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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플랜B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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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11. 2023

소만小滿_꿀 기운이 솟아나요

꿀벌의 출산

양봉장에는 여러 벌통이 있고, 각각 벌통에는 수만 마리 꿀벌이 살고 있다. 벌통끼리 교류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벌통은 꿀벌의 세력에 따라 강군과 약군으로 분류된다. 세력은 벌통 속 벌집(소비) 개수로 판단한다. 벌이 가득 붙은 벌집이 4장이면 4매 벌, 3장이면 3매 벌이라 한다. 겨울을 나고 4매로 시작한 벌통이 6매가 되었다. 어느새 7매, 8매 벌이 되었다. 식구로 가득했고, 일벌들은 끊임없이 벌통과 세상을 오갔다. 부지런히 꿀을 담아와도 꽃으로 세상은 넘쳤다. 꽃꿀과 꽃가루로 곳간이 가득 찼고, 그에 질세라 여왕벌도 빈방에 알을 낳았다. 서로 빈방을 찾는 경쟁이 시작됐다. 벌집을 들었을 때 꽃꿀 무게가 느껴졌다. 애벌레 방으로도 가득 찼다. 봉순이들은 빈 벌집을 계속 필요로 했다. 


벌집은 적절한 속도로 넣어주어야 한다. 너무 빠르게 빈집을 넣어주면 탈이 났다. 아무리 급해도 일벌들이 청소 및 육아를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내검을 하며 벌들의 상태를 읽고 신호에 맞춰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표준 벌통에는 벌집(소비)이 10장까지 들어간다. 한 장씩 추주다 보니 어느덧 벌통이 벌집으로 가득 찼다. 


'더 이상 빈 공간이 없다.' 


이것이 느껴지는 순간 꿀벌들 사이에는 하나의 열망이 싹튼다. 꿀벌 공동체에 이 열망이 공유되기 시작하면 일벌들은 벌집 아래에 특별한 방을 만든다. 그리고 일벌들은 여왕벌을 그 방으로 데려간다. 여왕에게 그 방에 알을 낳게 한다. 모든 애벌레가 첫 먹이로 로열제리를 먹지만 끝까지 먹지는 않는다. 유모벌은 이 특별한 애벌레에겐 끝까지 로열제리를 먹인다. 모든 벌은 수평을 향해 자라나지만, 이 애벌레는 중력방향으로 자란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애벌레는 번데기가 된다. 번데기가 되면 유모벌들이 방 뚜껑을 덮는다. 비로소 완성된 방은 아이스크림 콘 같은 고깔 모양을 했다.


특별한 방이 고깔 모양으로 변해가는 동안, 시녀벌들은 여왕벌의 먹이량을 줄인다. 통통했던 여왕은 조금 홀쭉해지고, 몸이 가벼워진다. 다시 비행을 할 수 있는 몸이 됐다. 여왕벌이 날아본 것은 지난날 혼인 비행을 하던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꿀벌들은 이제 준비가 되었음을 느낀다. 꿀이 땡기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런 적이 없었다. 벌들에겐 각자 정해진 일이 있고, 누구도 불만 없이 그 일을 해왔다. 꽃이 한창이지만, 오늘은 꿀을 수확하러 나가지 못하게 하는 미열이 나이 많은 일벌들 사이에 퍼진다. 벌집에 저장해 두었던 꿀로 배를 채우며 모두들 벌통에서 서성인다. 


누군가 신호를 보냈다. 누군지 알 수는 없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으니 누구라고 특정할 필요는 없다. 나이 많은 꿀벌들이 일제히 벌통 밖으로 쏟아져 나간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그 벌떼처럼. 벌떼는 자신들이 나온 벌통, 태어난 집, 이제 떠나게 될 고향의  상공을 맴돈다. 곧 멀지 않은 적당한 장소(되도록 나뭇가지. 높으면서 그늘지고 안정된 장소)에 내려앉는다. 만 마리의 세포로 이루어진 하나의 열망. 이 흐름에는 여왕벌도 함께하고 있다. 일벌들은 자신들 속에 여왕이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꿀벌 절반은 오늘 새로운 무리가 되기로 결정하였다. 나이가 많은 꿀벌들은 자신들이 수 만년을 따라온 이 명령을 오늘 따르기로 했다. 경험이 많은 무리가 모험에 적합하다. 


새 무리는 뱃속에 꿀을 가득 채워 나왔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새 거처가 마련될 때까지 쓸 식량이다. 새로운 무리는 나무 위에 매달려 정찰벌을 보낸다. 정찰벌은 이 경험 많은 무리 안에서도 경험이 가장 많은 언니들. 언니들은 거처가 될만한 장소를 물색한다. 물론 안전한 거처를 찾기는 어렵다. 기적이 허락된다면, 꿀벌들은 벌집 짓는 작업을 시작한다. 새로운 무리에게 언제까지 허락될지 모르는, 실패할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불멸의 왕국이 될 수도 있는 새로운 왕국 건설을 시작한다. (미국에서의 연구에 따르면 야생 꿀벌이 생존할 확률은 10%라고 한다) 밀랍은 꿀벌의 배 껍질 사이에서 나오는 고형 지방으로, 벌집을 짓는 재료다. 나이가 들면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새 왕국을 건설하는 일벌의 몸에서는 밀랍이 다시 나온다. 로열제리도 다시 분비되어 여왕벌과 새로 태어난 동생들을 먹인다.


남겨진 벌통에서는 벌집 아래 아이스크림 콘 모양의 방에서 애벌레가 깨어난다. 애벌레는 자신의 탄생을 알리는 소리를 지른다. 애벌레는 공주벌이 되었다. 일벌들은 새로운 여왕이 태어났다는 것을 단번에 깨닫는다. 그녀의 페로몬은 시녀벌에서 일벌에게, 일벌에서 일벌로 공유된다. 남아있는 꿀벌들과 새로 태어난 공주벌은 선배들이 남겨준 자원과 집을 이용해 왕국을 이어간다. 새로 태어난 공주벌은 벌통을 돌아다니며 또 다른 특별한 방을 찾는다. 방을 발견하면 벽을 찢어 독침을 찔러 넣어 자매를 죽인다. 혹시 벌써 태어났다면, 한 마리가 남을 때까지 싸움을 시작한다. 벌통에 여왕이 무사히 태어났기 때문이다. 혹은 꿀과 세력이 여전히 넘친다면, 먼저 태어난 공주는 다음 공주가 태어나기 전 다시 한번 일벌들을 데리고 벌통을 떠난다. 


분봉이라 불린다. 꿀벌 집단으로 볼 땐 새로운 집단이 태어나는 출산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때 양봉가는 이 벌들의 흐름에 개입을 한다. 다시 '더 이상 빈 공간이 없다.'라고 느끼는 시점으로 돌아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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