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봉인의 감개무량
분봉은 꿀벌 무리의 출산이라고 할 수 있다. 양봉가의 통제 없이 분봉하는 것을 자연분봉이라고 한다. 분봉을 나가기 전 무리 안에 퍼지는 미열을 분봉열이라 한다. 분봉열은 미묘하고 재빠르게 진행된다. 이 시기에 양봉가는 벌통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자연 분봉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꿀벌 수만 마리가 한 번에 쏟아져 나간다면 이웃들이 놀랄 것이기 때문이다. 꿀벌은 분봉 중에 쏘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야생으로 분봉을 간 꿀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아주 낮다. 우리 주변은 야생이라고 할만한 자연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봉가의 관리 아래 분봉하는 것을 인공 분봉이라 한다. 양봉가는 인공분봉을 통해 꿀벌 무리를 안전하게 나눈다.
양봉가는 이 시기에 벌통을 나누어 새로운 꿀벌무리(벌통)를 늘릴지, 말지를 선택한다. 새로운 꿀벌무리를 만든다면 꿀 수확량이 줄어들게 된다. 거꾸로 말하면 기존 꿀벌 무리를 없앤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꿀을 모아 오는 꿀벌 무리를 산술적으로 절반으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아주 적어진다. 떠나간 벌통이든, 떠나보낸 벌통이든 둘 다 새 출발을 해야 한다.
분봉을 지금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꿀벌들은 여름까지 계속해서 분봉의 기회를 엿본다. 여름 전까지 꿀벌 무리에게 잉여 자원은 계속해서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여력이 생겼을 때 출산을 하려는 것은 생명체의 욕망이다.
봄이 완연한 지금 벌통 안에 꿀기운이 솟구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벌통을 2층집으로 증축하기로 했다. 2층집 확장공사는 1층과 지붕 사이에 블록을 하나 껴넣는 것으로 완료된다. 벌통과 같은 크기인데 밑이 뚫린 상자를 계상이라고 한다. 벌통 1층은 단상이라고 한다. 2층으로 올리고도 꿀이 가득 차면 3층을 올린다. 3단 계상이다.
내겐 계상이 없었기 때문에 사야 했다. 벌통은 나무로 만들어진다. 스티로폼이나, 압축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벌통도 있다. 보온, 단열 성능이 더 좋고 가볍다고 한다. 하지만 꿀벌들이 자연에서 살아왔던 곳도 나무집이고, 환기가 잘되어 습도 관리가 괜찮을 나무벌통으로 결정했다. 스티로폼은 나중에 다 써서 버릴 때도 쓰레기가 문제일 것 같다. 물론 나무는 자연물이기 때문에 썩는 게 문제다. 나무 벌통에는 페인트나 스테인을 칠해서 수명을 늘려줘야 한다. 생나무는 햇볕이나 비를 맞으면 수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시중에는 나무 벌통을 페인트 칠을 해서 파는 벌통과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벌통으로 나누어 판다. 적은 비용을 추가하면 흰색과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벌통을 살 수 있다. 어느 쪽이 나은지 둘 다 사 보기로 했다.
유성 페인트는 나무 겉면을 코팅하는 기능을 한다. 오일스테인은 나무에 스며들어 나무를 보호한다. 스테인은 유성과 수성으로 나뉜다. 유성 스테인은 강한 저항력을 갖지만 독하다. 나무 데크에 스테인을 칠하면 화학 냄새가 며칠을 간다. 오일 스테인은 나무에 방충효과를 더한다고 하니, 꿀벌집으로 쓰기엔 좋지 않을 것 같다. 수성 스테인을 칠하기로 했다. 스테인의 단점은 색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다. 색을 더하는 것은 비용이 추가된다.
며칠에 걸쳐 벌통을 조립하고 스테인을 칠했다. 드디어 계상을 올렸다. 봄벌을 깨우고부터 시간이 순식간에 흐른 기분이다. 겨우 한 칸 올랐을 뿐인데 벌통이 우뚝 솟아 보였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꿀벌 어린이가 한 뼘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