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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플랜B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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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Nov 14. 2023

출동! 분봉 버스터즈

옆동네 분봉까지 잡으러가다니요

꿀벌은 자신을 돌봐주는 인간에게 꿀과 향기로운 밀랍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꿀이나 밀랍보다 더 근사한 보물을 우리에게 내준다. 즉, 6월의 환희를 알게 해 주고, 아름다운 계절의 조화를 맛보게 해 준다. 꿀벌은 여름의 영혼이다. 꿀벌은 풍요의 시기를 알리는 시계다. 가볍게 날아다니며 향기를 내뿜는, 민첩하게 움직이는 날개다. 그리고 춤을 추는 지혜로운 빛이고, 흔들리는 빛의 속삼이며, 몸을 쭉 뻗고 엎드려 쉬는 대기의 노래다. 그녀들이 나는 모습은 진정한 환희, 눈에 보이는 작고 확실한 음표다. 아름다운 계절의 은밀한 소리를 저 꿀벌들이 일깨워준다.

모리스 메테를링크, <꿀벌의 생활> 중


5월 10일. 벌들의 아버지로부터 호출이 왔다. 모세가 하느님의 십계를 기다렸듯, 나는 젖과 꿀의 땅으로 달려가곤 했다. 선생님은 분봉하는 법을 알려주신다고 하셨다. 푸른 하늘과 따듯한 햇살. 5월. 벌을 배우기 더없이 좋은 날이다. 꽃을 향해 날아가듯 나는 달려 나갔다. 하지만 젖과 꿀의 땅에는 벌들의 아버지가 안 계셨다. 전화기 너머로 벌 아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봉 나서 벌 잡으러 왔어.” 선생님은 빈 벌통과 망태기를 가져오라 했다. 양봉 선생님씩이나 되는 분이 분봉을 놓쳤다니, 이게 웬일인가? 서둘러 현장을 향해 달렸다. 


분봉은 벌 사회가 세력을 나누는 일인데, 인간이 개입하는 인공분봉과 꿀벌 스스로 일으키는 자연분봉으로 나뉜다.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는 꿀벌의 분봉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시기, 그것은 꿀의 잔치, 종족과 미래의 승리, 그리고 희생에 대한 열광"이라 했다. 세상 대부분 현상을 설명할 때, '자연'이라는 단어가 합성어로 쓰이면, 대게 좋은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양봉가는 자연 분봉을 막아야 한다. 꿀벌들이 스스로의 열정을 쫓아 야생으로 떠나간다. 나를 떠나 행복할 수 있다면 붙잡지 않겠지만, 한반도의 야생은 만만치 않다. 꿀벌이 잘 살 수 있을지, 없을지는 행운이 필요하다. 야생이라고 할만한 생태계가 거의 남지 않은 지금, 새로운 꿀벌 집단의 운이 썩 좋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에 양봉가는 자연 분봉이 생겨날 조짐을 미리 발견하고 조치를 취해줘야 한다.


장비를 들고 현장에 도착했다. 분봉 나온 벌들이 모여 앉은 곳은 마을에 있는 농업학교 입구였다. 벌들은 학교 입구에 우람하게 자라는 느티나무 위 가지에 조용히 매달려있었다. 이를 발견한 학교 선생님이 이 학교의 전 교장이자, 양봉 전문가인 벌들의 아버지에게 제보한 것이다. 오우... 선생님을 의심할 뻔(솔직히 살짝 의심)했던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벌들의 아버지는 학교에서 높다란 사다리를 빌려놓은 상태였다. 벌들의 아버지는 내게 꿀벌이 어디서 나왔는지 설명해 주었다. 


"얘네는 토종벌이네. 여기 주차장 옹벽 있지? (주차장에 흙이 쓸려내려오지 않게 시멘트 블록을 쌓여있다.) 여기 봐봐. 잘 보면 옹벽 틈에 구멍이 있어. 그 구멍으로 벌들이 왕래하는 게 보이지? 여기 속에 살고 있는 거야. 이속에 아마 꿀이 많이 있겠지? 여기서 몇 년째 계속해서 분봉이 나오고 있어." 양봉 전문가인 선생님이 매년 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나도 가끔 지나가는 장소였다. 벌들은 다행히 내가 올 때까지 떠나지 않고 있었다. 분봉을 나온 벌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몇 시간이고 한자리에 머문다고 했다. 평생 지낼 보금자리를 찾는 중이니까. 


야생이라는 단어는 '자연' 보다 더 신비한 느낌을 준다. 거칠고 힘센, 풍부한 태고의 생명. 야생 꿀벌이라니. 그런 것은 깊은 산속 자연인들이 사는 곳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소나무 숲옆이라고 하지만, 주차장 옹벽 속에 야생 벌이 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닭은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 곁의 가축 대부분 그렇다. 야생이 아닌 인간의 필요에 맞게 체형이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불필요하게 살이 많이 찌고, 면역력이 약하다. 다행히 꿀벌은 여전히 야생의 유전자로 살고 있다. 양봉은 꿀벌이 인간에게 길들여진 게 아니라, 인간이 꿀벌을 이해한 쪽에 가깝다.


선생님은 설명을 마치셨다. 그리고 나를 사다리로 안내했다.

“자, 올라가서 망으로 씌워 잡으면 되네.”

“엣, 제가요?” 언제나처럼 작업은 벌들의 아버지가 하고, 나는 보조 아니었던가. 저는 지나가는 행인 전문인데요? 말을 잇지 못하는 초봉인에게 선생님이 말하셨다.

