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을 위하여
나는 누군가 챙기기를 좋아한다. 이것이 중요한 위치, 소중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다 보니 때로는 정말 나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때를 구별하게 되었다. 마치 내가 누군가를 챙기고 있음을 타인이 알아봐 주기를 바라며 행동하다가도, 상대방이 몰라도 나로서는 상관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왜 엄마들이 자꾸 무언가를 챙겨주려 하는지, 그 오지랖 아닌 오지랖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남을 위한 걱정이, 사실 내가 만들고 싶은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착하고 선한 마음에서, 남을 걱정했지만 결국 이는 나의 문제가 아닌데, 나에게 변화를 주고 싶어 괜히 나의 문제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게 정말, 내가 이 사람을 생각해서 그런 건지, 사실 상대방은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그 사람의 약한 감정적인 순간에 괜히 문제 삼아 해결해주려고 하는 이기적인 나의 해결 심보를 마주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 정도면 내가 멋진 해결사, 좋은 사람, 좋은 친구라고 자부할 수 있게 해 준 나의 행동들이 가식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이는 살육과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먹는 것에 있어서,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 습관은 특히 내가 채식지향의 식습관을 가지고 나서부터다. 채식위주의 식단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이는 3년 전이다. 채식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살았을 때부터 어떤 소스든, 과자, 라면 등 제품 뒤에 붙어 있는 영양성분을 확인해, 단순히 육류가 들어있는지부터 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채식지향이라고 하는 것은 때로는 오랜만에 방문한 가족의 집, 식사에 초대될 경우, 또는 여행을 다니면서 때로는 어떤 선택지가 별로 없을 때도 있었다.
지금 시점에 내가 드는 생각은 내가 살아가면서 매 순간 변하는 나의 모습에 나를 어떠한 이름으로 나눌 수 있을까 싶기도 해서이다. 어제 쓴 나의 글을 보면 또 다른 나 같은데 말이다. 나는 채식위주의 식단을 지향하고, 매 순간 음식을 먹을 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한다.
여행자의 음식
채식 지향인 우리 둘은 여행을 하면서 특히 많은 고민에 빠졌다. 둘 다 비슷한 시점에 육류를 먹지 않기 시작했다. 3년 정도 전으로, 비건 지향적인 커뮤니티 친구들과의 생활 속에서 시작됐다.
당시에 있던 친구들 중에 한 명은 어머니가 철저한 비건이어서 집에서는 오로지 채식을 먹고 자랐고, 호주에 오기 전까지 단 한 번도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나는 고기를 먹었기에 그 친구를 데리고 버거 집을 간 적도 있다. 그 친구는 인생 살면서 한 번도 안 먹어봤기 때문에, 먹어보는 경험을 하고 싶다 했다.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외에도 단 한 번도 고기를 안 먹어본 친구가 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 시골 할머니댁에서 자랐고, 그녀의 할머니는 여러 동물을 키우고 있었다. 농장의 동물과 함께 자란 그녀는 친구와 같은 이들을 먹는다는 것을 거부했고, 태어나 단 한 번도 아직까지 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초기 연인이었을 당시에는 고기를 먹으며, 각자의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그녀가 선택한 삶, 그 이유가 궁금해서 알아가다가 그 또한 철저한 비건이다. 그리고 이외에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해서도 말이다.
몰랐던 것에서 오는 호기심도 있지만, 우선 내가 보기에 이 친구들 모두가 굉장히 멋진 사람들이었다. 채식을 하면 건강하지 않을 거라는 말들은 무색할 정도로 이들은 모두 신체가 건강하고, 남들을 공감하고, 사랑으로 대하는 태도를 나는 배우고 싶었다.
