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생각하면 이때는 정말 의외의 연속인 날이었다. 남편과 나, 우리는 겨울 낚시에 푹 빠져있었고 덕분에 시댁을 거의 한 달에 4번, 적게는 3번 정도 방문했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자주 가느냐고 했지만 우리에겐 그 질문에 대답을 해줄 여유는 없었다. 그만큼 시댁에 내려가는 게 좋았고, 시댁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겨울 시즌 내내 얼음낚시로 빼곡하게 주말을 채우기 위해 시댁에 놀러갔다.
얼음낚시가 갖고 있는 한정적인 매력이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다른 계절과 달리 겨울에만 할 수 있는 얼음낚시에서는 저 멀리 어떤 곳을 지정해 던지는 캐스팅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아주 작은 낚싯바늘에 덕이(빙어 미끼)를 끼우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빙어의 기특한 입질이 수고로움을 덜어주었다. 그렇다, 우리에게 빙어낚시는 얼음낚시 중 으뜸이었고, 시댁을 내려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버님을 떠나보내신 후 혼자가 되신 어머님을 찾아뵙는 일도 의미 있었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슬픈 이유로 어머님을 뵈러 가지 않기로 했다. 어머님이 해주시는 모든 음식이 입맛에 맞는 건 아니지만, 어머님의 음식에선 엄마의 맛이 났다. 엄마가 해주시는 된장찌개, 시금치 된장국, 김치찌개... 엄마의 맛이 나는 어머님의 음식을 어느샌가 좋아하게 되었다. 우연의 연속일까, 엄마의 음식에서도 어머니의 맛이 났다. 고로 난 두 엄마의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나름의 이유와 명분을 들어 어머님께 자주 찾아뵙기로 했다. 우선 어머님이 보고 싶어서,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엄마의 맛이 나는 음식들을 먹고 싶어서, 귀여운 강아지 호빵이랑 놀아주기 위해, 그리고 공기 좋은 곳에서 남편과 즐기는 사계절 낚시를 위해. 아, 남편은 어머님의 일손을 도와드리기 위해(노동력을 반납하고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얻기 위해) 이렇게 시댁행 낚시 투어의 이유가 만들어졌다.
이유가 사라지면 끝나는 것들도 있지만, 우리에게 저런 이유들은 그야말로 명분이었다. 실상은 진짜 저런 생각으로 가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시댁에 놀러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으니까. 시댁이 물론 편안한 안식처처럼 느끼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어쨌든 서로 떨어져 산 시간만큼 익숙해지려면, 어색함과 불편함을 동반한 채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남편 덕분인지 시댁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편해졌다.
처음 낚시를 하러 따라 나갔을 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시던 시어머니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어머님의 표정 속에서 보통 취미로 낚시를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내게 물어보는 전형적인 반응을 읽었다. '뭐 할라고 거 가는데? 그기 글키 재밌나?' 라고 질문하시는 어머니. 정말, 진정으로 나는 이 질문을 이해한다. 나 조차도 낚시는 으레 낚시꾼들이 하는 것이고, 낚시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편견을 갖고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남녀 구분 없이 낚시는 모두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어머님의 그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남편이 어머님께 노동력을 헌납하고 얻은 완전한 자유시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댁 근처에서 즐기는 얼음낚시는 이 꿀맛 같은 자유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자유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댁을 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여러 명분을 앞세워 자주 찾아뵈었더니, 어느덧 어머님의 표정 안에는 황당함은 온데간데없고 체념과 이해를 담아내고 계셨다. 가끔 얼마나 잡아왔는지 궁금해하시기도 하니, 어쩌면 낚시는 우연의 연속이 모여 만든 기적 같은 일이 아닐까 싶다. '이번엔 좀 잡았나?'라고 물어보시면, 남편과 나는 말없이 통에 가득 담긴 빙어를 보여드렸다. 어머님도, 남편도, 나도 가득 채워진 통 안을 보면서 세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었다. 그렇게 시댁에서의 낚시가 마무리된다.
