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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Mar 26. 2024

죽은 개를 기억하다_(4)

한비_2

채 한 살도 되기 전의 한비는 금세 우리 집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됐다.

나와 동생 뿐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때의 집안 분위기는 뭐라 묘사할 수 없을 만큼 즐거웠다.


나나 동생이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찾는 건 당연히 한비였다.

아니, 찾을 필요도 없었다.

오래된 나무 대문 바로 뒤에 엎드려 있다

식구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흔들다


마침내 대문이 열리면 겅중겅중 뛰면서 가족을 반겼다. 

그보다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은 없었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한비를 안아들고 뺨을 부비적거리거나 볼에 입을 맞췄다.

한동안 이곳저곳을 쓰다듬고 긁은 후에 다시 바닥에 내려놓으면

한비는 발끝에 누워 배를 보이며 여전히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면 그 배를 다시 한 번 긁어줘야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우리 형제만큼 요란스럽진 않았지만, 퇴근하고 돌아오시는 아버지 역시

대문에서 현관까지의 이동 속도가 현저히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아들만 둘 있던, 그래서 살가운 누군가가 없던 집안에서 한비는

"사랑을 독차지하는 고명딸"로서의 역할을 너무나 충실하게 수행했던 셈이다.


다만, 이 녀석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커지니 힘이 세지고

힘이 세지니 반가워 달려드는 모습에 조금씩 긴장을 해야 했다.

잠시 호흡이 안 맞는 사이에 가속이 붙은 한비가 앞발로 골반이나 배를 때리면

헉, 하고 숨이 멎을 정도가 됐다. 


넥타이를 매고 다니시던 아버지는 더더욱 긴장하셨다.

어쩐 일인지 한비는, 아버지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겅중 뛰어 넥타이를 물고 현관까지 아버지를 끌고 오곤 했다.

아버지는, 몇 개의 넥타이에 구멍이 생긴 이후에야 

아버지는 와이셔츠 단추 사이로 넥타이를 여미는 습관을 몸에 익히실 수 있었다.


가족이 둘러 앉아 저녁을 먹고 과일을 먹고 잠이 들기 전까지

한비 이야기가 몇 번이나 오고 가곤 했다.

한비가 어떤 말썽을 부렸는지 어머니가 전해주시면

"그건 한비가 이런 마음이었기 때문일 거야"라고 아버지가 해석을 해주시면

나와 동생은 "애가 똑똑해서 그래"로 마무리되는 대화들이었다.

한비는 정말 가족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그때만 해도 한비는 아직 마당에서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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