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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라티 Oct 22. 2023

우리의 움직이는 작은 성

첫 번째 집


우리에게는 작은 움직이는 성이 있다. 그리고 한 번 그 집을 잃은 적이 있었다. 집을 잃어도 다시 만들면 된다. 슬퍼할 틈도 없이 말이다. 첫 번째 밴은 내가 장의 밴에 합류하기 전에 그가 만들어놓은 것이어서, 그의 색채가 강하고, 혼자 살 수 있는 용도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 아름다운 첫 번째 집은 우리와 많은 여정을 함께 했고, 키아마에서 크게 사고도 날뻔했지만, 다시 살아나 우리를 타즈매니아 섬까지 데려다줬다. 결국 그 참혹한 단어 '헤드 개스킷'은 마치 부메랑 마냥 우리에게 되돌아왔고, 우린 이 친구를 다시 고쳐서 살려서 함께할지, 아니면 우리의 차를 고칠 수 있는 자에게 팔 건지 선택을 해야 했다. 마치 안락사를 시키는 느낌이었다. 다시 고쳐서 육지로 돌아가기에는 페리 비용과 고치는 비용까지 우리의 예산을 넘어섰다.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추억이 가득 담겨 있는 첫 번째 성을 팔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판다기보다 마치 입양을 보내는 듯한 느낌이다.


첫 번째 밴은 한 사람이 지내기 편한 용도로 설계되어 있지만, 그래도 내가 동승하고 1년을 넘게 함께하면서 나의 많은 감정과 기억이 담겨있다.

때로 내가 밑도 끝도 없이 어두울 때, 이 어두움에서 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원동력으로 무언가 창작을 해야만 했고, 일환으로 그림 그리기에 빠져 있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지내라며 내 마음을 응원해 주던 셰어하우스 ‘히피하우스’ 집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큰  크기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내 밴에 그림을 그리는 것. 집을 직접 디자인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난잡한 그림일법한 나의 그림을 장은 응원해 주었고, 함께 행복해주었다.  


그래서 팔기까지의 과정은 정말 힘들었다. 이미 큰 부품이 망가진 상태였으므로, 우리는 적은 값에 정비공의 기술이 있는 사람에게 팔았다. 우리에게는 집이었던 밴이 헐값에 팔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추억을 가격으로 매기는 느낌이어서, 마음이 아팠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차를 팔고 몇 달이 지난 후, 어느 날 낯선 자에게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이 왔다. 그림 아래에 내 인스타그램계정을 적어놓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 혹시 모를 누군가 연락이 오지 싶어서 말이다. 우리에게서 차를 산 사람은 고장 난 부품만 고치고, 안에 있던 설계와 우리의 물건들 그대로 이 사람에게 팔았던 것이다. 그는 우리가 깜박한 사진, 침대, 커튼 등 우리의 흔적들을 찍어 보내줬다. 그리고 따뜻한 메시지. 이는 그의 인생 첫 번째 밴이고, 구매한 결정적인 이유는 밖에 그려진 나의 그림이 좋았고, 밴에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후회 없이 마치 당장 내일 죽을 것처럼 표출을 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때로는 참을 수 없이 창피하고,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과거의 나 스스로를 용서하고 성장해도 되니까 말이다.



두 번째 집


우리는 타즈매니아에서 차를 팔고 육지로 돌아가는 거대한 계획을 세웠고, 그저 배낭 하나씩만 들고, 배낭여행객의 마음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했다. 당시는 아직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계획과는 다르게, 우리는 작은 움직이는 성을 그리워했다. 차 안에서 그림을 그리고도 싶었고, 때로는 음악을 연주하고도, 음식을 직접 해 먹고 싶었다. 결국 작은 계획은 계획인 채, 새로운 집을 장만하기로 했다.