그 호기심으로 시작된 것이 호주 서부 퍼스 PERTH에서 시작해 중심부 울루루를 지나 저 위쪽, 열대지방의 기후 다윈 DARWIN까지. 뜨거운 여정 속에서 냉장고 없는 밴에서 먹고 지낸 우리는 제일 신선하게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채소와 곡식류로 요리하거나 과일을 섭취하고, 그날 사서 그날 다 먹기.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들과 지내거나, 주로 밴에서 요리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최대한 미니멀하고 단순한 채소 기반의 음식을 먹었다.
많은 시간을 밴에서 숙식하며 이동했지만, 때로는 잠시 한 곳에 머물러 공짜 숙식제공 대가로 일을 도와주며 호주 가족들의 집에서 머물기도 했다. 하루는 뜨겁고 습한 호주의 다윈 근처에 정글과 같은 동네에서 Butterfly farm을 운영하는 가족을 만났다.
이 집은 자급자족의 시스템으로 동물들과 채소, 과일 등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동물에게 먹이는 음식들의 대부분은 약간의 유통기한이 지나서, 또는 포장 상태가 안 좋아 보이거나 등의 이유로 더 이상 판매하기 어려워져, 쓰레기로 땅에 파묻히기 직전의 제품들로, 이는 낭비 없는 재활용을 도운다. 그들은 육류를 섭취하고 싶을 때, 본인이 공들여 키워 온 동물에서 섭취하였고, 직접 키우고 살육하는 시스템을 지녔다.
내가 그곳에서 하던 주요 업무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먹이고, 그들의 집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토끼, 거위, 닭, 오리, 칠면조, 돼지, 소 등의 동물친구들과 함께 먹고 지냈다. 과거에 한국에 있었을 당시, 후라이드 치킨 마니아였으며, 아버지가 때로는 너는 그러다 치킨집 사장이랑 함께 살 거라는 이야기까지 하셨다. 그런데 그들의 각자 다른 성격과 행동들, 함께 사는 삶이 너무 재미있었고, 내 손으로 그들을 해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나의 친구들을 죽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하면서 새롭게 알기 시작한 나의 채식 과정이 그들이 직접 목숨을 거두어 육고기를 섭취하는 것이, 나로서는 보기 힘들었다. 이윽고, 나는 판단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장에게 잠시 요리를 도와달라고(그가 셰프인 것을 알았기에) 그에게 스테이크 요리를 맡기려고 했다. 나는 당시 내 일이 아닌데도, 이는 선택의 몫임에도 그를 한없이 원망했고,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마라고 감히 못난 말들을 퍼부었다. 나는 그들이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한없이 잘해주고, 그들의 삶을 한껏 보여주며 놀라운 경험을 선사해주려 한 이 가족들에게 몹쓸 판단의 눈길로 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연스레 나의 못난 판단으로 그들과 멀어지고, 그 집을 뭔가 께름찍하게 떠났다.
판단을 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들이 마음에 안 들고, 내 마음에 앙금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이를 ‘판단의 대가’라고 부른다.
우리 모두 있는 그대로 보았다면, 사실 삶은 더 간단하고 편해진다.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고, 탓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당시에 나는 내가 마치 이 세상에 큰 기여를 하고 있으니 마치 내 행동을 꼭 누군가 인정해 주고, 보상해 주기를 바라면서, 또는 나의 행동을 남들보다 대단한 고귀한 행동으로 여겨, 남을 잔혹하게 평가했다.
아버지랑 나랑은 굳이 전화로 통화하는 사이는 아니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남들을 원망하고 있었을 때 엄마에게 나의 감정을 깊게 이야기한 그날은 달랐다. 내가 호주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전화기에 대고 입을 여셨다.
내가 이해 못 하는 남들에게 나만의 믿음을 강요만 하고, 타인은 존중을 하지만 않는다면 배타적인 사이비에 불과한다고.
내가 못하고 싫어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것이 항상 그 사람에게는 맞는 것이 아님을.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아직 모른다, 무엇이 맞는지는.
