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스 기사를 보다가 밀레니얼 세대는 구하기 어려운 제품 한정판에 열광한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구하기 어려운 제품은 희소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정체성을 나타내려는 결과물이란 생각에 퍼뜩 생각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낚시에도 한정판이 존재한다는 것!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가질 수 없는 한정판의 매력은 낚시에도 적용해서 볼 수 있다.
※ 밀레니얼 세대 : 1980년대 초반 ~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 말, 남편과 나도 밀레니얼 세대다.
낚시계의 한정판, 한정된 시즌에만 즐길 수 있는 얼음낚시가 바로 그러하다. 낚시는 크게 장소별로 나누면 바다와 민물, 얼음낚시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얼음낚시는 겨울철 호수나 강물의 두꺼운 얼음에 구멍을 뚫고 하는 낚시의 한 종류이다. 두텁게 얼어붙은 얼음 위에 앉아 차가운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들을 낚으며 겨울 낚시의 진짜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다.
사실 남편과 나는 가볍게 낚시를 즐길 수 있는 민물낚시를 즐겨하고 있는데, 유독 내가 가장 기대하고 기다리는 낚시 시즌이 있다. 그건 바로 얼음낚시를 즐길 수 있는 겨울이다. 얼음낚시는 한겨울 얼음이 꽁꽁 언 시기에만 할 수 있어서 우리끼리는 한정판이라 부르기도 한다.
얼음낚시로 낚을 수 있는 물고기들은 대체로 피라미, 빙어, 송어, 산천어 등이 있다. 송어나 산천어는 크기가 큰 것들이 많은 반편, 피라미와 빙어는 작고 가벼워서 초보자도 쉽게 낚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많은 어종이다. 빙어와 피라미는 외관상으로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구별하기 쉽다. 피라미는 반투명한데 비해 빙어는 투명하고 기름지느러미가 있다. 피라미는 내장 등을 제거해줘야 하지만 빙어는 바로 회로 먹을 수 있는 어종이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의 첫얼음낚시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는 민물낚시를 하면서 꺽지나 쏘가리 같은 어종을 낚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크기는 작아도 공격성이 강한 꺽지를 낚을 때의 손맛에 길들여져 있었기에 낚시는 이미 우리에게 오래된 취미생활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날이 점점 추워지면서 낚시를 할 수 없는 시즌이 시작되었다.
사계절 내내 변화가 크게 없는 바다에 비해 민물은 그러니까 호수나, 강, 저수지 등은 날이 추워지면 점점 얼어붙어버리기 때문에 낚시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점점 적어졌다. 낚시를 못 가니까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우리의 취미생활도 점차 얼어붙고 있었다.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것도 낚시니까.
우울한 주말을 맞이하며 남편과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마침 TV에서는 빙어낚시 축제에 대한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다. 방송작가로 일했던 나는 작가들이 저런 축제들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이 섭외 전화를 돌리고, 촬영할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고, 남편은 빙어 낚시도 은근히 재미있다며 시댁 근처 빙어 핫플레이스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 남편과 나는 무심결에 '그럼 우리 저기 한 번 가볼까?'로 본격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 대화는 곧 실행에 옮겨졌고, 무턱대고 우리는 빙어를 잡으러 파주로 떠났다. 그날은 2018년 1월 중 가장 추운 날이었다.
처음 가본 빙어축제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단위 방문객, 아저씨들끼리 오거나, 커플들도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은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겨울에 가족과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빙어낚시를 하러 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얼음이 과연 튼튼할까?라는 걱정을 안고 조심조심 행사장 안, 얼음 위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나에겐 물 공포증과 얼음 공포증이 있는데, 물 공포증은 어느 정도 극복을 했지만 이상하게 얼음 공포증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넘어져서 아팠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불안정하게 자꾸만 밀려가는 느낌이 싫어서인지 얼음 위를 걷는다는 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그래서 스케이트도 못 탄다.) 얼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얼음낚시라니? 남편은 불안해서 거의 기어가다 시피하는 나를 꼭 잡아주었고, 따뜻한 남편 손에 이끌려 얼음 위를 조심조심 걸어갔다.
행사장에 있던 끌로 얼음 뚫는 작업
얼음낚시의 기본은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을 끌이나 보링비트, 또는 아이스오거 등으로 뚫어주는 것부터 시작된다. 정말 낚싯대와 미끼만 들고 갔기 때문에 축제 스텝이 건네준 끌로 남편은 두텁게 얼어있는 얼음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이지… 극한 노동이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아이스오거나 보링비트는 얼음을 뚫어주면 딱 원하는 위치에 예쁘게 얼음을 뚫을 수 있으니 반드시 얼음낚시에서는 챙겨야 하는 1순위 아이템이다.
얼음구멍 뚫는 작업 중인 남편
그렇게 얼음을 깨부순 지 15분, 제일 추웠던 날 남편은 얇은 장갑 하나에 의지한 채 극한 노동을 경험해야 했다. 춥지만 더운 상황, 감기 걸리기 딱 좋게 남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버렸다. 흐르던 땀도 계속 얼어붙어버리는 가장 추웠던 날. 남편이 춥지 않도록 뭐라도 주고 싶었다. 아뿔싸! 우리는 핫팩도 없이 정말 대책도 없이 얼음낚시를 하러 왔구나. 그렇게 얼음낚시 필수품에 대해 몸소 체득하게 되었다. 영광의 선물로 남편과 나는 감기에 걸려 며칠 고생을 해야 했다.
