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과 함께 만나면 더 좋은 것 중 하나는 단연코 낚시!라고 할 수 있다. 낚시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정적인 취미 생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낚시의 일부분이다. 사실, 낚시는 장르에 따라 매우 정적이기도 하고 동적이기도 하다. 혼자 사색을 즐기며 할 수도 있지만, 같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나름의 매력포인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면 더 재미있어진다. 그러니까 남편과 내게 있어서 낚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취미이다.
남편과 리트라이낚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뒤, 기특한 빙어의 입질을 느끼는 희열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더 많이 즐겁고 더 많이 낚을수록 이상하게 허전함이 물속에서 잉크가 번지듯 서서히 우리의 마음에 퍼져나갔다. 알 수 없는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는 건, 우리의 시간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채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남편의 친구들과 결혼하기 전 잠깐 만나서 인사를 나눈 것이 내가 기억하는 첫 만남이다. 남편의 친구들은 고향에서 터를 잡고 사는 경우가 많았고, 남편은 대학 입학 후에는 서울에서 쭉 살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남편의 친구들을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결혼하기 전 남편 친구들과 만났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웃음과 옛 추억 이야기로 잘 버무려진 즐거운 시간이었다.무엇보다 남편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과의 첫 만남이라서 더 떨렸고, 더 설렜다.
남편의 친구들을 만난 자리는 피로연(결혼 전 올리는 행사)에서였다. 우리의 피로연에 온 남편 친구들과 따로 뒤풀이 자리를 만들어 만났는데, 열명 정도 되는 친구들이 카페에 다 같이 모여 앉아있으니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이 배경음악이라도 된 것처럼 조용한 분위기 속 남편의 친구들 사이에서 홀로 낯선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살짝 긴장한 내 표정을 읽혔던 걸까, 더 이상 내가 어색해하지 않도록 친구들은 남편의 초등학생 시절 이야기부터 조금씩 말해주었다.
연애를 오래 했던 우리였지만, 친구들로부터 듣는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색다르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 남편은 장난기 많고 조금은 까칠했던 아이였는데, 평소에 내게 정말 잘해주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적절히(?) 수위 조절을 하면서 남편이 잘해주고 있음을 피력했고, 친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라기도 하고 남편을 보면서 웃기도 했다. 조금씩 카페 소음은 웃음으로 묻혔고, 유연해진 분위기는 남편의 친구들 사이에서 나를 외롭지 않도록 만들어주었다.
어색한 공기가 걷혀갈 무렵, 대화의 내용은 남편의 과거 이야기에서 내 직업에 대한 궁금증으로 넘어왔다. (당시, 남편 친구들은 내 직업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했다. 방송작가로 일할 때였으니까) 남편의 친구들에게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수줍게 방송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둘 털어놨다. 방송작가로 처음 일하면서 겪었던 일이랄지, 직접 기획하고 제작했던 다큐멘터리나 프로그램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대화가 채워졌다.
물론, 단연 가장 높은 집중력을 보여준 주제는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매주 목요일마다 녹화를 하던 무한도전에 대한 이야기도 슬쩍 들려줬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들에게 내 직업은 독특하고 신기한 미지의 세계였다. 나의 청춘과 고통, 성장이 녹아있는 방송국 이야기는 다행스럽게도 남편의 친구들에게는 재미있고, 신기하며, 놀라움을 선사해주는 기억으로 남았다. 밤낮없이 일하고, 내겐 힘듦의 연속이었던 일들이 이들에게는 멋지고 생경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남편의 친구들은 나를 김작가라 부르곤 한다.)
그렇게 생소한 첫 만남에서 나는 남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자연을 벗 삼아 초등학교 내내 같은 반이었던 남편과 친구들은 같이 커나갔을 것이고, 여유로움을 배우며 성장했을 것이다. 그렇게 성장한 남편과 친구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서로 다른 캐릭터로 뭉친 남편의 친구들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었다.
눈이 살포시 내리던 2018년 겨울
결혼 후 남편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된 장소는공교롭게도 얼음낚시터였다. 마침 리벤지 낚시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왔던 터라 자신감이 붙어있던 나는 두 번째 만남이 왠지 더 즐거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남편은 결혼식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가 얼음낚시터라는 사실에 조심스러워했다. (꽁꽁 싸매고 얼음 위에 있어야 하는 게 힘들까 봐 걱정했다고 한다.) 남편과 떨리는 마음으로 간 곳은 시댁 근처에 있는 저수지 근처였는데, 멀리서 남편에게 손을 흔드는 친구들을 발견한 남편은 아이가 된 것처럼 웃으면서 걸어갔다. 남편의 손을 잡고 천천히 내려간 얼음 위, 발을 앞으로 밀고 미끄러지듯 남편과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두근두근, 내 인생도 아닌데.
내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달떴고, 웃음이 자꾸만 세어 나왔다.남편은 (갑자기) 내 친구들 만나는 거 괜찮지?라고 물었고, 나는 대답 대신 '씨익' 웃어 보였다.
첫 만남에서 친해진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장소가 '얼음낚시터'라니 이 얼마나 필연적인 만남인가! 얼음 위를 천천히 걸어가며 '어떻게 더 반갑게 인사를 하지?' 생각해보며, 입고리를 귀에 걸리도록 올려보고 웃는 연습을 했다. 친구들의 이름을 되뇌어보며, 결혼 후 오랜만에 만나는 남편 친구들의 이름이 헷갈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물론 걱정은 기우였다. 남편과 손을 꼭 잡고 온 나를 본 친구들은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나도 걱정과 달리 친구들의 이름을 틀리지 않았고, 두 번째 만남은 그렇게 얼음낚시터 위에서 시작되었다.
