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하면 아웃백이라는 단어가 함께 연상이 된 적이 있다.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 투움바 파스타. 그리고 이어지는 이미지, 울루루. ULURU는 라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평평한 땅에 빨갛게 솟아올라있는 큰 돌덩어리의 모습. 그리고 이 땅에 태초부터 살고 지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지금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지만, 여기서 호주에서 태어나 호주인이라고 불리는 호주 백인들은 사실 이 땅에 이주민이고, 이주하기까지의 과정은 잔혹한 학살의 역사를 갖고 있다.
건조한 덩굴들, 간혹 보이는 작은 크기의 나무들, 생명체라고는 가끔 가다 보이는 왈라비, 도마뱀, 파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 그리고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아름다운 밤하늘, 땅, 그리고 나뿐인 기분이다. 서호주 퍼스에서부터 시작하여 울루루 근처까지 가던 여정이었다. 당시 우리에게는 울루루 근처 Curtin Springs라는 동네에서 일을 시작하기로 해, 긴 로드트립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식으로 따지면 휴게소인데, 숙소가 같이 있는 느낌이랄까. 여기서는 로드하우스 Roadhouse라고 불린다. 이후 우리는 여기서 피와 같은 진실을 알게 되어 힘들었지만, 처음으로 거대한 자연 앞에 서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눌라버 NULLARBOR
서호주에서 울루루까지 가는 길로 우리가 택한 길은 에어 하이웨이 eyre hwy였다. 이 길은 평평하고 밑도 끝도 없는 직선의 길로 유명하다. 저 멀리서 차가 보이긴 보이는데 마주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린다. 아무것도 없는 오지기 때문에 사실 어디서든 차를 주차하고 자도 상관은 없지만, 공짜로 쉬고 자고 갈 수 있는 공간을 중간중간 찾아볼 수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사람들도 보고 싶고, 살아있는 생물이 그리워 쉼터에서 잠을 청한 것도 있다.
눌라버 NULLARBOR 지역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평소에 길 근처 쉼터에서 잠을 청하다가, 호기심으로 좀 더 깊숙한 곳에 있던 숙소를 찾았다. 이주민들이 와서 숙소로 쓰였던 오래된 집으로, 여기서는 이런 집들을 homestead라고 한다. 이미 어두워진 저녁에 도착했더니, 외진 쉼터 치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큰 모닥불이 보였다. 모닥불 안에는 씨꺼멓게 구워진 양의 꼬리가 있었고, 그들이 직접 만든 난과 같은 빵과 꼬리를 함께 권한다. 알고 봤더니 이들은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가족들인 것. 이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집의 추억을 기리기 위한 밤을 보낸다고 한다. 우리는 우연히 그 밤을 함께 하며, 그들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세히는 물어보지 못했지만, 이 가족은 호주의 원주민과 좋은 관계였던 것 같고, 원주민의 언어를 쓸 때가 있었다. 그들의 외모에서 원주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지역에 이곳만큼은 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었고, 그들은 한치의 낭비도 없이 물을 사용했다. 물을 끓여서 그릇을 닦는다. 그리고 그 쓰고 남은 물은 나무로 돌아간다. 이곳에서 물은 너무 소중하다. 우리 또한 건조한 지역을 여행할 당시, 물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설거지는 물 분무기로, 낭비 없는 방식을 고안했다.
그리고 등장한 본인을 여우 사냥꾼이라고 소개한 롭 ROB. 영국 이주민들이 여우 사냥을 위해 여우를 데리고 왔더니, 여우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여우 사냥꾼 전문가들이 있었고, 롭은 이 직업으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것이 토끼다. 가끔 눌라버에 와서 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고, 수량이 너무 많은 토끼들을 사냥하는 일을 하러 온다 했다. 그는 군인용 탱크와 같은 느낌의 트럭에서 먹고 지내며, 밤에 야생동물들을 지켜보며 영상을 찍기도 한다고 했다. 토끼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더니 토끼를 잔뜩 차 앞에 달고 왔다. 이곳에 어떤 편견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이다. 따스한 모닥불 앞에서 둘러앉아 그들의 전설들을 이야기했다.
호주 원주민들은 이 땅을 돌보고, 이 땅에서 먹고 살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야생 식물로부터 약을 만들고, 독이 되는 것을 안다. 하늘을 읽을 줄 알고, 날씨를 읽을 줄 안다. 부락에는 트랙커라고 야생동물의 흔적을 읽을 줄 아는 사냥꾼들이 있다. 여성은 여성들끼리, 남성은 남성들끼리, 그들만의 풍습과 의식이 있다. 한국의 77배 정도 되는 호주의 땅에 여기저기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적게는 250개가량의 각자 언어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어린 세대는 단절된 세대라고 불린다. 흔히 우리들의 발전시켜야 된다는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교화의 역사는 참혹했고, 그들의 문화에 없는 술과 마약들로 문화가 단절되고 있다. 도시에 있는 호주원주민들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나도 몰랐다.
오지 로드하우스
커튼 스프링스 로드하우스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 로드하우스는 이주민 가족이 만든 터전으로, 가족 사업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 가족이 아닌 매니저와는 첫인상부터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일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내가 하는 일은 리셉션일도 하면서, 가게 물건들도 팔고, 저녁에는 주방에서 일도 하고, 때로는 하우스키핑도 하는 다잡러 ALL ROUNDER였다.
이미 내가 들었던 전설의 이야기는 온 데 간데없고, 온통 호주의 백인들 뿐이 없던 이곳에서 어느 날 주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간혹 원주민들 사이에서 기름을 흡입해 마약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 원주민들에게는 특별 기름을 그리고 내가 직접 주유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는 매니저의 단어들이 기분 좋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안전을 위한 일이니 알겠다고 했다.
저녁즘, 한 원주민 가족이 찾아와 주유를 하고 싶다 했다. 들었던 대로 그들에게 직접 주유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어디선가 큰 소리로 누군가 욕을 한다. 부리나케 들어간 가게 안에는 매니저가 심한 쌍욕을 하며, 그 원주민 가족에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상황은 원주민 가족의 개가 가게 문 근처에 똥을 쌌는데, 이에 대해 화가 난 것이었다. 이해가 안 되었고, 눈물이 나고, 분노가 났다. 처음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잔혹하게 구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날 방에 들어와 혼자 펑펑 울었다. 큰 소리로 따지지도 싸우지도 못한 나의 모습을 한탄하며 이 직업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더욱 나에게 호기심과 이 땅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 진실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의 무능력함을 비난하기에 앞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어볼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당시에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지만, 마지막 남은 2023년을 호주 중심에 위치한 원주민 마을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집시의 삶은 없다. 더 이상 우리에게는 움직이는 성은 없다. 배낭뿐이다.
4년 만에 돌아간 나의 집. 따스한 가족과 친구들의 환대에 용기를 얻었다. 한비야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자란 세대이다. 그녀의 글들에서 마치 사실이 아닐 것과도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진짜 길을 떠나보니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소설보다 더 진짜 소설 같다.
다시 한번,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빈 그릇이 되어 붉은 땅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