죽은 빙어가 얼음 위에 있었던 자리, 이때 직감해야 했다
우리에게 지독한 감기를 선물해준 얼음낚시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보통 20센티 이상 물이 얼어붙으면 얼음낚시 하기 아주 적정한 환경이 조성된다. 우리가 갔던 파주의 빙어축제도 물이 어마어마하게 얼어붙어있었다. 딱 얼음낚시 하기 좋은 두께로.
남편이 직접 만든 낚싯대, 우리 초창기 낚싯대
남편은 시중에서 그냥 판매하는 완성품을 사는 것보다 직접 본인의 손에 맞게 만들어 사용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만 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뚝딱 만들어둔 얼음 낚싯대를 꺼내 본격적으로 빙어 채비를 준비했다. 나는 직접 만드는 것도 좋아하지만 빠르고 간편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남편이 얼음낚시 준비를 하는 동안, 행사장에서 판매하는 덕이(구더기, 파리 유충이 보통 미끼로 쓰인다.)와 집어제(물고기를 모이게 하는 것)를 하나 사 왔다.
남편이 만들어준 낚싯대, 이 낚싯대에도 추억이 많이 생겼다
남편이 만들어준 얼음 낚싯대에는 남편이 고심해서 만든 티가 역력했다. 양손잡이이지만, 왼손을 주력해서 쓰는 아내를 위해 릴도 왼쪽으로 바꿔놓는다거나, 빙어 집어가 잘 되도록 은빛 물고기 모양을 달아줬으니까. 세상에 하나뿐인 남편표 빙어 낚싯대를 본격적으로 사용해볼 차례! 남편이 힘겹게 뚫은 구멍으로 집어제를 뿌리고 덕이를 달은 낚싯바늘을 천천히 구멍에 넣었다. 추에 의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하던 낚싯바늘은 바닥에 닿는 느낌이 들자 바로 입질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얼음낚시가 아주 성공적으로 느껴졌다. 그 이후, 낮에서 오후로 시간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해는 얼굴을 감추었고, 추위가 스멀스멀 밀려오기 시작했다. 장갑을 꼈지만 손끝은 차갑게 식어갔고,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렸지만 세어 나오는 숨결에 의해 물방울이 계속 맺혔다. 무엇보다 발 끝은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어 감각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추울 때 가만히 있으면 더 춥게 느껴지기 때문에 일어났다가 앉았다가 자세를 바꿔가 입질이 오는 낚싯대 끝을 바라봤다. 툭툭 치는 느낌만 있을 뿐 강력한 입질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발끝이 너무 시리던 나는 GG를 선언했다. ‘여보!!! 나 안 되겠어, 차에 갔다가 올게’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린 내 모습을 보던 남편은 차키를 건넸다. 남편의 차키를 받아 들고 행사장에 마련된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얼어붙은 발을 부여잡고 히터를 틀어 녹이기 시작했다. 두꺼운 양말도 한파엔 장사가 없었으니, 나는 양말을 한 켤레만 신고 온 것을 후회했다.
왜 이런 고생을 하면서 낚시를 해야 되는 걸까, 밀려 드는 후회만큼 잠도 솔솔 밀려왔다. 차 안에 있던 담요를 발 끝에 덮고 앉아있다가 점점 주변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일어났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잠든 사이, 남편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은 나를 걱정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 남편에게 ‘괜찮다면, 좀 더 해보고 가자’고 말했다. 사실, 돈 만 원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낚시를 얼렁뚱땅 마무리하는 건 왠지 용납할 수 없다는 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최소한의 장비만 남기고 빙어를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른 자리도 이따금씩 염탐을 하러 갔는데, 거의 대부분은 못 잡는 분위기였지만 그 와중에도 많이 잡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떻게 어떤 채비로 잡길래 저렇게 많이 잡았던 걸까? 시샘과 부러움이 섞인 눈빛으로 그들을 염탐하다가 돌아왔지만 빙어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점점 해가 기울고, 눈에 반사되던 빛들도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야, 그만하자.’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우리는 채비를 정리하고, 낚싯대를 정리하기 위해 릴을 감기 시작했다.
‘어? 어! 빙어다!’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입질 없이 낚싯바늘에 걸려있던 빙어 한 마리는 우리의 첫 빙어로 기록되었다. 한 마리뿐이었지만 한파를 뚫고 장장 부천에서 1시간 30분 넘게 걸려온 이곳에서 잡은 첫 빙어였으니까. 의미 있는 수확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아쉬운 마릿수였다. 남편 낚싯대에도 한 마리가 나란히 걸려있었고, 우리의 첫 빙어낚시의 조황은… 그러니까 총 2마리였다. 입질없이 미끼가 얼어붙은 낚싯바늘에 힘없이 달려있던 빙어 두 마리.
날카로운 첫사랑의 추억처럼, 우리에게 빙어낚시에 대한 첫 기억은 아찔하면서도 씁쓸한 시간으로 기억되었다. 두 마리를 물속으로 다시 놔주고, 허탈해하면서 오던 그날의 기억. 6시간을 넘게 있었지만 남은 건 감기와 몸살, 그리고 빙어낚시에 대한 오기였다. 난 모르고 있었다. 이날 처음 했던 빙어낚시가 나와 남편이 가장 기다리고 고대하는 최애 낚시가 될 줄은!
※ 남편 밤톨군의 얼음낚시 유의사항
- 빙어보다 사람이 더 많았던 빙어축제
- 사람이 몰려있는 주말 얼음낚시 축제에는 가지 말자. 차라리 평일을 노려라!
- 양말도 장갑도 핫팩도 꼭 챙겨갈 것. 추위에 장사 없다!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최근엔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