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킹 Busking
나의 집시 생활은 점점 더 정점을 찍었다. 이는 두 차례의 레인보우 이후, 어디로 갈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지내야 할지 결정짓지 못했을 때였다. 당시에 우리는 여름에 가족을 방문하기 전까지 대략 3달 정도가 남은 때였고, 다시 일을 해야 할지 아무 계획이 안 잡혔지만, 그렇다고 길을 잃은 느낌은 아니었다. 3월에 타즈매니아 레인보우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 있고 나서, 말도 안 되는 계획으로 급 타즈매니아행을 결정했다. 갑작스럽게 방향을 정할 때가 있다.
레인보우에서 만난 미국에서 온 톰은 버스킹으로 여행자금을 꽤나 많이 충당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하루는 ‘버스킹 전문가’로서 버스킹 워크숍을 한 적이 있다. 대략적으로 어떤 장소에서 버스킹을 하면 좋은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것을 사람들에게 제공할 것인지 등의 자잘한 팁을 얻었다. 그 강연을 들으면서 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나 또한 3년 동안 여행자 눈칫밥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인 음악을 배울 수 있었다. 때로는 우리의 언어는 개인적인 단어의 정의에 따라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목소리 높여, 내가 원하는 바를 열심히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바가 전해지지 않는 때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연주하는 음악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언어를 구사하지 않아도 더 간편하게, 심플하지만 마음이 통할 때가 있다.
호주에서는 버스커를 제법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히피 분위기의 마을, 바이런 베이 Byron bay에는 쟁쟁한 실력의 음악인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를 가만히 보지만 않고, 그에 따른 호응도 자유롭고, 보답도 꽤나 두둑한 편이다. 여기서 거리의 음악은 공연가와 관객의 구조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드럼 서클 Drum circle이라는 것이 열리기도 한다. 주로는 드럼, 때로는 다른 악기들, 내가 가지고 온 드럼은 아니지만 그 자리가 비워진다면 드럼, 젬베를 쳐볼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난생처음 두들겨보는 젬베와 사람들이 만들어 쌓아 올리는 그 에너지는 어마어마하다. 관객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아니 가만히 있기 사실 힘들다. 리듬에서 울리는 전율이 몸을 움직이게 만들고, 드럼이 주가 되는 그 리듬과 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 내가 생각하는 호주는 예술가들에게 자유로운 나라이다.
나랑 장은 바이런베이의 예술가들만큼 짜임새 있고, 숙련되어 있는 버스커는 아니지만 버스킹 워크숍의 영향이었을까. 우리는 상상만 하지 말고,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사실 이번 버스킹이 처음은 아니었다. 북쪽 퀸즐랜드 주에 있는 케언즈 CAIRNS에서 하루 버스킹을 해본 적이 있다. 그때는 뭐랄까 단순 호기심이었을까, 준비되지 않은 경험이어서 그런지 재미는 있었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이 세상에 좋은 기운을 나누고 싶었다. 나는 장처럼 기타를 잘 치지는 않지만, 나의 솔메이트 멜로디카가 있었고, 내 목소리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버스킹 여정을 시작하였다. 호주 동부 해안가 울굴가 Woolgoolga에서 타즈매니아 섬으로 가는 페리를 타는 곳, 질롱 GEELONG까지 대략 1500km를. 우리 둘은 어떤 요란한 스피커 장치 없이 버스킹을 하며 여행자금을 보충했다. 여행자금의 대부분은 비싼 기름값이다.
버스킹을 하기로 한 첫날, 여태껏 다른 친구들과 즉흥적으로 연주하면서 얻었던 멜로디, 주로 장과 내가 단둘이 시간을 보냈을 때 노래했던 것들을 머릿속으로 생각은 해두었다. 그리고 너무 크지 않은 마트, 적당한 규모에다가 로컬들과 마주치며 인사할 때 좋은 느낌을 받은 곳. 이 정도면 한 번 자리를 잡고 앉아 버스킹을 해봐도 될 듯싶었다. 모든 조건들이 만족스러웠고, 계획한 것보다 좋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길거리에 앉아서 나의 무언가를 낯선 사람들에게 공유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이 환경이 낯설기만 하고, 목소리가 잘 안 나오고, 남들이 신경 쓰이기만 할 무렵, 누군가 5달러를 기타 케이스에 던져주며 고맙다고 미소를 지었다.
