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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Apr 16. 2021

나의 달은 나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나는 너의 문을 알게 된다

열쇠는 열쇠의 무의미를 안다

늘어진 복도에 단 하나의 닫힌 문이며

열리지 않지만 잠겨있지 않은 문이다

열고 싶으며 열고 싶지 않은 문이다

문의 결을 세며 나무의 나이를 헤아리던 밤

달빛 잘라 내어 주는 문이다

충만함으로 돌아서던 문이다

들어서지 않는 것에 아우성도 없이 닫히는 문이다

이 문 너머에 달이 새는 창이 있다

너의 세계가 있다

너의 습관이 있고 너의 사고가 있고 너의 욕망이 있고

굳게 잠가두고 앓는 너의 시작이 있다

네모인 것을 닮았지만 사변이 다른 문이 나에게도 있다

더러 안팎으로 열리지 않던 문이다

지키던 문이었으며 가두는 문이었다

나는 그 안에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다

다정한 손 하나가 나를 이끌어 창을 넘었었다

봄이 이유 없이 오듯 겨울이 오는 것에도 이유가 없는 곳

허무를 알게 되었고 앓게 되었다

다른 계절을 앓는 그에게 함께의 외로움을 배웠다

모든 앎에는 바늘이 있어 삼킬 때마다 목이 쑤신다

하나를 깨우치던 밤 잘려진 나의 달빛을 만났다

나는 돌아온 탕아였으며 나의 문은 용서하는 아버지였다

그 요람에서 너의 달이 쓴 편지를 읽는다

이 곳은 나의 세계 그곳은 너의 세계

더해질 수 있지만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야

한 개의 수로 불릴 수 없는 더하기

세계가 수를 만든 것이 아니야

삶이 수를 만들었지

세계는 너와 나라 부르는데

삶이 우리라고 부른다

합이 되고 싶어 부딪치고 깨져도

영이 되려고 부수고 소진해도

너는 둘도 될 수 없고 영도 될 수 없는 하나

하나의 모자람을 아는 아이야

하나의 온전함을 아는 아이야

하나에게 저항하고 하나를 품는 것이 삶이다

나의 문을 두드리려 내미는 손이고 그 손을 거두는 일이다

떠났다가 돌아와 너의 달에 취하는 것을 반복하는 일이다

하나와 하나로 걸어가라

두 개의 달이 뜨는 일은 농담도 되지 못하나

그런 날이 오면 둘 중 누군가의 세계는 사막이 된다

어제까지의 태피스트리는 잊어라

지난 일은 지난 일로 완결되었다

가졌던 것을 후회할 시간이 없다 감상할 시간이 없다

오늘에게 달음 하는 날실에 기꺼이 춤추고 붙들려라

너를 잃는 일이 곧 너를 얻는 일이다

너는 다시 나의 문 앞에 서라

나는 어느 날 다시 편지할지도 모른다

나는 절대로 편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너는 다시 나의 문 앞에 서라

만남은 누군가의 고독 앞에 서는 것이며

기약이 없어도 서있는 일이다

그 문을 열지 않는 일이다




- 나의 달은 나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말을  .

(c) 2017.LeeSihyeon


<photo by Ihor Malytskyi -Unsplash>

※ cover photo: Josh Massey(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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