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 이야기는 손바닥만 한 땅에서 시작되었다. 올해로 10년째 나는 작은 농촌 마을에 살고 있다. 내가 사는 마을은 깨끗한 자연이라거나, 대단한 경관이라거나 특별히 내세울 것 없지만 특별한 점 하나가 있다. 면내에 농사짓는 땅 절반에서 유기농사가 반백 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유기농업 특구지역. 마을에 터를 잡은 나는 400여 평 밭을 빌리게 되었다. 내가 일하는 목장의 귀퉁이 땅. 밭 뒤로는 도토리, 아까시, 밤꽃이 피는 언덕이. 눈앞으로는 해가 지는 서향인 이곳. 도로가 없어 지나는 이 없는 한적한 터. 나는 이곳에서 내 인생의 ‘첫 삽’을 뜨게 됐다.
처음엔 마늘, 감자를 심었다. 누구나 시작하기 쉽고 간단한 작물이다. 그러다 어느 해 돼지 세 마리를 길렀다. 유기농 라이프의 완성에 돼지가 있었다. 건강한 돼지를 기르고 싶었다. 살기 위해 남의 살을 먹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책임은 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실험은 계속될 수 없었다. 새로운 가축 전염병이 계속 생겨났다. 내가 있는 곳이 전염병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었다. 옳은 방식이라 하더라도, 이웃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돼지 세 마리가 있던 자리에 지금은 사과나무 세 그루가 서있다. 목장에서 십여 년 자란 사과나무를 옮겨왔다. 나이가 있는 나무라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을까 걱정을 했다. 돼지 덕분일까. 고맙게도 사과나무는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이듬해 바로 꽃을 피웠다. 곧 열매가 맺혔으나 꽃사과 나무(꽃을 보기 위해 개량된 품종)이기 때문에 열매가 크지는 않았다. 작지만 사과는 사과였다. 달콤 시큼한 맛이었다. 절반이상 벌레를 먹었지만. 오며 가며 한입 먹고, 벌레 먹은 쪽은 닭에게 주었다. 나무는 꽃으로 충분한 만족을 주었다. 과일나무는 두 번의 기쁨을 줬다. 봄에 만발한 꽃으로 첫 번째 기쁨, 여름내 열매가 자라며 함께 차오르는 기쁨.
토마토를 심고, 호박을 심으며 알게 된 비밀이 하나 있다. 짝꿍과 나, 두 사람이 먹기 위해선 아주 작은 땅이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손바닥만 한 땅이면 된다. 토마토 5주만 심어도 여름이면 주체하지 못할 토마토가 열렸다. 비밀을 알게 된 순간부터 우린 점차 밭을 꽃과 나무로 채우기 시작했다. 필요 이상 토마토가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의 작은 땅은 텃밭이면서 정원이 되어갔다. 봄이면 수선화가 피었다. 앵두꽃, 살구꽃이 지면 과일이 달렸고, 봄까치, 클로버 꽃이 융단처럼 피었다. 장마철에는 메밀이 피었고, 해바라기가 피고, 코스모스가 지면 겨울이었다. 꽃에서 꽃으로 시간이 이어지는 곳. 물론 화초가 거친 들판에 자리 잡기란 쉽지 않다. 풀 속에 깜빡 묻히면 녹아버리기도 하고, 내 손으로 뽑아버리기도 했다. 서투른데 게으르기까지 한 우리 손에 운명이 맡겨진 화초들에겐 미안한 마음이다. 엎치고 덮친 격으로 무얼 심든지 돌아서면 머릿속엔 까마귀가 날아올랐다.
(결과적으로) 식물은 심는 것 자체로 만족감을 주었다. 결실을 맺거나 못 맺거나 결과와 관계없이 심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이 있었다. 느린 속도지만 우리의 개입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간간이 벗들에게 꽃다발 선물을 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 자연의 선물을 우리 두 사람만 즐기긴 아까웠다. 여기 작은 정원의 꽃 잔치를 우리만 누릴 순 없었다. 그 손님은 단연 꿀벌이었다. 꿀벌은 오랜 시간 꽃과 함께 공진화해왔다. 꿀벌이 생기면서 꽃(식물) 다양성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다양한 꽃을 즐길 수 있는 공로는 꿀벌에게 있었다.
매년 꿀벌이 사라진다는 뉴스가 전해온다. 2022년 겨울에는 우리나라 꿀벌 60퍼센트가 죽었다. 군집붕괴현상은 오래됐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부터 화제가 됐다. 그 원인을 농약 탓이라고도 하고, 기후변화 때문이라고도 한다. 사실 멸종은 벌만의 일은 아니다. 수많은 곤충이 멸종되다 꿀벌까지 이르자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이다. 꿀벌이 사라지는 시대에 꿀벌을 잘 지킬 수 있을까. 전 세계에서 붕괴가 일어나는 중에 이 작은 땅의 벌통이 크게 다를리는 없을 것 같다. 녹아내리는 얼음 조각을 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북극 마지막 빙하가 녹는 날은 북극곰이 아니라 인류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꿀벌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의 마지막 빙하 조각이 될 것 같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지금 내게 주는 교훈은 그들이 살아남았다는 결말이 아니다. 절망을 직시하고 방주라는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닐까. 여기 작은 땅에서 나는 드디어 내 고향을 만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이제 시작하려는 이야기는 여기 손바닥만 한 땅에서 시작된 이야기. 그러니까 이 땅에 연결된 이야기,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져온, 앞으로도 이어질 생명 순환에 대한 이야기. 흙에서 태어나 꽃으로 연결된, 작지만 때때로 매서운 곤충들과 방주를 만들어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