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아내 회사원 남편 초보 낚시꾼 부부의 취미성장기 <어쩌다 낚시>
리벤지낚시라 쓰고
리트라이낚시라고 읽는다
리벤지낚시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첫얼음낚시의 날카로운 기억 때문이다. 왜 안 잡혔을까, 왜 우리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와야만 했을까, 그런 숱한 고민을 하면서 남편과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했다. 내가 남편에게 의지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편은 공대생답게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왜 안되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를 했고, 나는 잡히지 않아서 분노했던 것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하며 다시 도전하고 싶어 했다.
어쩌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리벤지낚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낚시가 우리의 삶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낚시에 대한 애정이 있으니, 실패한 낚시를 다시 하고 싶어 하는 것일 테니까. 늘 우리가 리벤지낚시를 계획하는 건 아니다. 얼핏 들으면 센 단어처럼 여겨지지만, 리벤지낚시의 의미 중 하나는 잡지 못했던 것을 다시 낚는다이기에 정리해보면 낚시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철 시원한 물속에 들어가 첨벙첨벙 물속을 걸어 다니며, 수풀이 우거진 바위틈 사이로 조심스럽게 낚싯바늘을 던질 때의 긴장감. 천천히 바위틈에 끼지 않도록 낚싯줄을 감으면서 물고기가 잡히길 간절히 바랄 때 때마침 딱! 낚싯바늘을 콱 무는 물고기의 생생한 입질이 느껴질 때, 우리는 그 희열과 감동을 이미 경험했던 터라서 겨울낚시도 그렇게 되길 바랐던 것뿐이다.(물론 많이 잡혀주길 바라고 갔는데 못 잡아서 한이 되었지만)
민물낚시의 매력은 사계절 내내 서로 다른 성격의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는 것. 물이 급속도로 차가워지는 가을 시즌에는 물에 들어가서 하는 낚시가 아닌 다른 방법을 택하면 되지만, 사계절 자주 가는 낚시터의 자연 배경이 계속 바뀌는 변화를 몸소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자주 가는 낚시터나 시댁 근처만 가도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이 어느샌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자연에게 감사하게 되는 마음으로 낚시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리벤지낚시를 준비할 때는 반드시 전에 실패했던 것이 뭐였는지 잘 생각해보고 꼼꼼하게 대비하는 것이 필요했다. 낚싯대만 덜렁 있던 우리의 채비도 하나둘 장비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낚시를 하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차분하게 기다렸다가 누구보다 빠르게 낚아야 하는 붕어낚시를 보면, 무조건 빠르게 빠르게 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닌 것처럼. 피라미나 빙어처럼 작은 물고기를 낚을 때의 기쁨에 빗대어보면, 작은 것에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이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리벤지낚시는 말 그대로 진짜 복수를 꿈꾸는 낚시가 아니라, 실패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부족한 부분을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게 하는 낚시이기에 리벤지가 아니라 리트라이낚시라고 불려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심기일전을 준비한 우리는 춥디 추운 겨울의 어느 날, 빙어스팟으로 떠났다. 드디어 리벤지낚시가 시작되었다.
남편과 찾아간 곳은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빙어스팟이었다. 빙어낚시를 하기 위해 텐트를 치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을 발견하니, 이때 또 하나를 깨달았다. 추운 겨울 날씨에도 사람들이 인증샷을 여유롭게 찍어서 올리고, 재미있게 낚시를 했다는 후기를 올린 이유. 두꺼운 방한복 차림을 하지 않아도 열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게 하는 텐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렇게 하나씩 배워가는 거지. 남편과 '텐트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천천히 30cm 이상 얼어붙은 얼음 위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확실하게 디딜 수 있는 땅 위에서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물과 얼음은 공포의 공간이다. 남편과 오랜 연애기간 동안에도 스케이트장은 언감생심 가본 적 없었고, 딱 한 번 무료 초대권이 생겨 찾아간 어느 통신사 VIP 행사에서 타본 것이 전부이다. (남편과 연애 기간만 8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남편은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미끄러짐을 이용해 스케이트를 타는 거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나는 넘어지거나 부딪히는 것에 대해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었다.
빙어를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얼음 위를 지나가야 했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적당한 위치로 걸어 들어가야 했고, 얼음 위에 장시간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의 얼음 공포증은 얼음낚시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얼음은 이제 내게 공포의 공간이 아니라 친숙한 곳이어야만 했다. 극도로 얼음 위를 걷기 싫어하는 이유는, 중학생 때 얼음 위에서 넘어졌던 기억 때문이다. 꽁꽁 얼어붙어있던 아침 등굣길, 지각하지 않으려고 뛰다가 얼어붙은 길 위로 엉덩이부터 넘어졌고 하루 종일 얼얼하던 엉덩이를 붙잡고 집에 돌아왔던 기억. 그때 기억은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었다.(남편은 모르는 얼음 공포증에 대한 기억이다.)
