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의사가 되었을까?
처음, 수련을 시작했을 때.
분명 하는 일도 없고 허드렛 일만 잔뜩 하는데도 병원을 다니는 나의 발걸음은 분명히 즐거웠다.
밤을 매일 꼴딱 세고, 혼이 그렇게 나면서도
분명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한 일의 어느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꺼라고.
직접적으로 생명을 살리지 못해도 내가 그들을 살리는 선배 의사선생님들을 돕고 있을 꺼라고.
그 순간들을 지나 4년의 시간을 참아내고 드디어 전문의가 되었다.
'동네병원'이라는 강호의 세계에 진입해 보니 이 곳에서 더는 내가 필요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내가 마음을 쏟으면 쏟을수록 때로는 나의 마음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비수가 되어 나를 상처 입혔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여기서는 나 아니어도 주변에 수많은 병원이 있기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지금 이 사회에서 의사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인지 나의 진심이 쉽게 그들에게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서 슬픈 요즘이다.
오늘, 요즘 아이 둘을 데리고 자주오시는 어머니가 또 방문해주셨다.
처음 봤을 때, 아이가 많이 아팠었는데 그 시기를 잘 넘기고
그 후로 다른 아이들까지 데려와서 진료를 받으셔서 점점 관계를 쌓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처음 다른 아이를 데려오시던 날, 나는 마음 속으로 약간 놀랬었다.
첫째아이와 둘째아이의 성이 달랐다.
머리 속에 많은 생각이 감돌았지만. 그냥 넘겼었다.
하지만 어머니를 볼 때마다 여러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오늘 아침,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첫째가 한살 반이 되었을 때, 남편이 교통사고로 즉사를 했어요. 그 당시에 하루하루를 사는게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 그 당시에 위로해주던 남편 친구와 결혼하고 둘째를 낳았어요. 이제 우리 아이를 자주 보실꺼 같아서 선생님께는 말씀을 드려야할 것 같아서요. 저희 첫째가 4살인데 벌써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엄마 왜 내 성과 동생 성이 다르냐고..
저희 첫째가 저의 아픈 손가락이에요. 이 애가 상처받을까봐 그게 너무 걱정이에요"
나는 마음 속으로 나의 여러 생각들을 반성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루에도 몇십명에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옷을 입고 서로를 판단하지만 그 속에 어떤 삶의 모습이 있을 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마음을 열어 그 단면을 가끔 보여주는 사람들.
사실 그 속을 보면 연약하고 아픈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참 많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기쁜 사람들 보다 아픈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 가운데서 함께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의사가 되었는데 요즘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오늘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나는 오랫만에 함께 슬퍼하고 마음을 나눴던 것 같다.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 가는 것.
첫 시작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문을 열어줬을 때 함께 손을 잡는 것.
이게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겠지.
내 삶에서 지나가고 있는 이 새로운 계절에
몸으로 마음으로 이 시간들을 받아들이며 무럭무럭 자라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