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순이
달랑이가 떠난 지 2년이 좀 안 됐을 무렵
아버지는 진돗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 오셨다.
달랑이와 마찬가지로, 이 녀석도 생후 4개월 정도 지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발랄했고 덕분에 즐거웠다.
다시 집에 개가 생겼다는 생각에 학교 가는 게 싫어질 정도였다.
그래서 하교 시간이면 누구보다 빠르게 학교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채 두 달도 가질 못 했다.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진순이를 데려가셨다.
아버지는 "원래 할아버지께 드리려고 데리고 왔던 녀석"이라 설명하셨지만
납득이 되질 않았다.
납득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아버지에게도 전혀 예정에 없던 일이었으니까.
생신 잔치를 위해 모신 할아버지께서 진순이를 보시고는 맘에 들어
돌아가시는 길에 데려가신 거였다.
그렇게 진순이와는 허무하게 이별하게 됐지만
영영 못 보게 된 건 아니었다.
큰댁에 가면 진순이를 볼 수 있었으니까.
그 후로 나는 큰댁에 꽤 자주 들락거렸다.
큰댁에 도착하면 내게 뛰어드는 진순이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큰어머니께도 인사를 드린 후
다시 마당으로 나가 진순이를 다시 껴안고 한참을 놀았다.
한 달이나마 함께 생활했던 기억이 남아 있던 덕분에
진순이 역시 우리 식구들이 오면 언제나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할아버지께서 진순이를 몹시 아끼셨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할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셨는데
가장 먼저 하시던 일은 진순이의 아침을 챙기는 거였다고 한다.
밥도 찬밥에 잔반 남은 걸 섞은 게 아니었다.
시장에서 얻어온 닭 대가리를 삶고
거기에 밥과 채소 몇 가지를 넣어 충분히 식힌 뒤에야 진순이의 밥그릇에 덜어놓으셨단다.
새끼를 낼 때도 동네 동물병원에서 '주선'한 믿을 만한 숫놈과만 접을 붙이셨고
출산 간격 역시 진순이에게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셨다.
진순이는 그렇게 10년 정도를 할아버지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살았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진순이는 할아버지께 참 큰 의미를 가진 개였구나 싶다.
그래서 진순이가 갑자기 사라진 이후
그러니까, 얼마 전부터 동네를 몇 바퀴씩 돌다 진순이와 함께 한 개장수가 사라진 그 날 이후
할아버지의 기력이 급격히 쇠해졌던 게 당연한 일이었구나 싶다.
할아버지는 진순이가 사라진 지 2년쯤 지났을 무렵 돌아가셨다.
그리고 우리집에는 그 사이에 새로운 진돗개가 한 마리 들어왔다.
내가, 그리고 아버지와 동생이 여전히 잊지 못 하고 있는 한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