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환정 Sep 30. 2023

그 여행작가는 여행을 모른다

“근데, 난 여행이 뭔지 모르겠어.”

언젠가 호텔 숙박권을 판매하는 홈쇼핑 방송을 아내와 함께 보던 중 불쑥 튀어나온 말이다. 아내는 “뭐?”라고 평소보다 큰 목소리를 내며 나를 돌아봤다. 나도 모르게 이상한 말을 한 나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들은 아내 모두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아내 입장에서는 그런 반응이 무리도 아니었다. 1년이면 6만km의 주행거리를 쌓으며 불특정 다수에게 여행지를 소개하는 일을 하는 남편을 뒀으니까. 하지만 여행이 뭔지 모르겠다는 그때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십대 후반부터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돌아와 글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신기한 장소나 놀라운 음식을 만날 확률이 높지 않다. 게다가 아무리 좋은 숙박시설이라 한들 바깥에서의 하룻밤이 그다지 반갑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이렇게 무감한 상태로 돌아다니고 있으니, 어딜 가도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내가 만들어낸 콘텐츠들이 무채색인 건 아니었다. 누가 봐도 매력적일 사진과 글을 만들어내는 일은 끊임없이 이어갔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장면과 문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제는 나의 감정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 탓이다. 그러니 과연 여행이라는 게 무슨 재미로 다니는 것인지 새삼스러운 의문이 들기 시작한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물론 나는 누구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졸업 기념 전국일주 계획을 세웠고 대학에 입학한 첫해 여름방학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보냈으며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던 해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반년 동안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오갔다. 모두 나 혼자였던 일정이었다. 나는 언제까지고 돌아다닐 것이며 결국 그러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로 죽고 말 것이라는 운명적 신념 비슷한 것도 갖고 있었다.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을 것이라 믿고 살았던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거친 후에도 여행은 좋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내 역시 “신혼여행은 아마존 트래킹도 좋아”라고 할 정도 여행을, 그것도 씩씩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호흡이 꽤 잘 맞았다. 덕분에,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도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세렝게티.


하지만 아이들이 생기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아니, 세상이 달라졌다. 양가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시작했던 육아였기에, 나는 산후우울증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물론 나보다 더 큰 고생을 한 건 아내였지만, 한여름에 온몸을 달구며 울고 있는 갓난아기와 몇 시간이고 살을 맞대며 진땀을 흘릴 때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알고 있다.      


다행히 아이들은 시간을 먹으며 큰 탈 없이 자랐다. 드디어 살만해진 나도 “이 녀석들에게도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동화 같은 상상을 할 여력이 생겼다. 다만, 아이들의 첫 여정은 또래에 비해 좀 더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양가 부모님과 4시간 이상 떨어진 통영에 살고 있는 터라, 일 년에 몇 차례 역귀성을 강행해야 했던 탓이다.      


이 긴 여정을 여행이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목적을 갖고 있는 이동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이걸 해야 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행위를 여행이라 생각지 않는다. 내게 여행이란 “거기에 있는 내 마음을 가지러 가는 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지시 혹은 후원으로 다녀왔던 홍콩, 마카오, 호주에서의 일정은 출장일 뿐이었다. 온 가족이 각자 맡은 바 본분을 다하기 위해 어른을 찾아뵙는 일 역시 여행일 수는 없었다.      


물론 여행의 기술이야 잘 알고 있다. 특정 지역 혹은 권역의 가장 대표적인 볼거리와 먹어야 하는 음식들에 대한 데이터가 많이 쌓여 있을 뿐 아니라 시기와 인원, 기간에 따라 최적의 여행 코스를 구성하는 것도 내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뿐인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여행과 관련된 콘텐츠를 실제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촬영하고 글을 쓰는 것 역시 내 전문분야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위한 여행을 가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가족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코스로 구성한 며칠을 계획대로 혹은 아슬아슬한 임기응변으로 보내고 나면, 여행이 아닌 과업이 끝났다는 느낌이 더 컸다. 물론 아내는 “엄마 아빠가 즐거워야 아이들도 즐거운 법”이라며 어른들을 위한 코스도 중간중간 첨가하곤 했지만, 어쨌든 모든 일정의 주체는 아이들일 수밖에 없었다.      


가만, 내 여행이 재미없어진 이유는 혹시 아이들 때문이었나? 하지만 아내는 성격 급한 아빠의 섣부른 판단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여행을 일처럼 해왔다는 거였다. 사전에 이러저러한 계획을 세우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그 계획을 지키는 것이 내 여행 스타일이라 했다. 당연하지.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스팟을 돌며 최대한 많은 A컷을 만들어야 하니까.      


아내는 채널을 돌리며 물었다. 그렇게 다니면 안 피곤해? 새삼스러운 질문이었다. 당연히 피곤하지. 피곤하면 일이지? 자, 지금까지 우리가 다녔던 여행들 떠올려봐요. 내가 옆에서 보기엔 당신이 너무 열심히 계획하고 열심히 실천했어. 아니, 그거야 당연한 일 아냐? 계획을 잘 세워야 제대로 돌아다니지. 여행이라는 게 꼭 뭘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결혼 전에 당신이 항상 하던 얘기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런 시절이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에 만족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걸까. 가능성은 두 가지. 여행을 업으로 삼은 자가 감내해야 할 직업병. 아이들에게 뭔가를 더 쥐어 주고 싶은 아빠의 욕심. 말이 좋아 가능성일 뿐이지, 확실하기 이를 데 없는 용의점들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나와 아내가, 아니 내가 주도했던 가족 여행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여행이 실패한 것은 아니었더라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선명한 여행의 기억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제 와 다시 돌아보자니 대학교 1학년 1학기 성적표를 다시 들춰 보는 것처럼 괴롭지만, 무엇이 문제였는지 얼른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녀석이 벌써 10살. 중학생이 되면 이제 ‘가족여행’이라는 호사스러운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이벤트를 쉽게 기대할 수 없게 될 테니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답 노트를 복습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시험 대비인 것처럼, 가족 모두가 불편했던 여행의 기억들이 가장 즐거운 여행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