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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정 Aug 02. 2017

내가 진짜 짊어진 것은 배낭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관심과 사랑, 이 둘을 짊어지고 떠났지 않았을까.



    배낭을 메고 떠나던 날이었다. 1월 30일까지 설 연휴였고, 나는 조금 더 싸게 가보겠다면 1월 31일 비행기 표를 끊어 놓은 터였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 부모님 중 엄마는 출근을 했고, 아빠는 그 날 일을 쉬고 나를 인천까지 데려다주셨다.





    우리 아빠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에서 제일 무뚝뚝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엄마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 아빠에 대해서 글을 쓰자면 너무나도 길지만 짧게 설명하자면 내 성격과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빠 성격의 판박이랄까. 그래서 우리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뚝뚝하다. 우리 아빠는 전혀 딸바보가 아니고 아내바보다. 나는 애교라곤 전혀 모르는 장군의 기지를 가진 딸이고.





    둘이 차를 타고 인천으로 향하는 동안의 분위기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래도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게 신경이 쓰여 옆자리에서 아빠에게 말을 좀 붙여 보았지만,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아주 속이 간지러워 죽는 줄 알았다. 그런 기분이 든 때부터 아빠와 나는 그냥 평소대로 앞만 보며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고 출국장 게이트 앞. 아빠는 잠시 차를 세우더니 시동도 끄지 않았다. 내가 먼저 내려 트렁크 문을 열고 배낭을 낑낑대며 들어 올리는 동안에도 아빠는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도 배낭여행이 처음이었던지라 배낭을 메는 것도 낯설던 때였다. 아빠한테 한탄하듯 한 마디를 뱉었다.




    - 아빠 배낭 너무 무거워 ㅜㅜ

    - 옆에 카트 있네. 끌어.




    역시나 우리 아빠였다. 나는 또 혼자 낑낑대며 카트를 끌어와 배낭을 얹었다. 몇 분, 아니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을 텐데 아빠는 운전석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도 딸내미가 멀리 나간다는데 체크인하고 출국장 들어가는 것 까지는 봐주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아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운전석에 탔고, 나는 게이트 밖에서 아빠한테 갔다 오겠노라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아빠는 잘 다녀오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쌩- 떠나버렸다. 보통은 들어가는 자식을 배웅하고,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지 않나? 나는 우리 아빠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혼란한 기분 속에서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말하면 아빠와 나 사이에 유대감이나 애정이 전혀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유난히도 이 날을 따뜻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아빠가 나에게 했던 단 한마디였던 것 같다.




야 너 두 달도 넘게 가는데 배낭이 너무 작은 거 아냐?
그걸로 되겠어?




    다른 여행자들을 보면서 나는, 나보다 무겁거나 큰 배낭을 본 적이 손에 꼽는다. 나보다 훨씬 오래 돌아다닐 계획이 있는 사람들도 무게를 재고, 부피를 재고 보면 나보다 가볍고 작았다. 나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짐이었는데, 아빠가 보기에는 이 배낭 두 개로 내가 두 달을 사는 게 버거워 보였나 보다. 실제로는 넉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차고 넘치는 배낭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아빠가 하고 있는 걱정의 크기가 내 배낭의 크기와 관련이 있고, 아빠가 하는 걱정의 무게가 내 배낭의 무게와 관련이 있겠구나 싶었다. 아빠의 걱정은 내가 앞에, 뒤에 짊어진 배낭과 반비례하고 있었다. 물론 배낭이 크고 무겁다고 안전하고 잘 살다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빠는 그나마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걱정을 덜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빠의 걱정을 집어삼켜 줄 만큼 크고 든든한 배낭은 아마도 이 세상에 없지 않을까.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감히 내가 짊어질 수 없는 만큼의 것이지 않을까.





    무뚝뚝한 아빠가 내 배낭을 보고 걱정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곧 나를 향한 마음이자 사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록 공항에서 나를 버리다시피 하며 떠나갔지만. 비록 차 안에서 말 몇 마디 없이 앞만 보며 달려왔지만. 아빠는 나와 너무나도 비슷한 사람이어서, 저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관심과 사랑과 걱정을 담았을지 눈에 보였다. 그리고 내가 볼 수 없는 만큼의 것들이 더 담겨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내가 진짜로 짊어진 것은, 수개월의 생활용품이 담긴 배낭이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관심과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빠의 마음을 딸이 어찌 온전히 알 수 있으랴. 이런 사랑과 관심 덕분에 나는 지난 4개월 반 가량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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