또다시 그렇게 넘어질까 봐 얼음 위를 갈 때면 몸이 굳어버렸고, 굳은 상태에서 걸어가니 얼음이 더 미끄럽고 무섭게 느껴졌다. 모처럼 리벤지낚시를 준비했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나를 보고 남편은 한걸음에 달려왔다. 짐을 자리에 두고 온 남편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한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잡고 얼음 위를 천천히 밀듯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스케이트장에서도 남편의 손을 뿌리칠 정도로 얼음 위를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했었는데, 이날은 남편의 손을 아주 자연스럽게 잡아버렸다.(첫 빙어낚시 때는 거의 기어 다녔다.)
문득 남편의 따뜻한 손을 믿고 눈으로 뒤덮인 얼음 위를 걸어 나가니, 어쩐지 무섭고 두렵기보다는 모험을 해보고 싶어 졌다. (리벤지낚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는지도 모른다.) 20년 가까이 지속되던 얼음 공포증은 공교롭게도 빙어낚시를 하면서부터 조금씩 더 나아졌다. 여전히 지금도 남편 손을 잡고 가지만 때때로 혼자서 얼음 위를 넘어지지 않고 천천히 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땅을 걸을 때처럼 걷지 않고, 앞으로 살짝살짝 밀면서 마치 스케이트를 타듯 그렇게 걷게 되었다. 어쩌면, 스케이트를 타는 것도 우리의 취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기대를 조금씩 품어가면서.
얼음이 완벽하게 얼어붙어있던 곳에 구멍을 뚫고, 드디어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빙어낚시가 시작되었다. 조금 요령을 부려서 누군가가 이미 구멍을 파뒀던 곳에 자리를 잡고, 얼어붙은 얼음을 살살 걷어내니 금방 구멍이 생겼다. 남편과 바로 옆에서 낚시를 시작했다. 낚싯대에 거치대를 달아주니 제법, 그럴싸해졌다.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 제발... 첫 빙어낚시할 때보다는 입질도 많이 느낄 수 있게 해 주세요. 속으로 간절히 빌면서 남편과 빙어낚시에 돌입한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톡, 톡, 톡'
낚싯대 끝이 조금씩 툭툭 쳐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낚싯대가 자기 멋대로 구멍 앞에서 좌우로 조금씩 왔다 갔다 하면서! 그랬다, 이건 명백히 빙어의 입질이었다. 입질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첫 빙어낚시의 기억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기특하게도 빙어들이 마구 신호를 보내왔다. 남편과 나는 어딘가에 홀린 사람처럼 낚싯대를 탁 위로 낚아챘다. 그렇게 빙어가 잡히기 시작했다.
준비해 간 통 안에 가득 잡힌 수많은 빙어들이 보여주듯, 우리의 빙어 리벤지낚시는 성공적이었다. 눈이 내린 얼음 위는 포근했고, 바람은 적게 불었으며, 사람들이 쳐놓은 텐트 덕분인지 우리에게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빙어를 잡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그렇게 눈앞에서 직접 빙어를 잡아 올렸더니, 꽁꽁 쌓여있던 감정의 응어리들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너를 만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이 힘들었노라고, 너의 입질은 참으로 기특하다고, 너는 정말 예쁘다고.'
나는 기특한 빙어의 입질을 손끝으로 완전히 느끼며 계속 빙어를 잡아 올렸고, 남편은 빙어를 같이 잡으면서 내가 낚은 빙어를 빼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쨌든 빙어는 정말 예뻤고, 남편과 나는 내내 웃으면서 빙어의 매력에 푹 빠졌다. 물론 여느 낚시가 다 그러하듯 인 앤 아웃(넣으면 나온다는 뜻)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빙어 리벤지 낚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리벤지낚시라기 보다, 리트라이낚시라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재도전을 통해 우리는 전에 겪었던 참담한 패배의 쓴맛을 통쾌하게 던져버렸으니, 복수도 성공한 것이지만 재도전을 통해서 많은 것을 준비하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오랫동안 갖고 있던 얼음 공포증. 여전히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얼음 위를 걸을 때 살짝 밀듯이 걸으면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터득했고. 얼음 위에서 얼음낚시를 준비하느라 바쁜 남편을 계속 부르지 않아도 될 만큼 혼자 이동도 가능해졌으니까.
여러모로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겐 도전인 낚시. 겨울 한철에만 즐길 수 있는 한정판 빙어낚시를 마음껏 즐기기 위해서는 어려움들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혼자 오롯이 하지 않아서 남편과 그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리벤지낚시든, 리트라이낚시든, 어떤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굳건히 밀고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난, 이 낚시가 너무 좋다.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오래 못하는 취미.
공부도 끊임없이 해야하고 장비도 갖춰야해서 전문성을 갖출 수록 더 재미있어지는 낚시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는 끊임없이 준비해야한다는 조건이 따르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의 리벤지낚시, 아니 리트라이낚시는 성공적이었다.
우리의 삶에서 두번째로 도전한 빙어낚시는 기특한 입질과 수많은 빙어를 남겼다. 그리고 이 얼음낚시는 그렇게 나와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최애 낚시로 등극하게 되었다.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최근엔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