하루 안에 다 보겠다는 마음으로, 온라인 중고 커뮤니티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가격에 원하는 차를 만나기는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향한 중고차가 모여 있는 단지. 대략 반나절의 시간을 보내며 차들을 돌아봤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적은 예산으로는 튼튼하고 큰 차는 구매하기 어렵다며 추천하는 차들은 작은 승용차뿐이었다. 이번에는 밴 말고, 튼튼한 사륜구동차를 사겠다는 기대는 이미 져버렸고, 마음이 착잡하던 찰나였다. 마지막 가게에서 보이는 익숙한 작은 밴 하나가 보였다. 우리의 첫 번째 밴과 같은 모델의 밴이었다. 가격도 마치 우리를 위한 것처럼 완벽했고, 안에 아무것도 설계되어 있지 않은, 어느 호주 가족이 이용한 차라고 했다. 운명처럼 이끌려 이를 새로운 집으로 맞이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코로나의 난리를 피해 도시를 떠나 평온한 서퍼들의 마을 마가렛 리버에 도착했다. 그리고 무료 숙소의 대가로 노동을 제공하며 지내기가 가능한 숙소들을 알아봤다. 아무것도 없는 빈집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잠시 집을 만들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늘 옷도 op shop 중고가게에서 구매했지만, 우리의 집도 누군가 쓰던 것을 다시 재활용해서 만들어도 되겠다 싶었다. 침대가 필요한데, 마침 싱글 침대 틀을 공짜로 가져가라고 내놓은 집을 찾았다. 침대 틀을 그대로 쓰기에 밴은 미니멀한 사이즈였고, 우리에게 맞게(장의 키에 딱 맞추어) 기둥을 잘라 넣었다. 중고가게에서 우리가 원하는 사이즈의 수납장을 발견했다. 색깔도 이쁘게 칠해 우리만의 스타일로 만들었다.



데니스


그리고 만난 호주 할아버지 데니스. 마가렛 리버 중심에서 벗어나 어느덧 숲 속에 자리한 데니스의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그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데리고 간 곳은 재활용센터였다. 이곳에서는 쓰레기, 큰 물건들을 모아두고, 이 중에서 쓸만한 것들은 다시 추려내 말도 안 되는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한다. 호주에서는 이를 tip shop이라고 불렀다. 데니스는 이곳에서 쓸만한 것들을 발굴하고, 본인이 버려야 되는 것은 내놓았다. 우리는 도저히 다시 사용하기 어려워 보이는 타이어들을 버리는 작업을 도와주었고, 이후 그의 아름다운 사유지를 둘러다 보았다. 그는 숲이라고 볼 수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땅을 살고 있었고, 아름다운 2층 집을 본인 스스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낼 곳은 그가 집을 만드는 동안 임시로 만들어 머물렀던 shack 오두막집이었다. 이는 어찌 보면 판잣집의 스타일로, tip shop에서 가져온 남들이 버려둔 쓰레기에서 재탄생된 집이었다. 구멍들이 많아 밤만 되면 호주식 주먹만 한 나방들이 잔뜩 들어오지만, 아름다운 추억과 빈티지 가득한 잡동사니 집이다.

데니스의 오두막집

그런 그의 집에서 공짜로 지내는 조건은 가끔 그의 집안 잡일을 도와주고, 저녁식사를 함께한 후, 카드게임을 한다. 사실 여기서 그가 원하던 주는 저녁식사와 카드게임이다.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그리웠던 걸까.

그가 제일 좋아하던 카드 게임시간

팁샵 가는 것이 취미였던 그는 아니나 다를까 사유지 안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창고에 팁샵에서 가져온 듯한 가구들, 정비소라고 해도 될 정도의 시설을 갖추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모두 낡아 못 쓸 것 같아 보여도, 다 쓸 만한 것들이었다. 보물로 가득 찬 곳이다. 어느 날, 그는 우리의 집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마침 침대 안에 붙일 주방물품, 음식재료들을 넣을 서랍장이 필요했고, 차 위에 루프 바스켓을 붙이고 싶었는데 본인에게 필요한 부품들이 모두 있다고 걱정 말라고. 돈을 조금 들여 사서 통째로 붙이면 쉬운 작업이긴 하다. 그러나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하나하나 색다른 부품들로 특별 제조하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다. 부품들이 한결 같이 모두 다르다. 근원은 다 다르지만, 다시 가다듬어 만들었다.

침대보, 커튼, 베개 여기 모두 중고이다.

버리는 것 없이, 최대한 재활용하기.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이 탄생했다. 여러 이야기가 분명히 담겨 있던 부품들은 집이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움직이는 성을 타고, 아무것도 없는 빨간 땅, 호주의 중심부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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