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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Mar 24. 2024

죽은 개를 기억하다_(1)

달랑이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개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그 개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몇 년 후면 50대가 될 나 역시 유치원 때부터 키웠던 개들이 아직도 종종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개들의 모습이, 함께했던 시간들이, 기뻤던 순간들이, 슬펐던 그날이

모두 잊혀질까 걱정이 되는 시점이 됐다.


아주 어렸을 때의 개들은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고

가장 최근에 키웠던 개의 사진은 너무 적다.

그래서 글로써나마 남기려 한다.

그 기억의 가장 앞에 서 있는 개는 달랑이다.


아마 7살 무렵이지 않았을까.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집은 장미덩굴과 몇몇 나무들이 자라는 마당이 있는 변두리 주택이었다.

난 그 마당에서 개와 함께 노는 상상을 많이 했다.

몇 번이고 개를 키우고 싶다 조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버지가 얼룩덜룩한 강아지를 한 마리 데리고 오셨다.

견종은 포인터였고, 아마 생후 3개월 정도 됐던 걸로 기억한다. 

달랑이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주셨다. 

작은 녀석이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게 꼭 방울이 달랑거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달랑이는 똑똑했다. 

새의 위치를 파악하거나 총에 맞아 추락한 새를 물어 오는 사냥개 혈통이라 그랬는지

사람의 말이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개를 좋아하던 나는 누구보다 달랑이를 좋아했다. 

동네를 돌아다닐 때도, 산에 갈 때도, 개천으로 놀러갈 때도

언제나 달랑이와 함께였다. 


달랑이도 나를 많이 따랐다. 그러니 정이 깊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끔 내가 뭔가를 잘못해 어머니에게 혼이 날 때면

마당으로 나가 달랑이를 끌어안고 울기도 했다.

달랑이는 가만히 안겨 나를 위로해줬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는 내가 그랬던 것보다 더 달랑이를 아끼셨다.


80년대 초반 서울 변두리 동네가 다들 그러했듯

개를 묶어 놓거나 문단속을 철저히 하는 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동네 개들이 우리집을 드나들기도 했고

달랑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아빠를 모르는 새끼들을 낳았다.


문제는, 한 번에 태어나는 새끼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데에 있었다.

기억하기로 아홉 마리가 한 번에 태어난 적도 있었다.

그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느라 달랑이가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아빠, 달랑이 죽을 거 같아"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 전화 한 통에 아버지는 택시를 타고 퇴근하신 후

밤 늦도록 달랑이 옆에서 상태를 살피며 이것저곳 먹이셨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후로 우리집 근처에 수캐들이 어슬렁거리는 게 눈에 띄면 

나는 곧바로 집에서 몽둥이를 들고 나와 녀석들을 쫓아내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키우던 새끼들 중 한 마리 때문에 큰일이 일어났다.

"넌 어젯밤 무슨 소리 못 들었니?"

어느 날 아침밥을 먹는데 어머니가 물으셨다. 

자느라 정신이 없던 내게 어머니가 말씀해주신 전날의 사정은 이러했다.


새벽 두세 시 무렵, 갑자기 달랑이가 울기 시작했다.

짖기만 할뿐 운 적은 한 번도 없던 달랑이이였기에 아버지는 얼른 마당으로 나가셨다.

당시 우리 집에서는 생후 6개월 정도 된 달랑이의 새끼 한 마리를 같이 키우고 있었는데

그 새끼가 약을 먹고 죽은 쥐를 발견하고 물어뜯기 시작했다.


달랑이는 새끼를 말리고 싶었지만, 강아지 티를 벗고 있던 새끼는 어미의 힘으로 제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있는 집을 향해 울기 시작했고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 곧바로 새끼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아버지가 새끼가 있는 곳에 가보니, 이미 쥐의 대가리는 형체가 없이 사라졌고

곧 쥐약이 모여 있는 배 쪽에 입을 댈 참이었다는 게 아버지의 설명이었다.

새끼를 떼어놓고 죽은 쥐를 멀리 갖다 버리자 달랑이는 아버지 옆에서 꼬리를 한참 흔들었다 한다.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 어머니는 달랑이가 어쩐지 부담스러워 하셨다.

당시의 나는 몰랐다. 왜 갑자기 달랑이가 개장수에게 팔려갔는지.

나중에, 그러니까 내가 중학생이 됐을 무렵에야 알게 됐다. 

달랑이가 너무 똑똑해 혼자 집에 계시던 어머니께서는 문득 섬뜩한 기분이 들 때다 있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어머니에 대해서는 야속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왜 달랑이를 믿지 못 하셨는지 이해를 못 했으니까.

지금도 어머니는 나 그리고 아버지만큼 개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쥐의 머리를 파먹던 달랑이의 새끼는 우리 집에 남아서 몇 달을 더 살았지만

어느 날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로 한동안 우리 집에 더 이상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난 많이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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