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_1
흙과 나무와 풀이 있는 서울 변두리 집에서 살던 우리 가족은
광화문과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애초에 내가 태어나 자라기 시작한 곳이기도 했던 그 집의 작은 마당은
온통 시멘트로 포장돼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집에서 개를 키울 수 없다 하셨다.
개가 뛸 수도 없을 뿐더러, 동물은 흙을 밟으며 살아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나와 동생 역시 그 말씀에 공감은 했지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집에 도착해 보니 이제 막 강아지 티를 벗기 시작한 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진돗개임을 알아볼 수 있었던 그 녀석이 우리 집에 오게 된 건
며칠 전 옆집에 들었던 도둑 때문이었다.
나와 동생이 각각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자
집에는 어머니 혼자 계시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런 나날이 "한갓져서 좋다"던 어머니가 빨래를 널던 중
옆집 지붕 기와 위를 걷고 있는 도둑을 발견하셨다.
오래된 개량 한옥이 담장 하나를 두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던 동네였던 터라
도둑은 우리 집 마당으로 뛰어내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으셨던 어머니는 겨우 용기를 내 "도둑이야!" 소리를 지르고는 주저 앉으셨다 한다.
퇴근 후 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동네 동물 병원에 진돗개를 물색해 달라 부탁하셨고
마침 분양을 기다리고 있던 암수 진돗개 두 마리 중 암놈을 다음 날 집으로 데리고 오셨다.
숫놈은 곧잘 집을 나가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동생은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한창 사춘기에 남자다움을 중시하던 녀석은
어디서든 힘으로 밀리지 않는 위풍당당한 숫놈 진돗개면 더 좋았을 것이라 했지만
어쨌든 진돗개를, 아니 개를 키울 수 있게 됐다는 게 무엇보다 기뻤다.
그래서 동생은 옥편을 뒤져 가며 클 한(漢), 날 비(飛)를 찾아 한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만 보면 반가움에 오줌을 지리며 꼬리를 흔들던 꼬꼬마 진돗개에게는 너무 거창한 의미였지만
한비라는 이름은 의외로 입에 잘 붙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혼자 부르곤 한다.
무척이나 그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