낚시는 우연의 연속이라고 했다. 우리의 취미를 받아들여주시는 어머님이 변하신 것도, 생각해보면 우연의 연속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그 기적은 때론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매서운 추위 앞에 두터운 우주복을 입고 시댁 근처 빙어스팟으로 낚시를 떠났다. 강추위가 계속되던 그날은 한파주의보가 떨어졌는데, 유난히 햇볕은 따사로웠다. 아이러니한 날씨에 발은 자꾸만 차가워졌고, 등은 따뜻해졌다. 차갑고 따뜻한 환경에서 우리는 빙어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빙어를 떼어주던 남편이 갑자기 웃으면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여보, 저기 봐봐!'
'왜?'
'엄마랑 동생이랑 호빵이랑 왔어'
'허걱?!!!!!!!!!!!!!!!!!!!!!! 진짜다!!!'
남편이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두자, 낚시터 입구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머님이셨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어머님과 아가씨, 강아지 호빵이까지 시댁 식구가 총출동한 것이었다.
어머님은 추위를 많이 타시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숱하게 낚시를 하러 갈 때도 같이 나오신 적이 없으셨다. 매운탕을 잘 끓이시는 어머니는 단 한 번도 간을 보시거나 드셔 보는 일이 없을 정도로 낚시에 관심이 없는 분이시다. 그런 어머님이 직접 낚시터에 나오셨다니!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아니다, 이건 기적이었다!
어머님은 중무장을 하신 채 강아지를 품에 안고 천천히 얼음낚시터 안쪽으로 내려오셨다. 아가씨 차를 타고 오셨다는 어머님은 남편과 내가 낚아 통 안에 가득 넣어둔 빙어를 보고 놀라셨다. 추운 날씨에 아들 며느리 감기 걸리지 않을까 걱정되었다며, 담요와 따뜻한 차를 타서 가져오셨던 것이다. 놀란 건 사실 우리였다.
추운 곳에서 낚시하느라 꽁꽁 얼어붙은 손에 따뜻한 차를 건네주시는 어머님의 표정은 걱정이 가득했지만, 더 이상 춥지 않았다. 같이 따라온 아가씨는 빙어낚시를 배웠고, 어머님은 강아지를 안고 계속 물고기를 낚는 나와 남편을 번갈아보시며 웃으셨다.
'이게 뭐 재밌나? 으이구'
'어머니 또 잡았어요!!!!!!'
'엄마~ 엄마 며느리가 고수야 고수'
싸라기눈과 얼음 조각들이 바람에 밀려 우리들 사이로 마구 파고들었지만, 모두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아니, 행복하다기보다 낚시를 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머님도, 아가씨도, 남편과 나도, 조금씩 떨고 있던 막둥이 호빵이 마저도. 물론, 이날의 낚시도 아주 성공적이었음은 물론이다.(적어도 백 마리 이상!!)
나와 남편은 이 순간을 그저 '낚시로 인해 생긴 해프닝'이 아닌, 낚시를 하면서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일어난 일련의 기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일.
낚시는 항상 계획한 대로 잡히지 않는다. 어떤 어종을 낚을지 생각하고 채비를 해서 가지만 늘 의외의 것들이 잡히거나 잡히지 않거나 하는 우연의 연속이 모인다. 빙어를 잡으러 갔다가 피라미를 잡는다랄지, 지나가던 이름 모를 작은 물고기를 낚는다랄지. 이렇게 계속 낚시를 하면서 생기는 작고 소소한 우연들이 모여 마침내 원하던 것을 낚게 된다.
우연이 계속되면 운명이 된다고 했던가, 그래서 낚시는 남편과 내게 운명적인 것이지만. 이번에는 우연의 연속이 만드는 기적이라고 해야 될 것 같다.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남편과 끊임없이 취미 발견을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우연히 찾아낸 아버님의 낚싯대에서 그리움을 발견하고, 오래된 사진 속에서 어린 시절 할아버지 곁에 앉아서 낚시도구들을 한참 바라봤던 기억을 떠올린 것도, 아빠가 시키신 작은 심부름이 모여 낚시를 알게 된 것도. 이런 우연들이 모이고 모여 낚시에 정착하게 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삶에서 기적은 대단한 형태로 찾아오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노력하고 작은 행복을 만들어 나갈 때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낚시를 그러니까 이 기적 같은 일을 우연의 연속이 만들어낸 것이라 믿는다.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최근엔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