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있던 낚시 본능이 깨어나다

작가 아내 회사원 남편 초보 낚시꾼 부부의 취미성장기 <어쩌다 낚시>

by 핑크쟁이김작가
잠들어있던 낚시 본능
DNA가 다시 깨어났다


'낚시를 왜 좋아하냐'라고 묻는다면, 일단 할아버지부터 아빠, 그리고 나까지 DNA 속에 '낚시를 사랑하는 세포'가 들어있을 거란 추측을 해본다(는 농담이고). 낚시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낚시를 하면 무심결에 지나칠 수 있는 풍경들을 직접 보고 느끼며 새겨둘 수 있는 것이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욕심을 버리면 잡히고, 욕심을 부리면 잡히지 않는' 아주 신비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뭐, 일차원적인 첫 번째 이유는 낚싯대로 전해져 오는 짜릿짜릿한 '손맛'의 매력 때문이지만.


사춘기 이후로 중단되었던 나의 낚시는 방송작가에서 광고 기획자로 이직한 후 일할 때 불씨가 조금씩 타올랐다. 다시 낚싯대를 잡게 된 건 지독히 덥던 2016년 7월의 어느 여름, 실내낚시터를 취재했을 때의 일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찾아간 실내낚시터는 지하에 위치해 퀴퀴한 물 냄새가 비릿한 물고기 냄새와 뒤섞여 음산한 첫인상을 선사해줬다.(물론 모든 실내낚시터가 그런 것은 아니다. 물고기들의 비릿한 냄새는 어쩔 수 없다.)


담당하던 주류 브랜드의 제품을 활용해 여름 시즌 콘텐츠를 만들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당시 기획했던 콘텐츠의 내용은 실내낚시터에서 시원하게 낚시도 하고 맥주도 즐겨라!라는 것이었지만, 모든 게 준비된 상황에서 딱 하나가 해결되지 않았다. 메인 표지에 들어갈 물고기가 낚이는 역동적인 모습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시원하게 물을 튀기며 낚이는 모습, 환희로 가득한 모델의 즐거운 표정, 주류 브랜드 제품이 잘 나오도록 이 삼박자가 갖춰져야만 나오는 명장면! 이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콘텐츠 속 모델로 섭외된 신입 직원은 모델을 해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낚시를 하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촬영 전에 낚시 방법을 알려주긴 했지만, 모든 게 처음인 신입에겐 어려운 것들 투성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감안해서 간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체되고 물고기는 계속 잡히지 않자 신입사원의 얼굴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덜덜 떨면서 맥주 캔을 손에서 놓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현장에서 전체적인 디렉팅을 하면서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던 나는, 사진작가에게 양해를 구해 먼저 찍어야 하는 것들을 설명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죄송합니다를 말하던 신입을 진정시키고 찍어야 하는 이미지를 알려주고 낚시 준비를 했다.


아무리 물고기로 가득한 수조에서 하는 실내낚시라고 해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매끄러운 낚싯바늘에 있다. 실내낚시터의 물고기들은 배가 고픈 경우가 대다수, 그래서 찌를 던지면 물고기들이 떡밥을 먹기 위해 자주 다가오는 편이다. 그런데 잡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물고기에게 상처를 덜 내기 위해 낚싯바늘이 잘 빠지도록 매끈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잔뜩 배가 고픈 물고기가 떡밥을 먹기 위해 바늘을 콱 무는 순간을 잘 포착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처음 낚시해보는 사람이 알 수는 없는 거니까.


