잡았다는 것을 부러워했을 정도였으니까. 한 마리가 부러울 일인가 싶었지만 잡지 못해 이미 철수한 사람들도 있었다. 얼음 위엔 눈썰매를 끌고 나온 아이들과 어른 몇몇이 놀고 있었고, 낚시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시도해본 것만으로도 행복해. 스스로를 달래며 남편과 아지트에서의 첫 복귀 낚시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린 잡았던 한 마리를 놓아주고 왔다. 그 한 마리가 시발점이 되어 빙어낚시 피크 시기에는 더 많이 잡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2022년 임인년의 시작은 빙어낚시로! 김작가 밤톨군의 취미는 계속됩니다❤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아기가 좀 더 크면 같이 낚시방랑가족이 되는 게 꿈인 낚시꾼이에요 :) 아기자기한 것을 사랑하는 핑크덕후❤

핑크쟁이김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pinkauthor

핑크쟁이김작가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핑크쟁이김작가TV
매거진의 이전글 꺽지 대신 피라미, 잔망스러운 입질의 매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