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잘 돌아가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상처받았는가.
나에게는 주로 화도 내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울고, 속상해하는 적이 많았다. 차라리 화라도 내고, 따지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어, 상대방에게 돌아올 대답이 두려워 말도 하지 못해, 혼자 속으로 마음 많이 상했다.
그래서 내가 여태껏 마음이 끌려 친해진 친구들을 보면, 그들은 참 말을 잘한다. 우리가 어떻게 어떤 이유로 만나게 되었는지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들을 만나서 정말 많이 보고 배운다.
내 주변의 친구들, 모두 하나하나 독특하고 재미있지만, 그중에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 세은이. 그녀와 나의 첫 만남은 공포스러웠다. 당시 나는 전학생이었고, 서울에서 강원도 산골에 있는 기숙사학교로 새로운 시작을 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공포스러운 내 친구. 그녀는 나를 본 순간부터 안 좋아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를 정말 솔직하게 잘 표현했다.
하루는 기숙사 대청소하는 날이었고, 같은 기숙사 방을 쓰던 그녀는 나에게 청소 좀 하라고 걸레를 던졌다. 만화책이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상황에, 당시 그녀뿐 아니라, 몇몇 학교 친구들 중에서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 살면서 나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거니 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힘들지 않다고는 할 수 없는 시기긴 했다.
당시에 순수한 나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과 탐구심 등으로 인해, 왜 그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가 질문을 던져 보았고, 결론은 그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미워하지 말아야지 같은 선한 사상이 자리 잡혀 있었다.
어느 날, 내 친구도 따돌림을 비슷하게 당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한 이불 아래 동침도 했고, 내 친구가 음악 듣는 것을 참 좋아하고, 마음이 따뜻한 친구였구나라는 것을 배웠다.
그런 그 친구에게 너무 고맙다. 따돌림당하고 본인이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랑 친구 하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와줘서 너무 고맙다. 이 친구는 항상 이랬다. 어떤 감정이든, 남 신경 안 쓰고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그래서 입이 있어도 내가 원하는 말, 다 꺼낼 용기가 없던 나는 이 친구 옆에서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물어보지 못했지만, 그녀에게 언젠가 나를 도대체 왜 싫어했는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냥, 뭔가 얄미워서.”
그리고 지금의 내 파트너, 장. 그는 솔직하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수많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감이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표현력을 지니고 있다. 초기에 그를 알아가던 과정에서는, 너는 왜 이렇게 화를 잘 내냐고 여태껏 그의 방식대로 잘 살아온 그에게 그의 ‘문젯거리’를 이야기하고는 했다.
그런데 이게, 사실 나는 그렇지 못하더라.
화를 낼 상황인데도 화를 안 내고 괜히 삭히고 있고, 그러다가 말 못 한 그 사실들을 잊지는 못하고 언젠가 원치도 않는 상황에서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에게 상처를 준 적이 많았다. 나는 너무 많은 순간들을 그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나도 이렇게 생각하니까 너도 이 정도는 해주겠지? 라는 짐작에 혼자 오해와 기대를 했고, 감정 표현 원하는 만큼 하는 그가 얄밉고 괜히 질투가 났다. 쟝과는 3년 반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나는 그를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도와준다는 마음에 다혈질이라는 단어를 들먹여댔지만, 그는 그저 남 신경쓰지 않는 솔직함이었더라.
이런 친구들이 주위에 있어, 나는 너무 고맙고, 그들에게 다양한 감정들을 배울 수 있었다. 말수가 적어서 그 당시에 말을 못 했다거나, 당시에 주변이 신경 쓰여서 하지 못했다거나 등등 주변의 상황 때문에 나에게 가지고 오는 변명거리는 참 많았다.
지금도 그 솔직한 친구들, 기분 좋을 때에는 개구쟁이 같이 장난 잘 치는 그들, 화를 내고 싶을 때는 본인이 화가 났다고 얼굴에 드러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배울 점이 많구나 생각하고 그들을 바라본다.
나에게 지니고 있지 않다 생각하고, 이것이 나의 성격이라고 말하고 다니면, 이건 결국 나의 생각이 만들어낸 고집이 아닌가 싶다.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지는 모르지만, 그 시기가 언제 올진 모르지만, 나처럼 쫄보도 전보다는 좀 더 솔직해지는 순간들이 오더라. 이 순간이 다시 오지는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