종종 운빨로 잡힌다고 해도 고도의 순간포착 능력이 있어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이미 떡밥으로 배가 부른 물고기들은 떡밥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입질도 오지 않고 고요한 시간이 시작되면 낚시는 지루해진다. 하지만 취재를 끝내야 기획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고, 기사를 쓸 수 있었으니 무조건 잡혀야만 했다! 어떤 물고기든 무조건! 낚시가 낚이는 기쁨을 몸소 표현하려면 직접 잡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나는 사춘기 이후 처음으로 다시 낚싯대를 잡았다. 그렇게 잠들어있던 낚시 본능 DNA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낚싯바늘에 실내낚시터에서 제공해주는 떡밥을 동그랗게 만들어 끼운 뒤, 살며시 물고기가 몰려있음 직한 곳으로 던졌다. 실제로 자연에서 잡는 것보단 입질이 훨씬 약했지만, 아직 배고픈 물고기들은 많이 있었다. 떡밥 주위로 물고기들이 살짝 치고 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확실한 입질은 없었다. 그 와중에도 사진작가에게 필요한 컷을 확인하면서 제품컷을 촬영해나갔다.


손과 눈은 되도록 낚싯대에 고정하면서, 양쪽 귀는 촬영하는 쪽에 기울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사장님에게 낚시를 부탁하고 낚은 물고기를 들고 촬영하면 간단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획 담당자가 어떤 느낌인지 모르고 상상해서 쓰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으니 직접 하는 것이 그 상황에서는 맞았다(가 아니고 사실은 직접 낚시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제품사진 다 찍었습니다"라는 소리에 순간 야광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르르 떨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휙! 들어 올렸다. 낚싯대가 활처럼 휘더니 끌려오지 않으려 힘을 쓰는 게 느껴졌다. 어? 잡힌 건가? 속으로 너무나 놀라고 흥분되었지만, 겉으로는 차분한 척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집중했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손맛인가! 분명 아빠도 할아버지도 이 맛에 계속하셨던 게 아닐까 잠깐 감탄하며 힘이 좋은 녀석을 힘겹게 끌어올렸다. 발버둥 치는 녀석의 정체는 민물의 왕자, 힘의 상징! 메기였다. 묵직한 무게감이 있어서 손맛이 남달랐던 것 바로 이 녀석 때문이었다.


실내낚시터 사장님은 메기 잡으면 주는 음료수와 라면, 블루투스 스피커 상품을 건네주시며 엄지 척을 해주셨다. 물고기를 잡았다는 기쁨에 사로잡혀 촬영을 깜빡한 사이, 사진작가님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로 연신 담아냈다. 무려 연사로! 어두컴컴한 실내낚시터는 셔터 소리로 가득했고 찍히는 순간을 영광스럽게 만끽했다. 눈이 동그랗게 커진 신입 직원은 식은땀을 닦으며, 정말 감사합니다를 또다시 연발했다.


신입 직원은 내가 잡아 올린 메기를 들고 역동적인 장면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생명의 힘과 시원함이 어우러져 애초에 원했던 시원한 느낌의 컷을 남길 수 있었다. 그렇게 신입과 함께 간 여름 시즌 콘텐츠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나름 좋은 반응을 얻으며 발행되었다. 여담이지만 후에 신입은 나를 메기작가님이라 부르기도 했다.


기획 콘텐츠를 하나하나 주제를 잡아서 제작할 때 정말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해진다. 고민 끝에 나타난 메기는 창작자가 원하던 시원한 장면을 만들어준 구세주가 되었다. 그래, 역시 낚시하길 잘했어. 그렇게 불현듯 내 인생에서 잠시 멀어지듯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난 낚시 본능은 결국 남편과 함께 낚시를 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메기는 살면서 내가 잡았던 제일 크고 힘이 좋았던 녀석이다. 잊을 수 없는 손맛! 아, 남편과 낚시를 할 땐 단 한 번도 메기를 낚은 적이 없다. 그건 정말 애석한 부분이다. 나의 무용담 속 주인공 메기는 결국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언젠가는 남편과 낚시를 갔다가 메기를 잡게 되기를, 어쩌면 그래서 낚시를 더 좋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역시, 낚시는 사람도 낚고 물고기도 낚는 거니까. 그러니까, 다음번엔 꼭 잡혀주라! 메기야. MISS Catfish...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최근엔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