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마켓 <퍼블리셔스 테이블> 참가 후기
세상에 창작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한국이 트렌드에 민감하고 변화가 빠른 편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독립출판 시장이 커가는 속도를 보면 출판 업계가 불황이라지만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갈증은 여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돌멩이를 집어 들어 벽화를 남기던 DNA가 어디 갈까. 재미있는 콘텐츠를 소비하려는 욕망이야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사라질 일은 없겠지.)
크리에이터의 홍수, 콘텐츠의 홍수라고 말로만 들었는데 독립출판 마켓에서는 그걸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세상에 자기 이야기를 쓰고, 그리고, 만드는 사람은 너무 많은데 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사람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다들 잘하기까지! 개인이 만들었다고 해서 만듦새가 엉성하다는 것도 다 옛말이고 양질의 제작물은 해마다 쏟아진다. 퍼블리셔스 테이블만 해도 작년과 올해, 딱 1년 차이인데도 규모나 방문객들의 열기가 작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큰 파도가 밀려오면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흐름에 올라타는 게 중요하다. 파도가 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하고, 그다음에 적당한 타이밍에 올라타야 한다. 또 하나, 어떤 도구를 이용할지 재빨리 정해야 한다. 파도가 내 몸을 덮치기 전에, 또 내가 생각한 도구를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가져가서 사라지기 전에. 창작물의 홍수 속에서 창작자로서 나는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파도 위에 올라타야 잠식되지 않을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마 이 고민은 계속 창작을 하고 활동하는 한 어쩔 수 없이 계속될 것이다. 당장 올해에는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년에는 또 답이 아니게 될 수도 있고, 지금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선택지가 내년에는 답처럼 보일 수도 있고. 그렇게 알 수 없는 게 콘텐츠의 흐름이지 않겠어요?!(트렌드는 예측하는 순간 이미 트렌드가 아닌 거지!)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건 정말 변할 리가 없다고 믿는 건, ‘덕질’하는 마음이 들어간 콘텐츠만큼은 언제 어느 때나 천하무적이라는 것. 그러니까 제작자가 정말 좋아하고, 그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도저히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만든 제작물은 다 티가 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순수함이 느껴질 때 매력을 느끼고 손을 뻗을 수밖에 없다는 것.
꼭 좋아하는 대상을 예찬하기 위해 쓰고 만드는 제작물이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장르물은 그 장르의 덕후가 만들어야 재미있듯 이야기 역시 쓰는 사람이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채 써내려 간 이야기만큼 흡입력 있는 이야기도 없다. 자기 안에서 자발적으로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면 금세 티가 난다. 생각보다 독자의 눈은 날카롭고, 정확하고, 빠르니까. 그러니까 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내가 잘할 수 있는 걸로 보여줘야 하고. 기회가 많이 오는 건 아니니까. 어느 정도는 강박을 가진 채 부지런히 질문하고 답을 내야 한다. “내가 지금 뭘 얘기하고 싶지?” “이걸 어떻게 얘기할 건데?” “이제 다음엔 뭘 얘기하고 싶지?”라는 질문은 아무리 반복해도 과하지 않다. (이런 질문을 할 생각이 싹 사라지는 순간 아마 창작을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가끔 세상에 너무 잘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는 아직 개성이 부족한 것 같다, 혹은 내 포지셔닝은 어떻게 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의구심이 들 때마다 “그러니까 남들이 잘하는 거 말고, 내가 잘하는 걸 하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작년에 세웠던 나만의 작업 원칙 중 아래 문장을 특히 곱씹으며.
-비교는 어제의 나하고만 한다.
-작업은 내가 납득이 가고, 즐거운 주제로만 한다.
-내가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쓴다.
그러니까 결론은 아직 포지셔닝을 정하지는 못했고 계속 뭘 하든 지금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만 하겠다는 그런 결론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올해까지는 그게 제 나이 또래의 친구들을 위로하고 옹호하기 위한 이야기를 짓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직은 이야기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