그렇지만 나로서는 나 스스로 어떤 생명의 목숨을 끊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타즈매니아에서 처음으로 직접 낚시해서 잡은 물고기, 매번 보는 물고기마다 처음에는 흥분되었지만, 터무니없이 작다는 변명으로 물고기를 잡을 때마다 놓아줬다. 내 손으로 잡은 물고기를 내가 직접 목숨을 거두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었다. 결국 계속 놓아주다가, 장이 나 대신 목숨을 끊어주고, 손질하고, 요리해 줬다. 어떤 생명의 대가로 거둔 음식 앞에서 나는 숭고하고 미안해졌다.
누군가가 대신 죽인 어떤 이의 목숨을, 마트에서 사 와, 직접 내 손으로 요리를 하는 것. 이는 생명에 대한 무례함으로 다가왔다. 나라는 작은 인간, 이 세상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더라도 조금은 책임감 있게 한번즘, 다시 생각해 보고 결정하기. 느려도 좋지만, 조금 더 나를 되돌아보는 순간의 선택을 한다.
음식의 권유, 초대의 음식. 그리고 죄책감.
나는 맛집을 찾아보는 것도 좋아하고, 정보에 대한 욕심이 있는 편이라, 장이 이번 여름, 한국에 와있는 동안은 열정적으로 이곳저곳 찾으며 여행을 다니니까, 검색만 하다가 시간이 다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 현타가 온 적도 있다.
특히,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던 호주 생활에서 어딜 가나 너무나 음식점이 많은 한국, 그리고 그전에 잠시 한 달 동안 있었던 어딜 가도 맛집인 태국에서까지, 우리 삶에 갑자기 너무나 많은 선택지와 정보가 눈앞에 놓인 기분이었다. 밴에서 생활하며, 때로는 일하는 농장에서 얻은 채소로, 또는 과일로 요리하고, 언제나 필요한 만큼만 사서 요리하던 우리의 눈에는 수많은 음식과 선택지가 어떤 순간에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낭비로 느껴진 적이 있었다.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에, 친구들과 가족에게 육류를 섭취하지 않는다고 말을 해야 했다. 호주의 삶은 그렇지만 나의 가족, 한국을 방문하고, 이후 장의 고향인 프랑스에 와있는 동안은 기존에 내가 요리해 온 음식이 아니라, 남이 요리해 주는 음식, 그리고 남들과 같이 먹는 음식에 대해 고민에 빠진다.
친구와 가족이 권하는 이유는 모두 좋은 의도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나의 건강에 대한 걱정과 나에 대한 애정을 모르지 않는다. 조금은 우스갯소리로 계속 말하고 다녔지만, 아버지가 나 몰래 우거짓국이라고 내주시면서 사골 파우더가 들어가 있음을 발견하고 나서 처음에는 몹시 화를 냈다. 거짓말하거나 나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화가 났다. 아버지는 쉽지 않은 변화에 적응 중이었고, 성분을 확인하는 것이 쉽게 생기는 습관이 아닌 것도 안다. 그리고 아버지의 순수함, 나를 챙겨주는 마음이라는 것을 몹시 잘 알고 있다.
태국에 잠깐 놀러 왔는데,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태국 로컬 커플 친구네가 있다. 그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되었는데, 나는 그전에 이들이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서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는지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식당은 바비큐 식당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된 이상 먹어보자는 생각이었고, 강력하게 거절을 하다가도 집과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조금 우유부단해진 나의 식단 때문인지 거절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고기를 먹어볼 수는 있었다. 어떻게 먹는지 알고, 어떤 맛인지 기억이 나기 때문에. 그런데 그 후 나는 밤 동안 배가 너무 아팠고, 결국 뱃속을 비워야만 했다. 뱃속에서 목숨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듯 말이다. 다음날까지, 나는 기분 좋지 않은 느낌이었고, 다시 마음속으로 다짐할 수 있었다.
다음날 먹어본 과일 스무디 주스와 야채볶음. 싱싱함, 죽어 있지 않음에서 오는 행복함으로 나는 가득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