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소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지금은 여행작가지만, 한때는 여행사에서 월급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유럽 여행에 자신이 없는 예비 여행자들의 예산과 일정, 취향에 맞춰 루트를 짜주는 게 담당업무였다. 어디에 가면 좋을지, 뭘 먹으면 좋을지, 어디에서 자면 좋을지 등등 사소하면서도 중대한 고민에 대해 면대면인 상황에서 답을 해줘야 했다. 어쩌면 내게 ‘효율적 여행’을 주입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 혹은 지인들을 상대로 하는 여행에 대해서는 가급적이면 헐렁한 일정을 짜도록 권하곤 했다. 성긴 계획들이 불안해 보일지라도, 막상 현지에 가게 되면 그마저도 몇 개씩은 빼먹을 가능성이 높다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상담”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핑계로 만나 술 한잔을 얻어 마시는 게 꽤 재미있는 일이었기에 모든 것에 너그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때의 조언이라는 건 보통 이런 식이었다.
“프라하라… 카를교에서 박물관 쪽으로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돌면 노천 테이블 내놓은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데, 거기 소시지가 맛있어. 밤에 가면 더 좋기야 하지. 근데 사람이 많아서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 기다릴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확언할 수 없으니까, 상황 봐서 판단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런데 난 부다페스트가 더 좋더라구. 프라하가 더 크긴 하지. 근데 우아한 걸로 따지면 부다페스트가 더 좋았어. 뭐랄까. 프라하가 화려하지만 쌉쌀한 필스너 우르켈 맥주 같은 분위기라면 부다페스트는 토카이 와인처럼 달콤하면서도 차분한 곳이거든. 아, 거기 온천도 좋아. 세체니 온천은 한국 사람 기준으로는 좀 미지근한 물에 수영복 입고 들어가는 거고, 거길 뭐라 설명해야 하나… 암튼 도나우강 근처에 한국 목욕탕처럼 뜨거운 탕에다 쪄 죽을 거 같은 사우나가 있는 온천도 있어. 한 번 들어가서 지져주면 아주 그냥 죽어. 부다페스트는 돌아 나올 때 짤즈(부르크) 들를 수 있는 것도 좋아. 시간 되면 사운드 오브 뮤직 찍었던 데도 갈 수 있고 인스부르크에서 오스트리아 알프스도 오를 수 있거든. 짤즈는 겨울만 아니면 밤 산책하기도 좋은 도시야.”
아직 해외여행에 대한 세세한 정보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게다가 여행사 재직자가 직접 전하는 팁들이라 내 조언은 꽤 높은 신빙성을 자랑했다. 혹시 내가 알려준 그곳엘 가지 못했다는 항의를 받더라도 “그래서 내가 지도 보는 법 연습하고 가라고 했잖아”라며 혀를 차면 그만이었다. 덕분에 나는 내 주위 사람들 중에 가장 여행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국내 여행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20대 후반부터 여행과 관련된 글과 사진을 만들어내는 일을 사직했으니, 나는 또래 중에서 국내 여행 경험이 가장 많은 축에 속했다. 인기 관광지라 할 수 있는 곳들은 모두 가봤을 뿐 아니라, 당시만 해도 아직 전국적인 관광지로 변모하지 않았던 여러 곳도 먼저 경험을 해봤다. 하지만 제주에 간 건 서른이 지난 후였다.
지금이야 통영에서 제주에 가는 게 통영에서 서울 가는 것보다 빠르고 저렴하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지금만큼 저가항공이 많지 않았다. 예약 역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했다. 그렇다 해서 제주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곧 출장으로 가게 될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가 더 컸다. 실제 서너 번 출장 기회가 있었지만 출발 직전에 이러저러한 이유도 취소가 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내 돈 주고는 안 간다”는 오기 같은 게 생겼다. 결국 지구 반 바퀴를 도는 동안에도 제주는 못 가본 상태였다.
이런 나를 친절하게 이끌어준 가이드는, 아내였다. 결혼을 한 다음 해, 아내는 제주도로의 여행을 권했다. 아내는 제주로 이전한 대형 IT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제주는 내가 잘 알아”라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협재와 비양도를, 성산과 섭지코지를, 몇 곳의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제주는 가장 많은 가족 여행이 진행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