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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정 Apr 02. 2024

죽은 개를 기억하다_(14)

한비두비_4

두비는 약았다.

그래서 말을 잘 들었다.

그냥 잘 들은 게 아니라 정말 잘 들었다.

말 안 듣는 한비와 함께 있다 보니 

두비의 영특함과 기민함은 더욱 도드러졌다.


부르면 오고 앉으라면 앉고 왼손 오른손을 구분해 손을 건네는 모습에

식구들 모두 감탄해마지 않았다.

물론 한비는 그런 모습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간혹 두비가 먼저 함께 놀자며 누워 있는 한비의 목을 물고 흔들면

그제야 몸을 돌려 입을 벌리고 위협하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한비가 움직이다 두비를 건드리게 되면

두비는 그야말로 '개정색'을 하고 한비에게 짖어댔다.

그럼 한비는 뻘쭘한 표정으로 일어나 앉았다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두비는 그런 한비의 뒷모습에도 몇 차례 왕왕거리다

마치 고자질이라도 하듯 토라진 모습으로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두비는 정말 꾀가 말짱했다.

바깥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면 두비가 먼저 짖기 시작하곤 했는데

그 소리가 영 신경이 쓰이게 되면 대문 앞으로 뛰어나간다.

그렇게 대문 앞에서 바깥을 신경 쓰던 두비는 문득 다시 집안으로 뛰어들어 오곤 한다.

가만히 엎드려 있던 한비를 향해 짖으며 함께 나가 밖을 살펴달라 하기 위함이다.

그럼 한비는 천천히 일어나 대문 앞까지 가서 밖에 무슨 일이 있는지 소리를 들어본다.

한비의 반응상 별 일이 아닌 것 같으면, 두비가 먼저 집안으로 뛰어들어온다.

그리고 뒤를 이어 들어오려는 한비를 막아서고 마구 짖어댄다.

들어오지 말라는 강력한 표현이다.

한비는 그런 두비의 짖음이 영 귀찮다는 표정으로 펄쩍 뛰어 집안으로 들어온다.

그럼 두비는 또 못마땅한 얼굴이 돼 어머니를 찾는다.


물론 한비가 얌전한 편이긴 해도

부처님 가운데 토막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굴러온 돌'의 이런 말도 안 되는 행태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집안 이곳저곳을 날뛰며 짖어댔다. 물론 두비에게 이를 드러내지는 않고.

간혹 빨래통에서 아무 옷이나 물고 마구 흔들어댈 때도 있었다.

그러면 두비는 겁을 먹고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가 자신을 들어오리고 "그러니까 왜 언니를 화나게 해"라고 쓰다듬기가 무섭게

이번엔 두비가 한비를 향해 마구 짖어댄다.

그야말로 집안이 개소리로 가득 차게 되는 순간.

이럴 때는 한비에게 간식을 주거나 내 방 혹은 동생방으로 한비를 데리고 들어가 진정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시끌벅적한 날들도 한비와 두비 모두 아직 '젊었을 때'의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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