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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준 Feb 18. 2018

마지막 파티

독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던 승혁이 모습

"형 목요일날 저녁에 시간 괜찮아?"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승혁이에게 카톡이 왔다.

얼마 전에 같이 저녁 먹었는데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해보니 승혁이의 귀국일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

승혁이는 내가 제주도 막 정착해서 일을 하고 있을 때 군대를 전역하고 함부르크 대학으로 1년간 교환학생을

나왔었고, 어느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보나 싶어서 꼭 가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수요일에 잠들기 전에 문득 생각해보니 파티라는 개념이 낯설게 다가왔다.

물론 한국에서도 회식도 하고 카일루아 밋업도 같이 준비를 해 봤다만, 괜히 파티라고 하면

할리우드 영화에나 나오는 것처럼 손에 술잔을 들고 춤도 추고,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하는 모습이

자꾸 상상이 됐다.

아는 사람을 알겠지만 나는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어서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를 잘 하는 편이 아닌데,

모르는 한국사람들 투성이에, 모르는 독일 사람도 온다고 하니 살짝 겁이 나기 시작했다.


승혁이네 파티는 목요일 7시에 계획되어있었다. 그런데 통상 회사가 4시 반 즈음 끝나다 보니 시간이

애매했다. S-Bahn을 타고 20분이나 걸리는 집에 가서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다시 나올까도 생각했지만

영 귀찮아서 승혁이에게 조금 일찍 가겠다고 연락을 했다.

마침 친구가 와서 저녁식사로 아귀찜을 만들어준다고 하니 일찍 와서 같이 저녁이나 먹잔다.

아귀찜...?  

Allermöhe 역에 내려 찾아간 승혁이네 집에서 어딘가 익숙한 냄새가 났다.

신발을 벗고 주방 코너를 돌고 있는데 왠 독일 남자애가 웍에다 아귀찜을 만들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뭐 그럴 수도 있다지만, 당연히 한국사람이 아귀찜을 만들어 준다고 알고 있던 나에게는

생각보다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헤닝은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고, 작년에 한국에서 일을 잠깐 했었다고 했다.

독일에서 구하기 힘든 콩나물도 구해서 넣고, 미나리를 구하지 못해 비슷한 매콤한 맛을 내기 위해

무순까지 넣어준 디테일에 다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밥을 먹고 맥주를 한잔씩 하고 있는데 하나둘씩 사람들이 찾아오고 제법 복작복작한 파티가 되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독일 친구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제법 한국에 관심도 많고

이것저것 먼저 질문도 많이 해줘서 말을 시작하기가 참 쉬웠던 것 같다.

오버워치를 좋아하던 미로와 막스는 한국 PC방  이야기를 나누다가 맥크리 궁은 너프를 먹어야 한다며 

논쟁을 시작했고, 라모나는 이케아에서 알바를 마치고 늦은 시간에도 승혁이네 집을 찾아주었다.

니나와 나는 다른 애들은 다 어린데 우리만 93년생이라 제일 늙은 것 같다며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사실 승혁이 귀국 파티라고 했지만 딱히 이별을 슬퍼하는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어눌한 독일어로 새로 온 친구들과 얘기를 하고 있던 와중에 주방에서 

혼자 디저트를 만드는 승혁이가 보였다.

도와줄 일이 있나 싶어 잠깐 잔을 내려두고 주방으로 갔는데 승혁이는 

"와 이제 진짜 끝인가 봐"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꼴에 위로랍시고 "어차피 나중에 다 한국에 오니까 또 만나면 되지!"라고 말은 했지만

나는 승혁이처럼 친구들과 잘 이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아헨은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다른 교환학생이 친구들과의 이별에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벌써부터 나는 어떻게 정리하고 와야 좋을까를 생각하고 있었으니 

다시 생각해보니 참 바보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쉽게도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해 생각보다 일찍 파티를 떠나야 했다.

승혁이 방에서 아까 벗어둔 옷을 주섬주섬 입고 있는데, 

방 한편에 이사 준비를 위해 사둔 이케아 상자들이 보였다.

박스들을 보니 나까지 괜스레 서러워졌다.

보내기 전에 밥이나 한번 더 먹자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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