Thank you.
고맙다고? 내가 무엇을 했다고 고맙다는 소리까지 듣다니, 황송할 뿐이다. 초심자의 운이랄까. 가끔은 멈춰서 우리의 노래를 잠시 듣다가 가던 길을 가고, 마트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이 나와 인사까지 하고, 마트 앞에서 버스킹을 하다가 내쫓기는 경우도 있다 했는데 끊임없는 환영에 마음은 벅차올랐다.
장의 화려한 기타 실력은 어딜 가나 주목을 받았지만, 소심한 나의 작은 목소리가 어느덧 크게 울려 퍼지는 순간이 오니 이런 날이 오나 싶었다. 누군가 우리의 소리를 들어주고, 좋아한다. 이 작은 사실만으로 낯선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이 마을 저 마을과 우리는 관계를 맺었다. 우리에게 소리는 여정과 이야기와도 같았다.
때로는 돈이 아닌 것들이 기타 케이스에 담길 때도 있다. 현금이 없어서 본인이 주고 싶은 것을 두고 간다. 그리고 우리는 타즈매니아까지 가는 여정, 1500km어치의 기름값과 점심(주로 감자튀김들)을 모두 충당할 수 있었다.
호주에서 내 몸으로 돈을 버는 경험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농장, 공장, 주방 등의 일들 말이다. 그런데 거리에서 직접 서서 하는 공연은 마치 알몸을 세상에 내놓는 한없이 나를 드러내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음악으로 그들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기회가 주어지다니. 감사한 마음으로 내 몸짓, 손짓, 말, 소리를 낸다. 세상에 나의 작은 날갯짓으로 마음이 움직이니까 말이다.
어떤 이에게는 쓰레기, 나에게는 노다지
Dump diving
친구들로부터 가끔 전해 들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전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때로는 하도 전설 같아서 그런지, 몇 번 들었을 당시까지 스스로 본 적도 없고, 직접 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덤프 다이빙 Dump Diving에 대한 전설이다.
두 달 정도 같이 여행하며 레인보우 게더링까지 같이 간 친구들 그룹이 있다. 우리는 같이 여행하면서 음식을 대부분 셰어 했는데, 누군가 음식을 만들려고 하면 다 같이 도와주고, 각자 가지고 있는 것들 조금씩을 내놓으면 크고 맛있는 음식이 탄생된다. 어느 날, 우리는 자그마한 동네에 와있는데, 이 마을 마트에 가서 음식을 가지고 오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다. 음식을 사지 않고, 가지고 오겠다는 것이 말이다. 처음에는 이 친구가 마트에서 음식을 훔치려나 싶었다. 가끔 백패커 친구들 중에 돈을 아끼려고 작은 것들을 몰래 가방에 훔쳐오는 사람들을 봤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친구가 말한 것은 덤프 다이빙이었다.
덤프 다이빙이란 버려진 음식들, 물건들이 있는 쓰레기통을 열어, 그 쓰레기통은 주로 굉장히 크기 때문에 나의 몸을 다이빙하듯이 들어가서 제품들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호주의 마트들은 주로 쓰레기통이 마트 밖 주차장 근처에 있기에 근접성이 높다. 그 버려지는 음식들은 마트에서 약간의 유통기한이 넘었거나, 새 제품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 버려야 하거나 등의 이유로 버려지는, 넘쳐나는 물질적 사회의 잔상이다.
이 중에는 정말 새것과도 같은 품질의 음식들이 나온다. 당연히 위생상 주로 그는 포장에 담겨 있는 것들, 그리고 육류나 신선제품들은 가져오지 않는다. 그가 여태 나눠왔던 음식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해서 구해진 것이었다. 그게 전설에 대한 나의 첫 번째 경험이다.
