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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견디기를 말할때 내가하고싶은이야기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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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행운동 무화과 Oct 30. 2022

대표에게 쓰는, 이제는 부칠 수 있는 편지

아직도 애정이라는 게 남아 있나 보다

최근 잡플래닛에 올라온 우리 회사 후기를 보았어. 아, 이제 우리 회사가 아니긴 하지만, 자꾸 우리라는 말이 습관적으로 나오네. 무시하고 그냥 들어줘. 누가 나한테 물어보더라고. 거기 평점이 왜 그렇게 됐나고 말이야. 들어가서 보니까 다 알던 내용이 그냥 수면 위로 올라온 거더라. 그리고 팀원들도 너무나 명확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있더라. 이렇게 적대하는 태도로, 인터넷 익명의 발언으로 보기 전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는 팀원으로부터 이런 얘기가 듣기도 했지. 이제 한창 갈구던 내가 사라졌으니, 돌아가며 다른 팀원들을 하나하나 뒷담화한다고. 나한테 어떻게 도대체 너가 이렇게 정서적으로 스트레스 받게 하는 걸 혼자 감당했냐고 대단하다는 얘기를 해주던데.

그런 조직이 어떻게 성장하고 오래갈 수 있을까 의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있던 때에 비해 직원 수가 1/3로 줄었다는 얘기를 들었어. 아무래도 내게 이런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들도 이젠 곧 회사에 마음이 떠서 나갈 채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이런 얘기를 더 극적으로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완전 팀 초기부터, 아무것도 없던 우리를 믿고 따라와주던 친구들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엄청 씁쓸하더라고. 더는 내 회사도 아닌데 웃기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

다들 너를 그저 안타깝게 보고 있더라. 그렇다고 네가 했던 만행들이 용서되는 건 아니지만, 왜 저렇게 행동할까 안쓰러울 지경이라는 거지. 이제는 너가 처지를 바꿔 팀원들에게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말이야.

적당히 다들 둘러댄다는 것까지도 이야기를 들었어. 인류애가 남아 있는 친구들이지만,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에는 확고한가 보더라고. 워낙 네가 이전에 보여줬던 행동들에서 신뢰감을 이미 잃을 걸 수도 있고.

나 역시 솔직히 건너 들은 거라서 너가 어느 정도의 진정성을 가지고 그런 조언들을 듣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

그저 그런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나 역시 계속해서 옛일을 곱씹다 보니, 굳이 조언을 주려고 하는 건 아니더라도 어느 부분이 아쉬웠는지 명확해지는 것 같아. 물론 팀 단위에서 부족했던 것도 있고, 단순히 네 스타일이 나와는 정말 안 맞았던 것도 있지.

과연 이 이야기들을 들으면 어떤 자세를 취할지 궁금해지긴 한다. 과연 달라진 너는 이것들을 노트에 정말로 메모하고 바꿔보려고 노력할까? 솔직히 너를 겪어본 사람으로서 너는 회사가 완전히 망하기 전까지는 그냥 너가 맞다고 생각하고, 이전과 같은 태도를 취할 것 같긴 해. 그 정도 프라이드가 있으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겠지.

그럼에도 옛정을 생각해서 짚어주자면 이런 것들이 있을 것 같아.

1.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게 왜 발생했고 누구 때문에 발생했는지에 대한 원인 규명에만 너무 급급해.

물론 그것도 의미가 영 없진 않겠지만, 그것보다도 문제 상황을 같이 고쳐나간다 생각하면 더 심플하고, 상황 개선에는 도움이 될 거야. 그냥 누구 하나 탓하는 것에 너무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한다고 운영진의 책임이 사라지는 게 아니야. 결국 그 일을 컨펌한 사람은 너야. 누굴 탓하는 일은 결국 팀원들에 대한 뒷담화로 이어질 뿐이고, 거기에는 그저 팀원의 무능에 대한 감정적인 표출만 있을 뿐,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떠한 방안도 들어 있지 않지.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어. 여기 스타트업이잖아. 당연히 삽질할 수도 있는 거지. 근데 그게 문제야? 여튼 그걸 발판으로 삼고 나아가면 되는 거잖아. 문제가 조직 문화이면 그렇게 안 되도록 만드는 방안을 고민하면 되는 거고, 마켓핏의 문제면 다시 더 아이템을 디벨롭 시키면 되는 거잖아. 진상 규명, 관계자 족치기에만 신경 쓰다가 정작 진짜 집중해야 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

2. 너와 함께 일하고 있는 그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

그리고 그들 역시 분명 뛰어난 점이 있음에도(그러니까 같이 일하자고 결정내린 거잖아), 단점들을 더 강조하느라 정작 강점을 살릴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는 것. 인재밀도를 운운하지만, 너가 줄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보상이 그렇게 훌륭한 사람들을 데려오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고려해야지. 그리고 너가 그런 사람들을 데려올 만한 깜냥은 되는지도 생각해봐야 하고. 어떠면 너가 생각하는 회사의 모습이 지금 ‘네가 만들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관념적인 모습의 팀일지도 몰라.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거잖아. 지금까지의 우리 회사를 만든 것도 너가 그렇게 '하찮게 여기던' 네 팀원들이랑 같이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고. 그런데도 그 명백한 성과를 무시하면 안되는 거지. 그건 진짜 파렴치한 짓이야. 그 모든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을 무시하겠다는 거잖아.

