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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Aug 05. 2022

#4. 영안실 비상 계단

뒤틀린 시간 속 죽음 앞에서 천박한 내가 앉아있다

오래된 기억은 공간을 건너뛰고 시간은 뒤틀려있다.

순차적 기억 속의 다음 장면은 영안실 한편의 비상계단이다.




일반적인 비상계단과 다른 모습이다. 규격에 맞지 않는 듯한 폭에 계단의 높낮이가 일반 건물과 달리 들쭉 날쭉하다. 계단에서 벽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검은 점들이 보인다. 좁고 축축하고 검은 냄새가 소독약 냄새와 섞여 빈속을 울렁이게 한다. 숨을 쉬면 그 검은 점들이 콧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해 속이 메스꺼웠다. 몇 계단 오르는 다리의 균형은 일순간 무너졌다. 손디딜틈 없이 넘어지듯 주저앉았다. 눈물이 났다. 넘어져 쓸린 무릎 따위가 아파서가 아니라 그냥 언제라도 툭 건드리며 쏟아질 넘친 물이었다.

계단 위쪽을 올려다보며 생각한다.


'아이씨. 계단.. 계단이 왜 이 모양이야? 소방법에 안 걸리나?'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엄마의 죽음 앞에서 슬퍼만 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생각이 틈타는 나의 뇌가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생각하는 중에 입술 새로 천. 박. 하. 다. 는 말을 뇌까린다. 핸드폰 주소록을 뒤적인다. 급하게 전화를 건다.

다시 생각하며 뇌까린다.


"근데 지금이 몇 시지?"


이제 막 잠에서 깬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질문에 컥. 목이 멘다. 한동안 말이 없자, 상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를 부른다. 남은 잠이 쫓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늠해보려는 나직하고 또렷한 목소리다.


"그게요... 엄마 가요,,,"

"무슨 일이 있으신 거죠? 편집장님?"

"엄... 마...."

"어머니가 어디 아프세요?"

"아니.... 새벽에 전화드려 너무 죄송한데요, 작가님 오늘 혹시 아침에 스케줄 있으세요?"

"지방 촬영이 한 건 있는데, 아니, 대체, 무슨...?"


왜 그렇게 말했을까?

엄마의 영정 사진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작년 말에 80대 할머니 할아버지 영정 사진을 자연스럽게 잘 찍어드리고 싶다는 엄마의 부탁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 오래 알고 지내던 사진작가에게 부탁드렸던 그 사진.

할머니도 아니고, 할아버지도 아닌, 엄마의 영정 사진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니 당신이 바쁘더라도, 뒤풀이 사진에서 엄마 얼굴만 트리밍 해서 영정사진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어야 했다.


'영정 사진이 뭐라고.... 너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엄마가 죽었다고.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슬퍼만 하기도 모자랄 판에 뭐 하고 있냐고...'


왜 그랬을까?

엄마의 죽음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내가 엄마의 죽음을 서둘러 준비하고 있던 나는 진짜 나였을까?


난 아직도 그날 계단참에 쭈그려 앉은 내 모습과 내 말들과 내 생각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천박했다고 생각한다. 더할 나위 없이 생각이 얕고 모습은 상스러웠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

한편 생각한다.

죽음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는 서른일곱의 그 여자가 안쓰럽기도 하다. 좁은 계단에 쭈그려 앉아 벽에 핀 검은 점들이 무릎에 닿을까 한껏 웅크리고 앉아있던 그 여자가 튀틀린 시간 안에 아직도 갇혀있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난 여전히 지독히 슬픕니다.

'엄마를 잊기 위해, 엄마를 잃지 않기 위해' 엄마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게워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와 당신에게 죽음이 불편한 키워드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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