남편의 친구들은 정말 다양한 캐릭터들이 많았다. 키가 큰 친구, 잘 먹는 친구, 사진을 잘 찍는 친구, 츤데레 같은 친구... 처음 만났던 그 멤버들이 다 모이진 못했지만,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남편의 친구들은 내가 얼마나 낚시를 좋아하는지, 특히 얼음낚시를 제일 좋아하고 즐겨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이제 친구들 앞에서 하던 대로 열심히 낚아 올리기만 하면 되었다. 이미 남편에게는 빙어낚시킬러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친구들은 모르고 있으니 뭔가 보여줄 차례였다.
찍사 친구가 찍어준 멋진 사진!
먼저 와서 얼음낚시를 하던 친구들은 제대로 잡히지 않아서 '꽝'을 치고 있었다며, 빙어 얼굴 보기 힘들다는 말을 했고 나와 남편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열심히 잡아주자' '빙어 킬러 나가신다!'
빙어낚시의 기본 중 기본은 구멍 뚫기부터 시작된다. 남편은 친구들이 미리 뚫어놓은 구멍 옆에 자리를 만들어주고, 살짝 얼어붙은 구멍을 끌로 툭툭 쳐서 뚫어주었다. 공교롭게도 내 옆에 자리를 잡은 사람은 남편의 친구 중 츤데레인 친구 D였다. D씨는 평소에 툴툴 거리는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말과 달리 행동은 다정해 츤데레로 불리고 있었다. D씨가 내 옆에 앉고 나니 남편은 '이제 너의 역할이 정해졌다'며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D씨는 내 옆에 앉아있다가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빙어낚시의 즐거움은 인 앤 아웃에 있기도 하다. 넣으면 나온다는 의미의 인 앤 아웃은 약간의 기다림만 지나고 나면 꾸준히 계속 올라오는 빙어낚시에 딱 맞는 말이다. 고로, 이 말의 뜻은 빙어를 잘 잡지만 뺄 줄 모르는 내 옆에 있다면, 계속 빙어를 빼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편은 항상 그래서 바쁘다. 자기 것 낚아서 빼랴, 내가 낚은 것 확인해서 빼주랴.) D씨는 츤데레답게 툴툴거리기 시작했고, 덩달아 내 빙어 낚싯대도 미친 듯이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평소대로라면 남편에게 빼 달라고 부탁을 했겠지만, 왠지 나는 D씨에게 부탁하고 싶어 졌다. 남편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신호를 주었고, 나는 바로 D씨에게 부탁했다. 'D오빠! 이것 좀 빼주세요' 첫 만남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D씨는 빙어를 들이미는 나를 보더니 황당해했다. 역시, 츤데레는 달랐다. 동그랗게 눈을 뜨던 D씨는 낚싯바늘 7개에 매달린 2마리의 빙어를 떼어내줬다. 그게 시작이었다.
'저 또 잡았어요!'
'또요?!'
.
.
.
'저 이번엔 3 걸이예요!'
'또요?! 왜 이렇게 잘 잡아요?!'
'넣었는데 또 나왔어요, 이번엔 4마리...'
'또요?! 빙어 킬러죠? 그만 좀 잡아...요!'
'근데 어쩌죠... 저 이번엔 5 마리에요...!!'
'오 마이 갓!!!'
D씨 덕분에 남편은 처음으로 빙어낚시를 집중해서 했고, 나는 빙어를 잡아 올리며 D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남편이 아끼는 친구들과 같이 낚시를 하면서 친해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D씨는 내가 계속 잡으니까 나중엔 무서웠다고 한다.) 계속 빙어를 잡아 올리는 나와 빙어 빼주다가 지쳐 도망가려다가 붙잡힌 D씨. 빙어를 낚아 올리다가 이 상황이 너무 재미있어서 낚시를 하는 내내 계속 웃어버렸다. 그 덕분에 얼음 위에서의 시간이 전혀 지루하다거나 춥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웃어서 배가 아팠을 뿐.
그렇게 잡아 올리고 나니 남편의 친구들이 먼저 와서 잡은 빙어보다 남편과 내가 잡은 빙어가 더 많아졌다. 내가 잡은 빙어를 찍어주는 찍사 친구, 따뜻한 컵라면을 내어준 남편의 또 다른 친구, 목적은 빙어낚시였지만 다 같이 모여있으니 완전체가 된 기분이었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 만남이 더 재미있는 이유리라. 무엇보다 낚시는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 같이할 때 즐거움이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 더 좋은 낚시.
남편과 남편의 친구들은 나를 그때부터 '김작가'가 아닌 '낚시킬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모든 건 다 D씨 덕분이었다. 오전 내내 내 옆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빙어를 빼준 D씨 오빠에게 감사의 마음을 다시 표하고 싶다. 다가오는 겨울 시즌에는 D오빠도 함께 해주리라 믿는다. 그렇죠?^^
※ 남편 친구 D씨의 얼음낚시 유의사항
- 낚시 좋아하는 친구와 낚시 가지 말 것.
- 특히 빙어 잘 낚는 친구 와이프 옆자리는 피하자!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최근엔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