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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플랜B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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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30. 2023

그래도 꿀 기운이 솟아나요

벌통 나누기

이층 집으로 확장(계상) 한 이후, 조직을 착실히 키워가는 봉순이들. 벌통 바깥에도 내부에도, 기세가 뿜뿜 하는 게 느껴진다. 태양의 딸들은 매우 분주하게 세상을 탐험한다. 내검을 할 때면 이층 집 전체를 내렸다 올렸다 해야 하는데 매우 무겁다. 벌집 한 장 한 장에 꾹꾹 담겨 있는 꿀의 무게 탓이다. 단출한 집이 이층 집이 돼서 뿌듯하긴 한데, 초봉자에겐 이제부터 특별히 난감한 시기가 시작된다. 난감함은 허리 고통을 뜻한다. 벌통 한 두 개에 벌집 고장 열댓 장을 볼 땐 몰랐다. 점차 볼 양이 많아지고 시간이 길어지니 바로 신호가 왔다. 벌들의 아버지께서 목 디스크가 좋지 않아 벌통을 정리하셨는데 양봉을 이제 시작한 나는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탁구든 배드민턴이든 운동은 무조건 자세가 중요해.' 체육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더랬다. 양봉도 자세 수업이 필요할 것 같다. 쪼그리거나 수그리거나, 구부정하게 벌집하나하나를 보려니 힘들다. 특히 내검을 끝내고 이층 집을 일층으로 다시 올려줄 때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이층 집을 들어 일층집 위로 올리는 순간이다. 

벌통 속에는 세상사로 닳고 닳은 봉순이도 있지만, 이제껏 세상 구경 한번 못 해본 꿀벌도 있다. 햇볕을 처음 본 어린 동생들은 뻥 뚫린 지붕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을 따라 기어 올라와 벽에 서서 자신들이 나아갈 세상을, 그곳에 가득한 꽃향기를 맡는다. 과연 태양의 딸답다. 햇볕이 너무 달다. 어두컴컴한 집안에 틀어박혀 방 청소나 하고 있기엔 내 날개가 너무 아까운 걸. 그녀들은 날개 매무새를 만진다. 꽃향기가 어디서부터 오는지 더 잘 맡기 위해 더듬이를 손질한다. 문제는 그녀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있다는 점인데, 나도 그대로 멈춰있기엔 허리가 너무 아프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열댓 마리가. 아무리 극악무도한 소시오패스라도 해맑은 그녀들 위로 집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맞다, 소시오패스는 애초 양봉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층 집을 내려 앉혀야 할 벽에 붙어 있는 꿀벌 소녀들을 빗자루로 쓸어낸다. 경험상 벌통 바깥으로 쓸어내는 게 그녀들을 덜 자극한다. 부드럽지만 불도저 같은 빗자루로 안전한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빈자리가 생긴 이때다! 무거운 이층을 내리려는데, 뒤에서 줄 서있던 다음 팀이 성벽 위로 올라온다. 아오, 나는 또 벌통을 든 째로 빗자루로 쓸어내고, 이층 집을 내리려는데, 다음 팀이 올라온다. 쓸면 올라오고, 쓸면 올라오고. 타임루프 악몽에 빠진 것 같다. 하지만 허리가 아픈걸 보니 확실히 꿈이 아니다. 고통의 절정에 인내심이 있고, 인내의 끝자락이 결단의 순간이다. 희생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뚜껑을 덮는다. 콰지익. 꿀벌의 외피를 이루는 키틴질이 으깨지는 느낌이 손가락을 통해 뇌에 들린다. 주여...


희생된 딸들은 다음 내검에 쥐포처럼 납작해져 발견된다. ㅜㅜ


벌통이 이층 집이 되고 나면 벌통은 위와 아래로 분업 체제가 된다. 일층은 새로운 꿀벌들이 태어나는 방으로 쓰이고 이층은 바깥 일벌들이 따온 꿀을 저장하는데 쓰인다. 그러기 위해 일층과 이층 사이에 격리판을 놓는다. 격리판은 우리로 치면 방범창 같은 창살인데, 꿀벌들에겐 여왕벌이 이층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일벌은 통과할 수 있지만, 여왕벌은 통과할 수 없다. 여왕벌이 올라오지 못하게 함으로, 이층에 있는 벌집은 꿀을 저장하는 창고로 쓰이고, 일층에서는 동생 벌들이 계속 태어나게 한다. 이층집 초기에 벌집에 바로 꿀을 채우려는 욕심을 자제해야 한다. 일층에 생긴 봉충소비(애벌레가 번데기가 된 벌집)를 이층으로 올려주고, 이층에 있던 꿀벌집을 아래로 내려준다. 새로 꿀벌이 깨어나면 빈방이 생기게 되고, 일층의 꿀은 이층으로 이동한다. 빈방이 빠르게 생기게 함으로 일벌이 빠르게 태어나게 한다. 


그리고 이때 벌통 안에는 확률적으로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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