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부터 운동까지 정말 다양하게 취미생활을 찾아본 우리는 최종적으로 낚시를 선택하게 되었다. '낚시, 그거 왜 하세요? 재미없잖아요. 물고기 낚고 끝~ 그게 뭐가 재미있어요?'라는 말을 생각보다 많이 듣게 되었다. '네가 무슨 낚시를 한다고 그래?'라고 놀라는 분도 주변에 생각보다 많았다. 엄마도 시어머니도, 심지어는 아빠도 남편과 내가 취미로 낚시를 하게 되었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다.
사실 아빠도, 할아버지도 취미생활이 '낚시'였다는 걸 감안하면 내가 낚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설명이 될 법도 하다. 할아버지와 아빠가 작은 아빠들에 비해 많이 닮았던 건 낚시하는 스타일이나 주력 어종이 비슷하셨기 때문이다. 두 분 모두 낚시라는 공통점이 있었으니까.
태초의 낚시에 대한 기억은 유치원 시절, 늘 마당에 텐트를 쳐놓고 낚시도구들을 쭉 늘어놓고 닦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할아버지는 두 살 어린 남동생을 늘 텐트 안에 들여놓고, 나를 할아버지 옆에 꼭 앉혀놓고 작업을 하셨다. 동생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고, 나는 할아버지가 하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날카로워 보이는 낚싯바늘과 투명한 낚싯줄, 끝을 알 수 없는 낚싯대가 여러 개 놓여있고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천으로 쉴 틈 없이 닦고 접고 닦고 넣고의 작업을 반복하셨다.
그땐 낚시라는 단어가 무엇인지는 모른 채 반복적인 작업에 집중하시던 할아버지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할아버지가 빨간 티코에 남동생과 나를 태우고는 어디론가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낚시여행이었고, 할아버지는 항상 나와 남동생에게 낚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할아버지가 동화책에 나오는 커다란 상어를 잡은 적이 있단다.' 할아버지의 말은 각인된 것처럼 콱 박혀 지워지지 않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여전히 내겐 상어를 잡으셨던 할아버지의 무용담이 떠오르곤 한다.
할아버지와의 추억도 있었지만 낚시를 가장 많이 접하게 해 준 사람은 아빠였다. 장비를 하나하나 직접 손보시며 거기에 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해주시던 할아버지와 달리, 아빠는 동생과 나에게 직접 만져보고 손질하게 만드셨다. 그냥 심부름 차원으로 시킨 것일 수도 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이 낚시를 취미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낚싯줄에 볼펜을 끼워 릴에 감는 작업을 시킨다든지, 낚싯바늘에 낚싯줄을 묶는 방법을 알려주시며 여러 개를 해보라고 하든지 등 심부름을 가장한 여러 가지 작업을 시키셨다. '낚싯대는 용도별로 다 달라, 낚싯바늘과 크기는 주력 어종에 따라 다르고, 바다이든 민물이든 결국 중요한 건 낚시를 한다는 거야. 알겠지 딸?'
그렇게 아빠를 도와 작업을 끝내고 나면, 아빠는 일찍 잠들었다가 새벽 2-3시쯤 일어나 집을 나서셨다. 덜 깬 눈으로 동생과 같이 아빠를 배웅하며 '만선' 꼭 하시라고 했다. 아빠는 이것저것 무거운 장비를 들고 가볍게 걸어 나가셨다. 새벽녘 어둠 속으로아빠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다 방으로 들어가 기절하듯 잠들었다.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아빠와의 낚시 데이트는 결국 중단되었지만, 아빠와 함께 간 저수지에서 야영하며 먹었던 컵라면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맛있는 기억이다. 어두운 밤, 야광찌 하나에 시선을 두고 기다리던 아빠의 모습은 지루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어린 마음에 아빠의 모습이 좋아 보여서 왠지 샘이 났다.
이따금씩 움직이던 아빠의 뒷모습에 대고 들으라며 텐트 안에서 동생과 동화책을 읽다가 잠들었던 기억. 동생은 내 동화책 읽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잠에 잔뜩 취해 읽었으니까. 그럼에도 그 기억은 따뜻한 삶의 퍼즐 조각이 되었다. 오래되었다고 잊히는 게 아니라 그때 그 순간은 가슴에 새겨지나 보다. 다음날 일어나 보면 아빠는 아이스박스 가득 물고기를 잡아놓으셨고, 한껏 상기된 얼굴로 우리에게 온화한 미소를 보이셨다. 그렇게나 낚시가 좋을까. 지금도 아빠께 가끔 물어보는 말인데, 그러면 항상 '네가 낚시를 좋아하는 것과 같다'라고 설명해주신다.
아빠가 저수지에서 낚아 올린 물고기로 민물매운탕을 끓여먹거나, 지루한 시간에 텐트 안에서 읽었던 동화책의 한 구절이랄지, 배고파하는 동생과 나를 위해 끓여준 아빠표 라면도 모두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건, 그 기억이 내겐 지루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아주 좋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낚시를 취미 삼아 남편과 하면서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아빠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낚시는 어떤 어종을 낚는 것에 목적을 두고 하는 것이긴 하지만, 낚기 위해 여러 가지 채비를 하고 그 과정에서 기술과 인내를 요하는 인격 수양 취미생활이기도 하다. 그리고 혼자서 할 때보다 같이 있을 때 잡아 올리는 기쁨은 몇 곱절은 커져서 돌아온다.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그 짜릿한 순간에 마음속에서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환희를 나눠줄 수 있는 것. 그걸 요즘 남편과 낚시를 하면서 배워가고 터득해가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텐트 속에서 이불도 덮지 않고 자고 일어나면 항상 이불이 덮어져 있었고, 깨끗한 물로 나와 남동생의 얼굴을 투박한 손으로 다정하게 세수시켜주던 아빠. 이런 추억 하나하나 떠올려보니, 어쩌면 아빠에게 낚시는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서툰 가장이셨던 아빠는 본인이 가장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취미를 가족 모두와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 집의 낚시 시초셨던 할아버지가 항상 낚시도구를 손질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낚시를 하면서 더 많이 인생에 대해 배운다고 하셨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할아버지에게 있어 낚시는 삶의 지표이자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게 해 준 등부표였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에게 낚시란? 아빠와 할아버지에게 각각 다른 이유로 시작되었던 것처럼,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것처럼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과 함께 해야 한다. 그렇게 쭉 하다 보면 어느샌가 의미도 점점 또렷하게 생겨나겠지, 란 기대를 갖고.
물론, 엄마는 반대로 낚시에 질리셔서 아빠의 취미생활로 '낚시'를 찬성하시지만 엄마가 직접 낚시를 따라가는 건 싫어하시게 되었다. 이로써 나는 부부도 취미생활이나 관심사가 비슷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부가 같은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좀 더 끈끈하게 단단하게 둘의 사이를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게임이나 운동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해보며 취미 발견 프로젝트에 계속 실패했지만, 끝끝내 '낚시'로 취미생활을 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남편에게 무한감사를 표하고 싶어 진다.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최근엔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