“난 오늘 머리가 어지러워. 지금도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야.”

와우, 세상에. 이제는 새끼 새가 스스로 날아 독립하게 하려는 어미새의 모습인 걸까. 하필 마침 오늘 어지러우시다? 이런 운명이... 그렇다고 하필 마침 어지러운 양반을 3미터 높이 사다리를 타게 할 수는 없는데... 사다리 작업은 노동부가 발표한 3대 사고유형이자, 8대 위험요인 아니던가.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느 쪽이 내 안위를 최대로 보전할 수 있는가 고민해 보았다. 분봉하는 벌은 결코 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기는 했다. 하지만 요 근래 계속 꿀벌들에게  쏘여왔던 나는 무서웠다. 그걸 저 사다리 위에서 쏘인다면...  


그때 야외 수업에서 돌아오는 학교 학생들과 마주쳤다. 학생들은 이 특별한 현장을 지나치지 않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중엔 내가 아는 학생도 있었다. 오! 어쩐지 이 학교의 전 교장선생님이면서, 벌 아버지의 (지금 이 자리에) 유일한 제자라는 점이 나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요다에게 사사한 제다이 용사가 된 것 같은 기분 말이다. 내 마음속에 광선검이 '삐용'하고 솟아났다. 나는 전 교장 선생님이 오랜 제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동안 우주복 같은 벌옷을 입었다. 목소리까지 가다듬을 필요는 없었지만, 고무장갑을 끼며 목소리를 조금 가다듬었다. “선생님, 시작하면 될까요?”


힘차게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한 바가지는 될법한 벌들이 사다리 꼭대기 위 나뭇가지에 수북이 모여있었다. 벌들은 점차 가까워졌다. “토종벌은 서양벌에 비해 분봉 숫자가 얼마 안돼.” 저 아래에서 오늘 하필 어지럽지만, 겉보기엔 괜찮은 선생님의 설명이 들려왔다. 


"가지를 꺾어버리게." 벌 무리 바로 아래 있는 가지가 망태기 접근을 방해했다. 가지가 부러지면서 벌들이 동요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잔가지를 부러뜨리면서 벌써 땀이 났다. 어쩌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학생들(유일한 관중들)은 떠나갔다.


"망을 최대한 벌려서 벌을 감싸. 그렇지. 그렇지."


아래에서 원격 지시가 들려왔다. 어미새의 지저귐대로 날개를 펴고 싶은 새끼새의 마음이 이러지 않을까. 

선생님의 말을 최대한 따르고 싶었다. 한 마리라도 더 담아야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안전하게 자리 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망을 벌려 벌 무리를 최대한 덮었다고 생각한 나는 벌을 쓸어 담았다. 날개탓인지, 벌들의 몸뚱이 탓인지. 강아지를 쓰다듬는 듯한 기분이 고무장갑을 통해 느껴졌다. 

어.. 어.. 생각보다 벌은 깔끔하게 들어가지지 않았다. 벌 무리는 한 덩어리처럼 보였으나, 하나는 아니었다. 분봉을 나온 벌이 순한 건 공격적이지 않다는 것일 뿐, 수천 마리가 순순히 말을 듣는다는 말은 아니었다. 꿀벌들은 소중한 여왕벌을 보호하기 위해 대열을 흐트러트리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한 손으로 벌들을 쓸어 담아보지만, 마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벌들이 빠져나갔다. 왼손으로 망을 벌리고 닫고, 오른손으로는 벌을 쓸어 담길 여러 번. 여전히 많은 벌이 나무에 붙어있었다. 망을 벌리면 벌이 밖으로 나오려 했고, 눈앞에 있는 많은 벌을 두고 가기는 아까웠다. 벌옷을 입으면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기가 어렵다. 그건 그렇고 망태기에 여왕벌이 담기지 않았으면 어쩌지. 

고민을 계속할 수 없었다. 아래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망을 잠가요.” 밑에서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여왕벌이 안 담긴 거면 어쩌죠…” 모기만 한 소리로 나는 선생님께 물었다. 벌떼 앞에서 어쩐지 큰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여왕이 없다는 걸 알면 얘네가 다시 돌아갈 거니까 걱정 말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망태기째로 빈 벌통에 넣었다. 우리는 선생님의 양봉장으로 돌아와 망태기의 입구를 살짝 열었다. 소문은 닫아두어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도록 했다. 벌통과 익숙해지도록. 우리는 한소끔, 벌들이 잠시 진정시키는 시간을 가졌다. 진정됐을까 싶은 시간이 지나고 벌통 문을 열었다. 붕붕. 벌통에서 벌이 줄줄이 나왔다. 그리곤 주변 키 작은 소나무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왜 그 나무로 정했는지는 모르겠다. 그것보단 일단 나가고 보자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토종벌은 집을 고르는데 까다롭다고 한다. 선생님은 다시 토종벌이 좋아할 만한 벌통을 가지러 갔다.  


눈높이에 있는 벌을 찬찬히 살펴보니 토종벌은 서양벌보다 조금 작았다. 검은 바탕에 노란 줄이 그어져 있었다. 검은 바탕에 노란 줄이라니... 우리 어디선가 마주쳤던 것 같은 기분. 퍼뜩 지난 가을날 황건적의 난이 생각났다. 벌통을 습격해 꿀을 훔쳐간 놈들 말이다. 결국 벌통 하나를 죽게 만들었던 도적떼들 말이다. 


혹시 네놈들이 그 원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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