타즈매니아 레인보우에서 나는 열심히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장도 그렇고 둘 다 어딜 가나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커뮤니티에서 주로 우리가 있는 곳은 항상 주방이었다.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낯선 이가 주는 참여와 내가 생각했던 아이디어와 다른 이의 아이디어가 합쳐져서 나오는 창조물이랄까. 추운 아침에, 처음 하는 것은 불을 피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저것 음식을 다지고, 재료 손질하고, 요리를 시작한다.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자고 있던 사람들도 일어나 자연스레 모여든다. 우리는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기 위해, 서로를 북돋아 준다. 그러다 들린 두 번째 전설의 이야기. 본인의 경험담, 특히나 큰 도시에 있는 대기업 마트에서 버려지는 어마어마한 음식들. 마치 보물을 두고 이야기하는 해적단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더 자세한 팁을 알려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이야기만 듣기만 하고 한 번도 내 몸소 실천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띄지 않게, 깔끔하게 본인의 행적을 남기지 말 것.
그리고 그가 절대 중요시하게 말한 것.
처음 쓰레기통을 열게 되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에 놀랄 것이고, 그 많은 양과 더불어 놀랍도록 새것과 같은 품질에 놀랄 거라고. 그리고 많다고 다 가져가지 말고, 내가 먹을 수 있는 만큼, 또는 내가 나눌 수 있는 만큼만 가지고 오라고.
크래들 마운틴을 등산 후, 우리는 큰 마음가짐으로 한 번 쓰레기통을 열어보기로 했다. 동네 큰 마트였는데, 초심자의 운인지. 쓰레기통 안에는 엄청난 양의 빵과 케이크, 과자류가 있었다. 이들은 놀랍게도 완벽한 포장이 되어있었고, 나는 사실 빵을 많이 먹지 않았지만 우리는 되는대로 가지고 왔다. 순간, 장은 놀라움과 신나는 기분으로 엄청난 양의 빵을 가져왔고, 나는 우리가 먹을 수도 없는 양을 가져왔다고 핀잔을 주었다. 모든 제품들이 유통기한도 안 지난 것들이었다. 그저 새로 나온 제품들과 대체되어야 하기 때문에 버려진 것들이다. 뒤에 차에 가득 찰 양의 빵을 가져와, 우리는 어찌하나 싶었다. 장은 주유소에서 주유하다 친해진 낯선 이에게 혹시 케이크 좋아하냐고 묻더니, 그녀는 흔쾌히 좋다 했고, 장은 어떻게 이 음식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설명했다. 그녀는 맛있는 공짜 케이크를 얻어서, 우리는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 무턱대고 많은 양에 장에게 핀잔을 뒀을 때 그가 나에게 한 말은 사실이었다. 나누면 되니까, 걱정 말라고.
하루는 빵 베이커리를 지나가는데, 이 정도 큰 규모의 베이커리라면 버려진 것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 확인해 보려고 간 적이 있다. 이는 늦은 저녁이었고, 뒷 건물 주차장에 차가 주차되어 있었는데 누군가 차 안에 있었나 보다. 확인을 하려고 다가가고 있는 순간, 들리는 목소리와 큰 웃음소리들.
"That's really bad. You are stealing."
아주 나쁜 짓이야 그건. 너는 지금 훔치고 있는 거라며 함께 들려오는 웃음소리로 비추어봤을 때 장난이 담겨 있었다. 어차피 쓰레기가 되지 않을 거냐고 그에게 되물었다.
"Why? These are going to be a waste. "
경찰을 불렀다는 말과 함께 진실 혹은 거짓을 떠나 자리를 떠났다. 덤프다이빙 고수 친구가 말해줬던 이야기 중에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할 것이라고. 그가 말한 적이 있다. 아마, 이런 경험이지 싶다. 나보고 난생처음으로 경찰을 부르겠다는 사람과 대화를 해봤다. 그는 그 베이커리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저 나처럼 지나가는 사람이었을 텐데 그는 나의 '수상쩍은' 행동에 대해 몹시 불쾌해했고, 그런 사람에게 나는 솔직하게 질문을 했다. 무엇이 맞고 틀리냐 말이다.
사실, 매번 열 때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들을 갖는 지니의 요술 주전자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당시 이 전설의 진실을 알게 된 것. 진실이라는 게 사실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이런 진실을 우리의 삶에 이롭게 바꾼 행위랄까.
이 세상에 수많은 제품들과, 새로운 음식들은 넘치고 넘쳐나는데, 우리는 이 많은 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은 이 물건과 음식에 혜택을 못 보고 있다. 이 수많은 음식들을 어디로 가는가.
쓰레기가 보물이 되는 순간이다. 나누면 보물이 된다는 것이 이 전설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