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떤 다른 사람을 만나 가까워지고 사랑하게 되고 헤어지는 일은 인류가 수없이 반복해 온 것일 텐데도 그 얘기는 왜 긴긴 겨울밤 내내 까먹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차가운 귤처럼 쌔그러운 즐거움인지 모르겠다. 사랑은 에라 모르겠다. 이렇게 됐으니 여차하면 빠져 죽고 말지 뭐. 하는 식으로 미끄러지는 것이지 그 사람의 여러 가지 면모를 심사숙고해 봤을 때 객관적으로 이만하면 사랑할만한 것 같으니 특정 시점부터 사랑하기로 결정하는 식으로 빠질 수는 없는 것이니 흥미진진할 수밖에.
이상형은 사상이 섹시한 사람입니다.라고 옛날 어디선가 말해본 적이 있다. 그렇게 말한 건 기억이 나는데 대체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마 당시에는 레미제라블의 혁명지도자 앙졸라가 멋지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걸로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여전히 그 표현은 마음에 든다. 신념에 목숨 바치다 총 맞아 죽기까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사상이 섹시한 사람이 좋다. 정신의 근육을 잘 단련해서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생각을 가진 사람. 쉽게 바깥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원하는 곳으로 꼿꼿하게 걸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수용할 줄 아는 평정심을 가진 사람. 나도 나의 이상형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