3. 사람을 좀 믿어.

너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똑똑한 사람들이야. 어떻게 그렇게 믿질 못하고 모든 게 네 손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지? 직접 그 사람들이랑 같이 일해본 것도 아니고, 본인이 그렇다고 직접적인 성과를 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평가만 하는 거야? 그러니까 다들 너와 아무런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아 하고, 그렇게 대면하게 되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라고 느끼는 거야.

같은 방식으로 따져 보면 너도 결국 대표의 평가라고 당당하게 외치던, 투자 유치에 결국 실패했던 걸? 그건 뭐라고 변명을 둘러댈지 모르겠네. 사람들을 좀 믿어줘. 그리고 그 사람들이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좀 기다려줘. 그저 네 꼭두각시처럼 일하기 위해서 스타트업에 들어온 사람들이 아니잖아. 그러고나서 하는 일만 시키면 또 수동적이라고 한다던데,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거야?

4. 제발 스스로의 명확한 기준을 갖고 그걸 팀원들에게 좀 알려줘.

네 기분이나 주변 말 때문에 휙휙 바뀌지 좀 마. 그러니까 사람들도 방향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평가만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 스스로가 전혀 객관적인 잣대를 갖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 말하는 것에 휘둘리기나 하니까 회사에 정치질이 심하다는 얘기가 나오지. 같은 행동을 해도 너는 그저 너가 그 사람에 대해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서 완전 다르게 보잖아. 너는 물론 그게 특정 사람들에 대한 판단이 이미 끝났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친한 사람들만 좋게 보고 자기네들끼리 해먹는다고 생각할 뿐이야. 너가 지금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그 사람 역시, 지금 회사에서는 사람들이 너가 그냥 걔한테 놀아나고 있는 거라고 하던데, 너는 알고 있니?

5. 너가 처음에 왜 창업을 하려고 했는지 잘 생각해봐. 그 마음 가짐을 유지해보도록 노력해봐.

우리 아이템을 쓰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걸 만드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불행한데, 어떻게 그걸 쓰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가 있어? 정말 너랑 살 맞대고 지내는 사람들도 기쁘게 해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데? 제발 너를 믿어준 사람들한테 조금이나마 다정하게 굴고,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자.

우리 둘만 일하다가 처음으로 데려 온 우리의 첫 팀원이 2년 동안 일하다가 회사를 떠나는 날에, 너가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조차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이건 진짜, 아니잖아. 우리가 이뤄놓은 게 아무것도 없고, 실제로 가진 것도 아무것도 없을 때 그저 믿고 와줬던 친구잖아. 하루 중에 잠깐 시간 내서 얼굴 비칠 수는 있는 거잖아. 그런데 그 마지막을 그렇게 홀대한다고? 너는 그냥 별 생각이 없었다고 말하려나? 그냥 네 인성이 그 정도라는 건 보여줄 뿐이야. 앞으로는 좀 더 멀리 바라보고 한 번 더 생각해도록 해.

일련의 사건들이 나로 하여금도 많은 생각을 하고 성숙하게 만들었지만, 너에게도 비슷한 류의 경험으로 남길.

그리고 너로 인해서 더 이상은 슬퍼하거나 아파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남겨.

예전에는 너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못 알아본 건지, 아님 회사가 좀 잘된다 싶으니까 거만해진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 사실은 전자 쪽에 더 기울었던 것 같아. 어느 정도 시그널이 있었는데 내가 못 알아봤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들도 있었어.

그런데 요즘 확실하게 드는 생각은 그 어느 경우이건 아직 너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끌 정도의 그릇은 되지 않는다는 것. 그 정도로 성숙하고 포용력이 있지 않기에,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고통 받고 있다는 것. 그릇이라는 게 깨지면서 더 크게 이어붙일 수 있겠지만, 자기부정과 그에 따른 고통의 시간을 견디면서까지 네 그릇을 깰 정도의 지혜와 용기가 너에게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

아직 나도 너를 응원해줄 정도로 마음이 넓지는 않아서, 그저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을게.

다시 만날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잘 살아.

난 진짜 잘 살고 있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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