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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것.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by 뱅울

오롯이 저를 알기 위해 시간을 쓰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해 왔어요. 그럴 시간에 그림이나 한 장 더 그리고 글이나 한 줄 더 쓰고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나 더 하는 편이 좀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 것들에 대해 알아갈 수 있으니까 별 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가만히 앉아 나를 톺아보는 일.

조금 욕심을 내어 시간을 할애하는 일은 꽤 중요한 것이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한 과정을 혼잣말로 뱉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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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과 스물아홉 그 사이의 내가 되어보니 이 시기가 왜 혼돈의 시간인지 알겠다. 내 주변이 다 다르다. 다 제각기 다른 삶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학교를 전부 졸업하고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 만에 우리는 각자 자기의 갈래로 한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기했다. 그간 우린 그래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부분 말고 조금씩 다르다고 느꼈던 부분들이 흩어져있던 시간 동안 더 커져서 이젠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이 너무 신기하다. 동시에 내가 그와중에도 결이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조금 두려웠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쟤들이랑 나 뭐가 다른 걸까.

그랬더니 궁금한 것이다. 이 친구들의 생각이. 삶을 대하는 가치관이. MBTI 같은 단순하게 분류되는 성격검사 같은 거 말고 얘들 제각기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나침반이 궁금해졌다.


생각보다 너의 가치관은 무엇이야?라고 물어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냥 가치관이라는 단어 자체를 꺼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치관이라는 단어는 조금 무겁더라고. 그 무거움을 이기고 물어보았던 순간에는 또 아차 싶었다. 진심은 뱉어내는 순간 오염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들을 사람을 의식하고 뱉어내는 말들은 분명 거짓은 아니지만 조금 뿌연 무언가에 둘러싸인 채 전달되는 것 같다. 게다가 그걸 듣는 사람이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또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기도하다.


그러다 나는 어떤 나침반을 품고 살고 있나 싶었다. 아차. 질문을 던지기 전에 내 답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하겠구나. 그렇지만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분명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라면 걸리는 것 없이 와르르 쏟아낼 수 있었을 텐데 내 마음속 나침반은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한 번에 대답할 수 없었다. 시간을 내어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조금 욕심을 내어 내 시간을 툭 떼어서 나를 알기 위해 써 보기로 했다. 이렇게 할 일이 많은 요즘에 이런 걸 하다니. 진짜 제멋대로구나 싶다가도 이걸 알아내야 혼란이 조금 사그라들고, 앞으로 더 나아갈 힘이 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가치관. 너무 거창한 거라. 그래서 먼저 내가 삶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나열해 봤다. 나와 내 가족들 그리고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 다정한 마음, 발전하는 것 정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배려하는 모습,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나가는 모습, 사치 부리지 않고 재밌게 지내는 모습, 진심으로 축하해 줄 줄 아는 모습, 적절한 선을 잘 긋는 모습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올해 내 삶을 내가 책임지고 이끌어나가겠다고 생각한 이후부터,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할 때 기준이 되었던 것들이 떠올랐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인가? 그리고 이 일은 범죄가 아닌가? 이 두 가지가 제일 먼저였다. 그 선택으로 걸러진 항목들은 내가 가진 것(시간, 돈) 안에서 해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두 번째 거름망에 걸러졌다. 마지막으로 해내는 동안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할 수 있는지 (마음의 여유를 지켜낼 수 있는지)를 판단했었고 이렇게 걸러진 것들로 올 한 해가 채워졌다. 그리고 나는 지쳤던 몇 순간들을 제외하면 2024년 한 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게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낸 시간 덕분에 나는 내 나침반을 찾았다.

그리고... 아파트 숲을 벗어나고 싶어졌다.

가치관은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일수록 바뀔 테지만 일단 내가 우선으로 여기는 가치들이 이 정도였구나. 그러고 나니 내가 지금 주변 친구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어색하다거나 두렵지 않았다. 그냥 나는 내가 가진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던 거다. 목적지가 다른데 서로 비교해서 답이 나올 리가 없지. 이곳엔 정답이 없으니까.


이렇게 생각을 바로잡고 나니 세상이 평온했다. 그리고 남편과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우리가 가진 것들 안에서 최대한 즐겁게 해 나가는 삶. 굳이 콕 짚어보진 않았지만 그걸 바라보며 우리 집은 순항 중이었던 거다.


나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 거, 그래서 더 이상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원래 목표로 하던 것을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했고, 더 나아가서 가정을 운영하는 것에 있어서 꽤 중요한 일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삶은 돈이 전부가 아니고 돈은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남편의 말이 맴돈다. 왠지 2025년의 목표였던 돈걱정 없이 살기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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