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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정 Jul 31. 2017

아프니까 청춘이래요.

그걸 왜 어른들이 정하나요.


아프니까 청춘이다





    한 때 꽤 많은 공감을 받았고, 또 그 이후에 꽤 많은 비판을 받았던 말이 아닐까 싶다. 청춘이므로 아플 수는 있지만, 청춘이어서 아파야 할 의무는 없다. 과거에 책의 저자가 어떤 의도로 말을 쓴 것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이 말을 어른들이 "너희 청춘, 조금 아파도 견뎌야 해. 지금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청춘이니까 다시 열심히 살아야지"하고 말씀하시는 것에 나는 반감을 가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내가 생각할 때 이 말은 청춘이라는 시기의 불안정한 인간들이 그 불안정함 때문에 감정적으로 좌절할 일이 생겼거나, 성숙해가는 과정으로 나아가려 할 때 겪는 단기간의 좌절이나 인내를 의미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고려할 때, 특히 지금 대학 졸업과 사회 진출 사이에 있는 25살 '나'의 눈으로 볼 때, 이 말은 내가 생각하는 의미보다는 다른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 지배층 혹은 몇몇 기성세대가 청년을 부려먹으며 '열정 페이'로 후려치고, 사회 구조상 빚에 허덕이게 하고, 끼니 걱정을 하게 하면서 그 청춘에게 "너희 청춘이잖아. 그땐 다 고생하고 힘들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도 있지 않냐"하며 있어 보이는 말을 자신들의 악독한 속내를 감출 때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고, 처음 이 말이 나왔을 때도 이런 악의를 담아 사용한 것이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아서 내 눈에는 자꾸 이렇게 삐딱한 의도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어떻게 하겠나.






    내가 내 처지를 가엽게 여기거나, 스스로 택한 진로에서 실패를 맛보거나, 내면의 자아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위안을 얻고 극복할 힘을 얻으려고 사용하는 말이라면 모를까, 어른이라는 지위를 내세워서 이 시대의 청춘들의 아픔을 청춘이기에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소위 '꼰대'들에게 듣는 이러한 위로의 탈을 쓴 갑질은 본연의 것이 갑질이듯, 청춘들에게 전혀 위로도, 힘도 되지 않고 오히려 자존감만 하락시킨다.

   

    나는 이렇게 아프고 힘든데 이 고통이 당연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고통을 받고 당연히 견뎌내고 있는데 나만 너무 힘들어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남들보다 못한 사람인 걸까.

    다들 견뎌내고 있는 것에 나만 무너지고 있는데, 이렇게 살아야 가치가 있을까.


    청춘들도 각자가 가진 자아와 자존감의 크기가 다르다. 같은 말을 듣고도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윗 단락에 쓴 것처럼, 이런 과정들을 겪으며 더욱 힘들어하는 청춘은 분명히 많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지만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 안전망에 대한 고생은 절대 사서는 안된다. 나는 돈을 주고서라도 이러한 구조를 고착화시킨 사람들에게 이 고생을 팔고 싶다. 우리가 사야 할 고생은 사회의 지배층이 미리 만들어 놓은 구조 하의 고생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길에서 만나게 될 생산적인 고생이다.




    기존의 모든 부조리한 사회 구조가 비생산적인 고생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 구조 중에서도 사회를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변화해주는 구조가 있다. 이는 생산적인 고생이라고 본다. 하지만 새로운 삶과 사회 구조를 만들지 못하도록 청춘을 억압하고 미래를 막는 것들이 초래하는 것들은 비 생산적인 고생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따위 것들에 아파하면서도 청춘이기에 견딜 필요는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란 것은, 썩은 몇몇 사회 구조의 지배자 입에서 나올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다독이려 할 때 사용되어야 한다. 또한 모든 청춘은, 청춘이기 때문에 아플 수 있지만, 청춘이어서 아파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누구도 청춘의 고통을 의무로 둔갑시킬 수도 없고, 청춘의 고통이 이전, 이후 세대들의 그것과 동일하게 비교될 수는 없다. 각 세대의 청춘들은 각 세대의 고통을 지닐 뿐. 그러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각 세대의 청춘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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