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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

by 이은 Feb 23. 2025

k는 그날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밤늦은 시각. 야근을 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골목길에 진입하는 순간 스산한 기운에 몸서리가 쳐졌다. 아무리 그래도 빙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고, 더 음산한 터널을 지나야 하니 빨리 가는 쪽을 택해왔다.

  

온몸의 감각이 곤두세워진 상태로 최대한 빨리 걸었다. 망가진 가로등 덕분에 유난히 어두운 구간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가까이 가서야 알았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성이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다. 가만 보니 자세도 이상하다. k는 기겁했다. 남의 집 대문 앞에다 소변을 보고 있던 거다. 그의 소변기는 발이 달렸는지 정착을 못 하고 여기저기 흩뿌리고 있었다. 그나마 붙잡고 있던 바지마저 놓아버리는 순간 k의 정신줄도 곤두박질쳐졌다. 의도하지 않은 노출증 환자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고 지나가야 한다. 스스로가 투명인간이라 최면을 걸어야 했다. 최대한 반대쪽 벽에 붙어 걸으며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무사히 지나가나 싶었는데 바로 뒤에서 괴성이 들린다.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뛰었다. 있는 힘껏 뛰다가 싸한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남성은 처음 봤던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시체처럼 누워있는 것이 이상했다. 조금의 들썩임도, 벗겨진 바지 사이로 보여야 할 맨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큰 소리가 나는데도 나와보는 사람도 없다.


k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고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사실 이쯤 되면 작정하고 모르는 척하는 것이 틀림없다. 추운 날 바닥에서 쓸쓸히 고독사를 맞이할까 불쌍해 보였다. 아니, 남은 생을 죄책감으로 살아갈 인생이 더 불쌍했다.


그를 돕기로 결정했다.  


언제라도 그가 갑자기 일어나 쫓아올 것을 대비해 경계하며 걸어갔다. 가까이 갈수록 처음 그를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공포가 뒷목을 스쳤다. 고작 1미터를 앞에 두고 걸음을 멈춰야 했다. 그가 사라졌다. 허물을 벗은 듯 옷만 남은 채로. 심장만 덜렁 남겨두고 떠난 건지 옷 속에서 주먹만 한 것이 펄떡거리고 있었다. 사고회로는 더 이상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심장 소리가 귓가를 둥둥 울렸다. 그러다 잠시 멈추더니 속삭였다. 지금이야.


다시 뒤돌아 뛰었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뛰었다. 지금껏 그렇게 뛰어본 기억이 없다. 집에 도착해 이중잠금장치를 걸어두고, 방문까지 잠그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방안에 웅크리고 누워 숨을 헐떡인다. 목울대를 누군가 콱 조이는 것처럼 막혀왔다.


그날 꿈에서 금붕어가 되었다. 먼바다로부터 온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버렸다. 그곳에는 감당하지 못할 시간들이 있다. 육신은 톳밥이 되어 뜯어 먹힌 채로 조각조각 떠돌아다닌다. 육신을 찾아다니는 넋의 울음소리가 파도와 함께 밀려온다. 좁은 어항의 삶이 익숙했던 금붕어는 단 한 번의 파도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말았다.  


k는 캄캄한 해변 모래에 파묻혀 간간히 덮쳐오는 바닷물에 몇 번이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쩌면 그 남자도 금붕어가 되었는 지도 모른다. 무거운 돌덩이 같은 숨을 바닷물과 함께 몇 차례 넘겼으리라. 그 와중에도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온몸으로 유언을 남겼나 보다.


살려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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