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미 리추얼 외면일기] 2023.07.10.
2023.07.10. 월요일. 흐림
방랑
십여 년 전의 나는 먹고사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기 어려운 세상 모든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면서도 앞으로 뭐 먹고살아야 할지 걱정을 하기 시작하던 철학과 2학년이었다. 그런 걱정을 할 줄 알고 해야 하면서 그러게 왜 철학과를 갔는가? 열여덟 살에 가족의 죽음을 겪었고, 앞으로는 웬만한 것에는 초연해져서 웬만한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로 살고 싶었고 철학을 공부하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참고로 당연히 헛된 희망이었다. 평생을 수행해도 도달할까 말까 하는 경지인데 고작 척척학사가 된다고 이게 될 리가 없다.)
그쯤에 몇 개월간 인도에 가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본 것도 아니었고 처음으로 외국에 가본 것도 아니었지만, 국제선을 타고 혼자서 그렇게 장거리 비행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열 시간의 비행 끝에 비행기가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접근할 때 창 밖으로 보이던 금빛 거미줄 같은 도시의 빛,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얼굴에 훅 끼치던 열대야의 덥고 낯선 공기. 인도는 어쩐지 인생의 여러 가지 사건과 문제로 복잡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유명한 목적지 중 하나인데, 아마도 몸의 고생 때문에 잡념을 떨칠 수 있고, 대체로 여행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아 어쩌다 보면 방랑자가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차는 도무지 제시간에 도착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꼬박 스무 시간을 커다란 땅덩어리를 가로질러 달리는 기차 안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대충 구겨져 자기도 했다. 평원에서 날아온 고운 모래가 헐거운 창틈으로 들어와 버석거렸다. 서쪽 사막에서는 담요 한 장 깔고 그 위에 침낭을 놓고는 별 보면서 잠을 잤고, 북쪽 고산지대에서는 추워서 페트병에 뜨거운 온천수를 받아 안고 잤다. 24시간 장례 행렬이 이어지는 미로 같은 골목길을 차지한 개와 소와 원숭이를 피해서 돌아다녔고, 시체를 화장하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그저 앉아 있기도 했다.
그 여행이 인생의 대단한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 후로도 나는 여전히 방황했고, 고단하게 애썼고, 결코 초연해지지 못했다. 그러나 기차가 세 시간만 늦게 도착하면 이만하면 제 때 도착했다고 기특해하던 방랑자의 시절을 떠올리면 가끔 모든 것이 웃기고 가벼워질 때가 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어디에 있는 종착역에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방랑자 신세인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